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병과 TMI
대화의 즐거움 중 하나는 스토리와 정보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의 이야기를 듣고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즐겁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남의 일을 듣게 되면 흥미가 생기고 배움이 된다. 또 내가 겪었던 일을 남도 겪었을 때, 공감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다. 사람은 만나는 것은 경험하지 못한 다른 세상과 조우이기도 하다.
가벼운 안부 인사, 유쾌한 농담, 심도 있는 토론, 진지한 인생 이야기. 대화의 소재와 주제는 다양하지만, 선택은 자유롭게 할 수 없는 요즘이다. 대화 도중 스스로 대사를 거르고 거르는 자기 검열 단계를 거치기 때문이다. 내가 그중 한 명이다.
나는 오랜 투병 생활을 하고 있다. 병명은 ‘진지병’. 대화를 할 때마다 진지하게 대화에 접근하는 병이다. 많은 사람이 치유를 권장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오래 대화를 한다는 것. 그건 내게는 신뢰와 엮을 수 있는 일이다. 내 속마음을 털어놓기는 쉽지 않다. 그 사람을 믿기에 나는 대화를 통해 나를 드러낸다. 하지만 종종 “왜 이렇게 진지하냐?” 같은 말을 들었다. 내 반응이 누군가에게는 불편이겠다는 생각을 하고 나서는 내 생각을 드러내기가 어려웠다. 말수도 줄었다.
생각은 주관적이기에 객관적인 정보와 사실을 이야기해보면 어떻겠냐고 한다면 또 다른 녀석이 대화의 길목을 막는다. 요즘 떠오르는 단어 ‘TMI’ 때문이다. Too Much Information. 말이 많다. 설명이 길다. 이렇게 말하지 않고 “너무 TMI인데.”하면 머쓱한 분위기와 함께 대화는 끝난다. 다시 이야기를 선뜻 꺼내기가 어려워진다. 나를 공유하는 것도 너를 알아가는 것도 조심스러워졌다.
SNS의 발달 때문인지 사람들은 가벼운 말과 짧은 글에 익숙하고 이를 선호하는 것 같다. 내가 알고 싶은 무언가가 누군가에게는 알고 싶지 않고 알리고 싶지 않은 것일 수 있으니까. 또 남의 인생에 ‘침해’라고 느낄 정도로 관여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런 불편함을 없애고자 진지병과 TMI가 생긴 것이라면 이 사회에 사는 구성원인 내가 인정하고 존중해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듣지 않을 권리’가 있다면 ‘말할 권리’, ‘표현할 권리’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내가 듣고 싶지 않아 남의 말을 끊어 버린 적은 없었는지. 이 때문에 그 사람의 마음에 흠집을 낸 적은 없었는지. 나를 돌아보게 된다.
괜히 외로워진다. 대화를 이어 나가야 한다면 누구나 가벼운 소재와 주제를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재담꾼이 되어야 하는 걸까? 대화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개드립’을 연구하는 날이 늘어간다. 재미를 위해 심지어는 상대를 깎아내리는 유머까지 고려하게 된다. 유쾌한 분위기로 마무리되면 좋겠지만 갑자기 분위기 싸늘해지는 ‘갑분싸’가 발생한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더는 진지하게 장편의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는 건가? 그래도 나는 믿는다. 길고 재미없는 일, 관심 밖 일일지라도 조금이라도 귀 기울였을 때 말한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에게 언젠가 꼭 도움이 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