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길을 걸으면 밟아보지 않아도 흙이 꽁꽁 얼어 버린 게 느껴진다. 게다가 차갑게 얼어 딱딱하게 굳은 땅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달력을 넘길수록 풀도 시간이 된 걸 아는지 조금씩 머리를 드러낸다. 싹이 겨울 흙의 완강함을 흔들고 유연해지는 땅을 보며 다시 한번 자연의 리듬에 신비함을 느낀다. 더 자라 흙을 뒤덮고 그 푸름을 자랑할 모습이 기대된다.
Mnet에서 방영 중인 <고등 래퍼>의 청소년 래퍼들을 보며 문득 조금씩 봄에 자라나는 풀처럼 느껴졌다. 딱딱한 인식과 편견에 맞서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얼었던 땅을 뚫고 기지개를 켜는 풀 같았다. 아웃사이더, 자퇴생, 독특한 패션과 머리 모양 등 보수적인 사람은 그들의 개성적인 모습을 보며 학생으로서 본분을 다하지 않고 힙합이라는 잘못된 문화에 빠져 인생을 망치는 것이 아니냐며 혀를 찬다. 방송에서 보여주는 모습과 만들어내는 이미지만으로 온전히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래퍼들의 모습과 그들이 읊는 가사를 지켜보면 기우인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쇼미 더 머니>에 나오는 래퍼들과 다른 가사를 보여주는 모습에 놀랐다. 자기의 생각을 펼쳐낼 줄 알기 때문이다. 물론 시간이 흘러 사람들의 걱정대로 일명 ‘힙찔이’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인생은 그들이 사는 건데 어떻게 부정적인 예상만 할 수 있을까? 나는 오히려 톡톡 튀는 고등 래퍼들이 대단하게 여겨진다. 나는 그 나이 때 그렇게 생각을 표현하고 살았는가. 담아두기만 했지 표현하지 못했다. 하지만 고등 래퍼들은 거침없다. 자기 랩이 호평을 받든 혹평을 받든 당당히 자리에 나서는 용기가 있다.
자기만의 생각이 있고 또 꿈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은가. 때 묻지 않은 모습에 나오는 가사는 더 창의적이고 생각의 폭이 넓어 보였다. 비트에 맞춰 다양한 기술과 플로우로 돈 자랑, 실력 자랑이 아닌 세상을 바라보는 모습, 자신의 꿈, 고민과 속 이야기 등을 하는 모습을 보며 시인 같았다. 사람들이 말하는 진짜 ‘Swag’이고 더 콰이엇이 말한 ‘인성 힙합’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나는 그들의 젊음이 부럽고 기대된다.
그렇다고 내 인생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내 미래가 기대된다. 나이가 들면 사람이 바뀐다. 몸도 마음도 달라진다. 몸은 점점 약해질지 몰라도 내면은 더 나아진다. 젊은이들은 패기가 있지만 나이 든 사람은 지혜가 있다는 말은 일리 있는 말이다. 나이가 들면 기억력이나 상상력은 어쩔 수 없이 줄어들지만, 그들의 통찰과 판단력은 오래될수록 가치가 커지는 와인 같다.
어린이만큼 나이 든 사람, 늙은이도 무시를 당한다. 젊은 사람들은 몇몇 생각이 굳어버린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꼰대’라는 이름표를 붙여버린다. 점점 약해지는 모습을 보며 생각을 맞대기도 전에 무시한다. 하지만 살아온 세월의 경력과 경험은 무시할 수 없다. KBS에서 방영 중인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에서 김영철 아저씨를 보면 알 수 있다. 동네 곳곳을 누비며 그곳 사람들을 만나는 김영철 아저씨는 조급함이 없다. 자기가 겪어 온 이야기들을 천천히 풀어낸다. 그 여유는 젊은이의 패기와 다른 느낌의 기개다. 만나는 사람들은 어떠한가.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으로 넘친다. 능숙히 일하는 모습을 보며 장인, 달인의 모습은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결국 사람은 나이가 들고 약해진다. 지금 젊음을 자랑하는 사람들도 시간이 흐르면 지금 무시하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변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과거의 젊음만 그리워하며 살 것인가. 인생 선배들의 Swag를 공경하고 중년과 노년의 시기를 기대하며 맞이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 역시 항상 그런 마음가짐을 갖기를 되뇌고 있다. 김영철 아저씨와 그 속의 사람들을 보며 나의 미래가 기대된다. 나중에 내 인생을 돌아볼 때 나름 괜찮았다고 말할 수 있기를, 이를 위해 앞으로의 내가 더 나아지길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