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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Aug 08. 2022

영화로 담기엔 너무 큰 당신

그래도 미워할 수 없는 당신

초등학교 6학년 시절, 매달 수업 대신 동아리 활동을 하던 때가 있었다. 보이스카우트, 걸스카우트, 아람단, 해양소년단, 우주소년단, R.C.Y 등 활동을 하는 친구들은 동아리 대신 그 모임에 갔고 단체에 속하지 못한 학생은 스킬부, 독서부 등 따로 만들어진 동아리에 갔다. 단체에 가입할 생각도 못 했던 나는 일반 동아리 활동에 했는데 책과 친하지 않았음에도 독서부에 들어가 책을 읽었다.


어느 날 독서부 친구가 가져온 책이 눈에 들어왔다. 표지에는 이마에 흉터 있는 어눌하게 생긴 소년이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그 소년은 바로 ‘해리 포터’였다. 책이 생각보다 두께가 두껍고 상, 하권으로 나뉘어 있어 흥미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그 친구의 너무 재미있다는 말에 속는 셈 치고 1편인 <마법사의 돌>을 서점에서 사서 읽었다. 그리고 당시 출판되었던 3편까지 금세 읽었다. 이후 해리 포터 시리즈는 완결될 때까지 내가 좋아하는 책이 되었다. 4편부터는 속편이 언제 나올지 기다리며 읽었고 시중에 나오자마자 바로 샀다.


극장에서 본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마니아는 아니었지만 해리 포터 시리즈는 내 청소년기에 비중이 있었던 작품이었다. 그래서 영화로 제작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설렜다. 글을 읽고 상상으로만 그리던 인물들이 현실에서 보기 힘든 배경과 이야기를 눈으로 볼 수 있을 거란 기대 때문이었다. 그리고 겨울 크리스마스에 누나와 사촌 형과 함께 영화관에서 심야로 영화화된 1편을 처음으로 봤다. 한겨울 한밤중의 감성 때문이었을까. 해리 포터는 크리스마스 관련 영화가 아닌데도 크리스마스 영화처럼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책이든 드라마, 연극이든 원작이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 잘해야 본전이라는 생각이 있다. 원작을 뛰어넘는 영화도 분명히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주어진 한정된 시간 안에 영화가 책의 내용을 완벽하게 담아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몇몇 이야기는 빠지거나 변형되기도 한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불만은 중요하다고 여긴 부분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을 때 일어난다. 배경 표현이나 캐스팅 등은 늘 논란이 생기는 부분 중 하나다. 그밖에 이야기 진행도 잘 돼야 하지만 인물의 감정이 잘 표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부분이 빠지거나, 자기 생각과 다르거나, 잘못 전달되었다고 느껴진다면 아쉬움을 토로한다. 



해리 포터도 그렇다. 영화로 만들어진 해리 포터 1편을 재미있게 보긴 했지만 아쉬웠다. 이미 책을 읽을 때 상상으로 그림을 그렸기에 영화가 나올 때마다 내가 그린 그림과 비교하게 되었고 다름에서 나오는 이질감은 영화를 멀리하게 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영화로 다가온 해리 포터는 내게 재미도 적고 피로한 영화였다. 그래서 영화가 꾸준히 제작되어도 영화를 보지 않았다. 2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인 ‘리턴 투 호그와트’가 나오면서 조금 흥미가 생겼고 다큐멘터리를 보기 전에 영화를 끝까지 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며칠간 영화를 보면서 눈에 들어왔던 것은 점점 커가는 해리 포터와 친구들, 그리고 나이를 먹어가는 배우들이었다. 그리고 다큐멘터리에서 이 영화가 그들에게 어떠한 의미였는지 나누는 모습을 보며 단순한 필모그래피 기록이 아니라 인생의 일부였음을 느꼈다.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세상을 떠난 배우도 있었고 촬영이 모두 끝난 뒤 세상을 떠나 다큐멘터리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배우도 있었다. 태어나면 떠나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관객인 우리보다 피부로 더 가깝게 느꼈을 이들에게 이 영화는 삶이었을 것이다. 특히나 주인공들은 마법 학교 호그와트에 입학하는 어린이에서 청년이 되기까지 직업으로나 인간으로나 주변 배우, 스태프에게 많은 것을 배우지 않았을까. 해리 포터 시리즈를 영화를 보는 나도 그냥 영화가 완성되었다는 느낌보다 이렇게 시간이 흘렀다는 생각에 감회가 새로웠다. 


영화도 그렇고 소설도 그렇고 만들다가 반응이 시원찮다는 것을 포함한 여러 이유로 리부트 되기도 하고 제작이 중단된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찝찝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같은 판타지 소설 원작인 <반지의 제왕>과 비슷한 시기 제작되어 어떤 게 더 나을지 말도 있었다. <반지의 제왕>은 잘 만든 영화로 여전히 회자되지만 <해리 포터>는 아쉬움이 많은 영화로 거론된다. 하지만 반응과 평가와 상관없이 중단하지 않고 끝까지 영화를 제작한 모습은 마치 마라톤을 완주한 선수처럼 느껴졌다. 영화만 보고 지나쳤다면 몰랐겠지만, 영화에 출연한 이들, 제작에 참여한 이들을 보면서 이 영화는 정말 거대한 프로젝트였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런 점에서 해리 포터 시리즈의 수고는 높이 살만하다. 


장시간 영화를 보는데 쏟은 에너지 때문에 얻은 엉덩이의 뻐근함과 눈의 침침함은 오랜만에 추억을 소환하고 잊고 있었던 해리 포터에 대한 애정을 확인할 수 있었기에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해리 포터는 나와 함께 나이 들어가며 끝을 본 영화였기에 다른 영화와 조금은 다르게 내게 다가왔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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