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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Jun 13. 2022

하루의 시작을 여는 이들

노동요 - 철도 인생

마지막 열차가 운행을 마치면 안도감이 생긴다. 영업이 끝난 역사를 정리하고 불을 다 끄고 잠깐의 휴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두워진 역의 적막함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새벽 4~5시 사이로 역은 손님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타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첫차를 이용하는 사람은 꽤 많다. 셔터를 올리지도 않았는데 문 앞에서 기다리는 이도 있다. 추운 겨울에는 두꺼운 패딩에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열차가 오기를 기다린다. 찬바람을 맞으며 승강장에서 기다리는 사람,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가 바람을 피하는 사람, 맞이방에서 기다리다 열차가 도착할 때쯤 승강장으로 향하는 사람. 역 곳곳에 있던 사람들이 첫차에 오른다. 그리고 역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열차는 꽉 찬다.  


이들을 대상으로 김밥 같은 요깃거리를 파는 사람도 가끔 역 앞에 있다. 역 안에서 장사할 수 없기 때문에 온몸에 찬바람을 맞으며 장사한다. 역이 문을 여는 것에 맞춰 나와야 하기 때문에 음식을 준비하려면 더 이른 시간에 일어나거나 전날부터 준비해야 한다. 남들 자는 시간에 자신은 잠을 줄이는 것이다. 이용객이나 주변 상인의 민원으로 장사를 막아야 하는 때도 있다. 먹고살겠다고 하는 일인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다. 


새벽부터 나가야 하고 자기보다 더 늦게 출근한 사람보다 더 늦게 돌아오는 일을 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다 생업을 위해 하는 일이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학교에 가기 위해 나도 한때는 이들과 함께 분주하게 움직였다. 별로 없을 것 같지만 많은 수의 인파를 보며 신기했었던 것이 감상의 전부였다. 내 앞길 가느라 바빴다.  


이제 역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다시금 그런 모습을 보니 느낌이 다르다. 동경이나 동정이 아니다.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지금 나는 '열심히'라는 말은 입에 달고 있지만 그 말에 부합된 삶을 살고 있었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지체 없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어쩌면 편하게 앉아 게으르게 생활하고 있으며 그런 삶을 인식 없이 하루하루 연장하며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눈앞에 보이는 사람과 삶을 나와 비교하면서 나온 답이 아니고, 그 사람의 삶을 깎아내리는 것도 아니다. 하나의 삶마다 하루를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며 마음에 와닿는 것이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살기 위해서 어떻게든 움직이고 그래야만 하는 사람이니까. 


세상은 바쁘게 돌아간다. 춥고 어두운 겨울에도 무덥고 해가 긴 여름에도. 저마다 사연을 가지고 출입문 안으로 들어선다. 의미를 부여하며 사는 이도 있을 것이고 눈앞의 일만 바라보며 삶의 이유를 생각할 겨를 없이 움직이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의중을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나도 그들을 보며 날마다 각오를 다지게 된다는 것이다. 하루의 시작을 여는 이들이 있기에 나도 새롭게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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