일어날 것 같은 이야기와 블랙 코미디
‘블루오션’은 현재 존재하지 않거나 알려지지 않아 경쟁자가 없는 유망한 시장을 말한다. 내가 유망하다 여긴 시장은 다른 사람 눈에도 노다지로 보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하고 들어간 곳이 사실 경쟁이 매우 치열한 특정 산업 내의 기존 시장인 ‘레드오션’인 때도 있고, 진입하자마자 금방 레드오션으로 바뀔 때도 있다. 유망한 시장이 꼭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도 그 바닷속 경쟁의 승리와 성공 가능성을 키우기 위해선 선점이 중요하다. 자리를 잡으면 그만큼 주도권을 갖고 원조 이미지를 굳히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제작 영화인 <돈 룩 업>은 신선하다, 저런 생각을 어떻게 했느냐 등 사람들의 평을 읽고 본 영화다. 그보다 내 눈에 띈 건 호화 캐스팅이었다. 섭외를 위해 돈을 많이 쓴 것인지 아니면 이 영화를 위해 수많은 배우가 마음을 모아 출연을 결정한 것인지 궁금했다.
천문학과 대학원생 케이트 디비아스 키(제니퍼 로렌스)와 담당 교수 랜들 민디 박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태양계 내의 궤도를 돌고 있는 혜성이 지구와 직접 충돌하는 궤도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하늘을 올려보라고 말해도 세상의 그 누구도 이를 신경 쓰지 않는다. 무관심한 대통령 올리언(메릴 스트립)과 그녀의 아들이자 비서실장 제이슨(조나 힐)을 만나도 브리(케이트 블란쳇)와 잭(타일러 페리)이 진행하는 인기 프로그램 ‘더 데일리 립’에 출연해도 소용없다. 혜성 충돌까지 남은 시간은 단 6개월이다.
블랙 코미디를 싫어하지 않아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너무 그 나라의 정서만 가지고 있거나 그들만 이해할 내용이었다면 재미없게 봤을 텐데 그래도 쉽게 이해할 수 있어 이질감은 없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사람들의 평만큼 신선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영화를 보자마자 어디서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예전에 본 우스타 쿄스케 작가의 <개그 만화 보기 좋은 날>의 한 에피소드인 <종말>이 떠올랐다. 영화를 보는 동안 감독이 애니메이션의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을 지울 수 없는 이유, <돈 룩 업>이 참신하게 다가오지 않았던 이유는 이미 내 머릿속에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가 먼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돈 룩 업>과 <종말>의 차이는 지구의 위기를 두고 보이는 사람들의 반응이다. 영화 속 사람들의 무신경한 반응과 다르게 이 애니메이션 속 사람들은 자포자기한 모습을 보인다.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고는 하나 내게 있어 이런 이야기 진행의 선구자는 <돈 룩 업>이 아니라 <개그 만화 보기 좋은 날>이다. 꼭 그 애니메이션이 아니더라도 다른 비슷한 내용이 있을 것 같다. <돈 룩 업>을 보는 내내 그다음은 어떻게 될 것인지 예측과 예상만 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내게 이 영화는 재미는 있지만 신선하지는 않았다.
누군가에게 신선한 콘텐츠는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못할 때가 있다. 소설, 영화, 드라마, 연극, 음악 등 창작물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것이 나오기 쉽지 않다. 이미 어디서 보고 들은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나무 한 그루의 가지가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 듯 최초로 만들어진 창작물을 토대로 살이 붙거나 떨어져 또 다른 새로움을 만들기 때문이다. 정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면 모든 것이 아류, 표절일 것이다.
넷플릭스에서 나오는 콘텐츠라고 한다면 브랜드 파워 때문인 것인지 약간의 기대감이 있다. 하지만 요즘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영화를 보면 각자 다른 이야기를 하더라도 영화 흐름이 비슷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스케일이 크게 진행되어도 결국 단순한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느낌이다. 이야기를 풍부하게 만들기 위해 살짝 반전을 주지만 그렇다고 감동과 충격을 받지 않는다.
영화 제작사가 아닌 만들어진 것을 전달하는데 그쳤던 OTT가 직접 콘텐츠를 만들어 본다는 점, 그래서 새로운 콘텐츠가 다양하게 만들어진다는 점, 그 역할의 선구자가 넷플릭스라는 것은 인정하고 박수를 칠 일이다. 각종 영화제에서 많은 부문에서 수상할 정도의 수작도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넷플릭스라고 백이면 백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흔히들 말하는 ‘노잼’ 영화, 평범하거나 그보다도 부족한 영화도 많이 있다. 자체 제작으로 몇 번 성공을 맛 본 넷플릭스가 이제 더는 블루오션이 아닌 레드오션에 가까운 OTT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선을 바꾼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장인정신으로 콘텐츠 하나를 빼어나게 만들기 위해 공들이는 것보다 보유 콘텐츠를 더욱 풍부히 하기 위해 다작에 빠진 것으로 말이다. 다다익선이라고 콘텐츠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하는 소비자도 있겠지만.
<돈 룩 업>이 재미없는 영화, 다작 트렌드의 산물이라는 것은 아니다. 있을 법한 일을 잘 풀어내 분명히 재미있게 봤지만 아쉬운 영화였다. 상대적인 것일 테지만 내 머릿속 이 영화는 회자되기보다 계속 넘치는 콘텐츠 속에 금방 파묻힐 것 같은 느낌이다. 넷플릭스에서 제공하는 영화·드라마 등의 콘텐츠를 보는 시간보다 무엇을 볼지 결정하지 못해 예고편만 보다 끝나는 상황을 ‘넷플릭스 증후군’이라 하는데 이를 겪는 사람이 더 늘어날 수도 있겠다는 오지랖 섞인 걱정을 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