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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Jul 04. 2022

나는 사고가 싫다

노동요 - 철도 인생

자부심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라 지하철은 안전하고 편리한 운송수단이다. 하지만 사고가 없는 것은 아니다. 모든 상황을 인간이 통제할 수 없다. 예상하지 못한 주변의 상황이 사고를 만든다. 그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점검하고 보수한다. 그래도 모든 변수를 100% 통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역무원 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고를 겪었지만 약 1년 간 로컬관제원 생활을 하면서도 사고를 겪었다. 사고를 겪으면 몸에서 혼이 빠져나갔다가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사고 후 내가 어떻게 수습했는지 기억이 제대로 나지 않을 정도로 시간은 빠르게 흘러있다. 마무리될 때면 안도감에 한숨은 나온다. 그때 긴장이 풀린다. 다음날 온몸을 두들겨 맞은 것처럼 뻐근하다. 그다지 반갑지 않은 느낌이다. 그래서 사고를 겪고 난 후 출근길 집을 나설 때, 교대 후 업무를 시작할 때 주문 외우듯 하는 말이 있다. “제발 아무 일 없어라.”


최근 내가 겪었던 사고는 자살 시도 사고와 전차선 사고다. 자살 시도 사고는 사람이 선로에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던 사고다. 시도자는 몸을 뉘이고 있었는데 체구가 작아 사망하지 않고 시도에 그쳤다. 천운이었다. 이 사고 때문에 열차 운행에 지장이 생겨 운행 중이던 일반 열차와 급행열차 운행이 일시 정지되었다가 수습될 때까지 하나의 선로로 두 열차를 번갈아가며 운행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열차는 지연되고 기다리는 이들의 항의에 많은 역이 쩔쩔맸다. 최대한 빨리 수습하려 하지만 언제나 승객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용자들이 불편한 만큼 이를 수습하기 위해 애를 쓰는 사람도 힘들다. 


사상 사고가 일어난 후 관련 인터넷 뉴스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면 ‘죽고 싶으면 민폐 끼치지 말고 혼자 죽으라’는 말을 많이 보게 된다. 당사자는 얼마나 삶이 고통스러워 스스로 죽는 것을 택하겠는가. 그래서 그 댓글을 보면 야박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글쓴이의 심정이 어떤지도 이해가 된다. 나도 그 때문에 너무나 힘든 하루를 보냈으니까.


전차선 사고는 자연 때문에 발생한 사고였다. 사람은 결코 자연을 온전히 통제할 수 없다. 사고가 일어난 날은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이었다. 그러다보니 어느 한 건물에 있던 철판이 떨어져 전차선이 끊어졌다. 그래서 열차 운행이 중단되었다. 열차가 자리해 있던 전차선에 떨어졌다면 더 큰 사고가 일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열차가 없는 전차선에 떨어져 끔찍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를 수습하느라 정말 힘들었다. 이때도 열차 운행이 멈춰 하나의 선로로 일반 열차와 급행열차를 번갈아 움직였다. 앉지도 못하고 쏟아지는 문의와 항의 전화, 무전 세례를 받아야 했고 사과와 안내가 담긴 방송을 계속해야 했다.


열차 운행에 지장이 생기는 것은 여러 사례가 있다. 열차가 지연되고 열차 오가는 순서가 바뀌기도 하며 심각하면 열차 운행이 중단되기도 한다. 열차 통제를 우리가 임의로 하는 것이 아니라 관제사의 지시에 따르기 때문에 융통성이나 나만의 참신한 생각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이렇게 하면 빠르고 편하잖아.’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안전하고 원활히 움직일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사고가 나면 정상적인 방향으로 열차를 운행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업무 투입 전 집합교육에서 배운 적이 있다. ‘그런 일이 있을까?’ 내가 실제로 그런 일을 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났다. 열차를 이동시키기 위해 하행 열차를 상행선으로 움직였다. 출퇴근길 승객들의 두 배 이상 되는 것 같은 수의 사람들이 승강장에 있는 것을 보며 겁도 났다.


이례 상황 속에는 모두 바쁘다. 일하는 사람은 자기가 위치한 역의 상황만 알지 다른 역 상황까지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전이나 전화로 자주 소통해야 하는데 급하다보니 언성이 높아지기도 하고 정보를 잘못 전하거나 잘못 이해하는 등 소통 문제가 일어나기도 한다. 많은 이가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머리는 알지만 몸과 행동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내가 그런 마음을 갖고 있다 해도 관제나 기관사, 차장, 그 외 다른 직원들이 그렇지 못하면 덩달아 초조하고 급하게 된다. 반대의 경우도 그렇다. 전화와 무전의 다급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를 들으면 집중이 흐트러진다.


처리해야 할 게 많은데 어떤 것부터 손을 대야 할지 혼란이 찾아온다. 내 손은 두 개지만 이때만큼은 문어, 오징어가 된 것처럼 손이 여러 개가 된 것처럼 움직이게 된다. 위기에 몰리면 초인적인 힘이 나온다고 하는데 나도 이 순간만큼은 초인이 되었던 것 같다. 지금껏 겪었던 별의별 상황이 내 마음을 강하게 키워주지 않았더라면 사고를 수습하는 동안 펑펑 울었을지도 모른다. 사고는 익숙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두가 당황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훈련을 하고 대비를 하는 거란 깨달음이 가슴과 머리에 깊이 꽂힌다.


사고를 겪고 나니 나는 초심으로 돌아가게 됐다. 처음 관제 업무를 맡았을 때 사고가 일어나는 것은 아닐지 걱정 속에 살았다. 이처럼 사고를 겪으면 또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까 한동안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생활하게 된다. 그래서 모든 행동과 생각에 조심하게 된다. 일에 익숙해져 느슨해진 나를 긴장감을 갖고 일하게 됐다. 그래도 사고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며 정말이지 웬만하면 겪고 싶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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