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안 가도 됐을 듯
시대마다 유행이 있다. 사례가 많이 있겠지만 지금 바로 생각나는 것을 떠올려보면 가수 세븐이 데뷔했을 때 신었던 ‘힐리스’ 신발, 2002년 월드컵 유행했던 ‘Be the reds’ 티셔츠, 가수 샤이니가 데뷔하며 입었던 ‘스키니진’이 생각난다.
영화로는 2000년대 초 유행했던 조폭 영화가 떠오른다. <두사부일체>, <가문의 영광>, <조폭 마누라>, <친구> 등 특정 집단의 제작 의뢰를 받은 게 아닌가 의문이 들 정도로 수없이 나왔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인지 한 작품이 성공하니 여기저기서 따라 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각자 나름대로 성공을 거뒀으니 작품 자체를 두고는 말이 많아도 상업적인 측면에서는 깎아내리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본 영화는 <달마야 놀자>다. 특이하게 불교와 엮인 영화다. 조폭과 불교. 왠지 대척점에 있는 것 같아 안 어울려 보이나 여러 에피소드를 잘 섞어 이야기를 끝까지 잘 만들었고 폭력적인 면도 다른 영화에 비하면 덜해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코미디 영화였다. 지금은 캐스팅하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유명 배우들이 많이 등장해 개봉 당시에도 보는 재미가 있었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도 다시 보니 옛날 과자 선물 세트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
다른 조직과 자리를 놓고 다투던 재규(박신양) 일당은 기습을 당해 갈 곳을 잃어 절로 향한다. 불청객인 이들과 스님 사이 불편한 동거는 갈등으로 이어지고 더 머물기 위해, 내쫓기 위해 대결을 펼치게 된다.
영화 속 스님과 조폭들의 대결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재미만 있기 때문이 아니다. 깨닫게 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밑 빠진 독에 물을 가득 채우라는 노스님(김인문)의 미션에 재규 팀과 스님 팀은 갖가지 방법을 쓴다. 재규는 기지를 발휘해 독을 연못에 던져버린다. 이후 스님들의 불평에도 끊임없이 재규 일당을 챙기는 노스님에게 왜 자신들에게 잘해주느냐는 재규의 질문에 노스님은 답한다. “나도 밑 빠진 너희를 그냥 내 마음에 던진 것뿐이야.”
재규 일당의 말썽에 절에 있는 불상의 귀가 떨어지자 스님들은 당황하고 슬퍼한다. 하지만 노스님은 다시 붙이면 되지 않느냐며 화를 낸다. 진정한 부처는 마음속에 있다는 것이다.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후 노스님이 정리하듯 툭툭 던지는 말에서 가르침이란 게 이런 것인가 깨닫게 된다.
영화는 주연과 조연이 있다지만 이 영화는 나름 캐릭터별 에피소드를 잘 분배한 영화다. 박신양과 정진영이 많이 나오지만 다른 배우들의 이야기도 짧지만 각각 달라 보는 재미가 있었다. 조폭도 아니고 스님도 아닌 절에서 공부하는 남자인 배우 김영준은 출연 당시 한창 인기 있었던 MBC 시트콤 <뉴 논스톱>의 타조알로 인기를 끌고 있었기에 이 배우가 나오는 장면마다 괜히 더 웃었던 기억이 있다.
보는 이에게 생각해볼거리를 던진다는 점에서 <달마야 놀자>는 다른 조폭 영화와 다르게 느껴졌다. 나름의 흥행 덕에 <달마야 서울 가자>라는 후속작도 나왔지만 기억나는 것이 없을 정도로 전편만큼 재미도 의미도 남지 않는 영화였다. 영화 시리즈 속편에 대한 표현으로 형보다 나은 아우 없다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이 영화가 그 표현에 딱 맞아떨어진다.
한번 시들면 사라지는 유행도 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반복되는 유행도 있다. 조폭을 소재로 한 영화는 어떻게 될까. 한국형 누아르 영화를 만들 때 빼기 어려운 소재가 조폭이라 완전히 배제할 순 없겠지만 (조폭 영화를 누아르 영화라고 이름을 고급스럽게 포장만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이를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기보다는 등장인물의 소속으로 사용하는 방식을 쓸 것 같다. 이 시절만큼 이야기나 캐릭터 활용에서 노골적으로 활용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한편으론 조폭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이런 한국식 코미디가 많이 나오지 않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있다. 한국적인 요소보다 거액의 제작비가 투입된 블록버스터 영화 같은 투입한 만큼 많은 양의 돈과 관객을 얻으려 하는 스케일의 영화만 늘어나는 것이 요즘 추세 같아 아쉽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잠잠해지는 만큼 다양한 영화가 만들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