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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Aug 15. 2022

역무원은 샌드백이 아닙니다

노동요 - 철도 인생

얼마 전 한 지하철역의 역무원이 고객에게 맞았다는 뉴스를 봤다. 폭행의 이유는 전동 킥보드를 역사 내에서 타는 것을 제지했다는 것이었다. 휠체어가 아닌 이상 역사, 승강장에서 개인 이동장비를 이용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타지 말라고 정중히 말해도 무시하고 지나가거나 되레 화를 내는 사람이 태반이다. 여기에 폭력까지 쓰면 방법이 없다. 이번 사고에 연관된 역무원은 정말 참을성 있는 사람이다. 폭력을 쓸 때 받아 치면 쌍방 폭행이 되기에 어쩔 수 없지만, 맞고만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성질 같아선 두들겨 주고 싶지만, CCTV의 눈, 다른 고객의 눈이 있어 차마 그럴 수 없다. 


나도 맞은 적이 몇 번 있다. 어떤 취객을 조용히 보내려다 그 취객이 주먹을 휘둘렀는데 피해서 팔을 맞았다. 늦은 밤 별거 아닌 일에 소란을 만들고 싶지 않아 조용히 넘어갔다. 또 한 할아버지가 다른 조 직원에게 성희롱과 욕을 하며 소리를 지르고 있어 조용히 보내려다 뺨을 맞았다. 머리끝까지 화가 나 주먹이 나갈 뻔했지만, 꾹 참았다. 이미 철도 경찰을 부른 상황이었기에 철도 경찰이 오면 일이 처리될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철도 경찰은 할아버지가 떠난 후에 도착했다. 너무 늦게 왔으면서 내게 괜찮냐고 묻던 그 말이 어찌나 섭섭하던지. 일이 정리됐으니 가라고 보냈더니 역에 있는 편의점에서 빵 베어 물면서 가더라. 모든 철도 경찰이 그렇진 않겠지만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고소하면 끝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런 폭력 사건에 휘말리면 정말 귀찮아진다. 우선 경찰 조사를 받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가해자들은 합의하기 위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온다. 어떻게 전화번호를 알아내 지겹게 전화하기도 한다. 마음을 독하게 먹은 사람은 합의해주지 않고 벌 받게 하거나 거액의 돈을 챙기기도 하지만 받을 마음 없는 사과 공세에 지치거나 마음 약한 사람은 합의를 선택한다. 그런 모습을 주변에서 자주 봤다.


무능하거나 일을 허투루 하는 것 같이 보여 욕하는 사람도 있지만 역무원이 특별히 할 수 있는 게 없다. 취객이 쓰러져 자고 있으면 몸을 써서 퇴거시킬 수 없어 경찰을 부르는 게 최선이다. 성별이 다른 사람과 순간의 신체 접촉이 일어나면 성추행으로 고소당한다. 이런 상황에서 폭력은 어떻게 대할 수 있겠는가. 샌드백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테이저건 같은 자기방어 수단이 있거나 최소한 행동할 방법이 있다면”이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상상으로라도 새로운 해결책을 마련해본다. 


육체적인 상처는 낫더라도 정신적인 상처는 오래간다. 일하는 동안 계속 불특정 다수를 대면해야 하는 게 역무원인데 그걸 하기 겁이 난다. 최근에야 감정 치유 프로그램이 사내에서 나오고 있다. 회복하면 다행이지만 많은 역무원이 상처를 가슴에 안고 평생을 살아간다. 역에서 일하는 역무원, 사회복무요원은 샌드백이 아니다. 감정풀이 대상도 아니다. 원활한 여행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내가 이용자고 내 마음대로 하고 싶어도 역 근무자들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고 내가 사는 사회의 규칙, 이용하는 역의 규칙을 따르는 것이 이용객이자 사람으로서 도리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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