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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May 02. 2022

별의별 아저씨

나는 아재

남자는 언제 처음 아저씨라고 불릴까? 내 기억으로는 군 복무를 할 때다. 낯선 사람이 나를 부르더라도 ‘저기요’가 대부분일 텐데. 20대의 한창 젊은 나이인데도 군인이라는 이유로 아저씨라고 불리는 것이다. 머리는 나를 부르는 게 아닐 거라고 부정하지만 몸은 나를 부른다는 것을 아는지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서서히 아저씨 호칭에 익숙해지며 나를 아저씨로 인정하게 된다.


같은 사람인데도 청년 혹은 학생인 나와 아저씨인 나에 대한 인식은 달라진다. 아저씨는 왠지 체력이 떨어져 보이고 잘 씻지 않을 것 같으며 생각도 꽉 막혀 대화가 잘 통하지 않을 것만 같다. 하지만 아저씨가 나오는데도 그런 편견이 들지 않고 오빠 소리가 절로 나오는 아저씨도 있기 마련이다. 영화 <아저씨>에 나오는 원빈 정도면 그럴 것이다. 보통의 남자는 대부분 관련 없는 말이다.


아저씨


전직 특수요원인 차태식(원빈)은 전당포를 운영하며 살아간다. 이곳은 물건을 맡기는 사람 외에 특별한 사람이 찾는다. 옆집 소녀 소미(김새론)다. 태식은 소미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친해지지만 어느 날 소미가 사라진다. 소미의 행방을 쫓는 동안 태식은 범죄 조직과 경찰의 추격을 받게 된다.


<아저씨>는 나쁘게 말하면 흔한 액션 영화다. 납치와 복수라는 보는 순간은 긴장되지만 결말이 예상돼 편하게 볼 수 있는 그런 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 속 액션 신은 뻔할 수 있는 영화를 특별하게 만든다. 잔인할 수 있지만 화끈한 격투 장면은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더 눈에 띄는 것은 화면 구도다. FPS 게임을 하는 것처럼 인물의 모습을 담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시점으로 화면을 담을 때가 있다. 왠지 아저씨의 게임 감성을 자극하는 것 같아 반가우면서도 티를 낼 수 없게 만든다.


다양한 아저씨가 나온다


또 다른 매력은 캐릭터다. 영화 제목이 아저씨이듯 정말 다양한 아저씨가 나온다. 주인공 태식은 어두워 보이지만 따뜻한 사람이다. 머리까지 정리하니 더 멋있어지는 ‘좋은 아저씨’다. 이와 반대로 나쁜 아저씨도 있다. 마약과 장기매매를 일삼는 만석(김희원)과 종석(김성오)은 시종일관 태식과 소미를 괴롭힌다. 배우가 아닌 실제 관련 종사자를 데리고 온 것은 아닐지 착각이 들 정도로 무섭고 기억에 지워지지 않는 ‘나쁜 아저씨’다. 그리고 외국 아저씨 람로완(타나용 웡트라쿨). 이 아저씨는 만석, 종석 형제에 고용돼 일하는 킬러다. 납치된 소미를 조금이나마 지켜주고 챙겨주는 ‘나쁜 줄 알았는데 꽤 괜찮은 아저씨’다. 이외에도 짧지만 각자의 개성을 보여주는 형사 아저씨들(김태훈, 이종필)까지. 개성 강한 다양한 아저씨들이 영화의 이야기 구성이 단순하고 부족해도 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이 영화는 영상미라는 것이 구도, 색채 등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물에서도 나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는 여러모로 인상적이다. 원빈이 하는 대사와 모습은 감탄사가 나오게 정말 멋지다. 원빈이 이 영화에서 엄청난 연기를 펼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연기자들의 개성이 강함에도 원맨쇼라고 느껴진다. 특히 이발하는 모습은 길이 남을 명장면이다. 우리 아저씨들이 하면 손발이 오그라들고 ‘왜 저래’ 소리가 절로 나온다. 우리가 부르면 김장훈 어설픈 모창으로 들릴만한 OST도 여운이 오래 남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영화 <아저씨>는 아저씨에 대한 환상을 갖게 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아저씨는 찾기 힘들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거울을 봤을 때 나오는 아저씨를 보면 처참하다. 원빈의 CF 대사인 “이게 그냥 커피라면 이건 TOP야.”를 패러디한다면 원빈이 아저씨라면 나는 아재다. 같은 단어이지만 향이 다르게 느껴지는 그런 느낌이랄까.


영화의 마지막을 보며 어떻게든 구색을 만들면 후속작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일말의 기대를 가졌지만 소미 역할을 맡은 김새론은 벌써 20대 숙녀가 되었고 원빈은 여전히 이 당시 외모를 유지하고 있지만 영화, 드라마가 아닌 광고에서만 찾아보는 전업 모델처럼 활동한 지 오래다. 만약 <아저씨 2>가 나온다면 늙지 않은 냉동인간 아저씨로 나오는 건 아닐는지. <아저씨>는 다양한 아저씨의 매력을 보여주며 현실 속 나란 아저씨의 자존감을 낮추는 영화이자 후속작을 상상할 정도로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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