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는 오래전부터 남성의 문화처럼 인식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성이 출전하는 종목이 늘어나고 종목 내 경기력이 향상되었지만, 경쟁적 요소와 사용하는 근육과 힘에서 나오는 거침은 남성 종목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전통적으로 여성 종목으로 불리는 것은 부드럽고 섬세하고 유연함이 보이는 체조 같은 종목이었다. 같은 종목을 하더라도 여성 경기는 ‘미녀 군단’ 같은 수식어로 외적인 모습이 많이 조명되었다. 예능에서 여성의 역할도 그러했다. 쇼 프로그램의 MC로 출연해도 메인보다 보조 역할을 맡을 때가 많았고 여성만 출연하거나 여성 위주로 움직이는 방송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요즘 각종 스포츠에서 남성 못지않은 격렬함과 힘을 보여주는 여성의 모습에 대중이 빠져들고 있다. 예능에서도 그런 모습을 보이는 여성이 주목받고 있으며 예능 속 역할의 변화도 일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스포츠 예능이다. MBC에서 명절 행사처럼 하는 <아이돌 스타 육상 선수권대회>는 격렬한 스포츠는 대부분 남자 아이돌의 몫이었다. KBS <우리 동네 예체능>이나 JTBC <뭉쳐야 찬다>도 남성 출연진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지금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스포츠 예능은 SBS <골 때리는 그녀들>이다.
이 방송에서는 모델, 배우, 아나운서, 코미디언 등 다양한 직업의 여성을 같은 직종끼리 한 팀으로 묶어 리그 경기를 펼친다. 초기에는 초보자들의 축구 도전 속 미숙한 모습에서 나오는 재미가 많았다. 하지만 정작 시청자들이 빠졌던 것은 이들의 ‘적당히’를 넘어선 모습이었다. 기량 발전을 위해 개인 훈련에 몰두하고 부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경기장을 뛰는 모습은 마치 프로 스포츠 같아 예능을 즐기는 이외에도 스포츠를 즐기는 시청자까지 끌어모았다. 보조가 아닌 메인에 세워도 더 적극적이고 강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점은 여성의 예능 활용과 예능 속 인식을 바꿔버렸다.
<골 때리는 그녀들> 외에도 여성이 주인공인 방송은 더 있다. 채널 E의 <노는 언니>다. 이 방송은 격렬함 속에 살았던 선수 출신 여성 출연자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박세리를 포함한 수많은 여성 스포츠 선수들이 자신들의 장기인 스포츠로 뭔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 사람으로서 삶을 나누는 모습과 자신의 종목이 아닌 운동이나 다른 활동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시청자에게 또 다른 재미를 주고 있다.
지난해 대성공을 거둔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는 춤이라는 요소의 신선함 외에 여성 댄서의 모습에 재미를 주었다. 가수의 무대를 돕는 속칭 ‘백댄서’라는 이름이 강했던 이들이 주인공이 되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온전히 보여주고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시청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 여성 예능과 예능에서 여성 출연자의 약진이 일시적인 트렌드일지 지속적인 변화일지 확정 짓기는 여전히 이르나 여성 방송인은 오래전부터 자신의 활용 가능성을 스스로 증명하며 활로를 마련하고 있었다. 그 노력이 점점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코미디언 송은이를 들 수 있다. 개그맨과 가수의 합성어인 ‘개가수’라는 말이 나오기 전부터 앨범을 냈던 ‘개가 수’의 선두 주자였으며 이후 동료들과 꾸준히 팀을 이뤄 앨범을 냈다. 직접 방송 플랫폼을 개척해 팟캐스트를 포함한 다양한 방송에 도전하며 기획자와 개발자로서 모습도 보였다. 그런 도전적인 모습은 황무지에 가까운 곳을 갈고 씨를 뿌리는 모습과 같았다. 지금 그 결실이 맺히고 있다. 송은이의 개척적인 행동은 자신을 포함한 여성 방송인의 활용은 자기 자신과 주변 환경에 변화를 일으켰다.
물론 장르가 흥하거나 여성이 출연한다고 무조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스포츠와 여성이라는 트렌디한 요소를 활용해 여성의 농구 도전을 다루는 예능 JTBC <마녀 체력 농구부>는 <골 때리는 그녀들>의 흥행 후 제작되었지만,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다. 같은 초심자의 위치에서 실력이 향상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지만 농구는 축구에 비해 룰이 복잡하고 기술적이라 초심자들인 출연자가 빨리 성장할 수 없다. 그래서 <골때녀>처럼 성장한 모습을 보는 재미를 찾기 어렵다. 또한 경기장을 왕복하는 횟수가 축구보다 많아 체력적 소모도 커 격렬하거나 극적인 모습도 만들기 어렵다.
핫했던 춤을 활용한 것도 그렇다. JTBC <쇼다운>은 여성이 아닌 남성 B-Boy를 출연자로 삼은 댄스 배틀 프로그램이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 이상의 난도 높은 춤을 선보이지만 <스트릿 우먼 파이터>만큼 흥행하진 못하고 있다. 후발 주자라는 점에서 익숙함과 기시감에 나오는 지루함도 있겠지만 이 상황은 특정 장르가 더 이상 특정 성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런 인식이 있는 사람에게는 반전적인 재미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여성 출연자들이 예전 같으면 하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던 장르와 역할을 충분히 소화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여성은 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할 수 없다는 것은 무의식적으로나 은연중에 있던 편견이었을 것이다. 여성이 출연하는 예능과 여성 방송인의 약진은 누군가의 자리를 빼앗기보다는 점점 늘어나는 방송 플랫폼과 프로그램 속 새로움을 전달하는 데 도움 되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갈수록 커지는 남녀 갈등이 방송에도 영향을 미쳐 재미있는 콘텐츠를 즐길 수 없게 만드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