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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Sep 26. 2022

왁자지껄 체육대회

노동요 - 철도 인생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세상이 조금씩 일상 회복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덕분에 지긋지긋한 코로나19 바이러스도 곧 종식될 거라는 마음도 커진다. 예전 우리의 일상이 어떠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지독했다. 좋지 않은 쪽으로만 영향을 주었을 것 같지만, 의외로 역은 수혜를 입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취객의 감소다. 식당처럼 사업하는 이에게는 너무 힘든 시간이었겠지만 웬만한 업소가 일찍 문을 닫으면서 밤새 술을 마실 곳이 없었고 대중교통도 막차를 일찍 운영하는 바람에 많은 사람이 강제로 빠른 귀가를 해야 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일어나기 전만 해도 심야 전철역은 항상 긴장 속에 있어야 했다. 취객이 등장하지 않기만을 바랐다. 먹었던 것을 다시 토사물로 빚어내는 사람이나 얌전히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양반이다. 고성방가, 폭력 등 각종 진상을 부리는 취객을 만나는 날은 고생문이 활짝 열리는 날이다. 육체적 고통이야 금방 사라지지만 정신적 고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들을 과격한 표현으로 ‘적’이라 부른다면 적은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부에도 있다. 내부의 적은 회식에서 만들어진다.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로 회사에서 잠시 중단했던 각종 행사를 조심스레 개최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회식도 부활하고 있다. 회식을 하지 않아 휘파람을 불던 직원들의 표정은 울상이 되었다. 아직 이른 감이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환영하는 이들도 있어 회사는 조금씩 회식을 추진하는 분위기다.


역 자체에 기념할 게 있거나 근무하는 직원끼리 친하면 자체적으로 회식 자리를 갖기도 하지만 공식적으로 회식이 열리는 때는 체육대회, 송년회, 퇴임식을 꼽을 수 있다. 체육대회는 많은 역이 함께 모이는 거대한 행사다. 하지만 이름만 체육대회지 회식이나 마찬가지다. 내가 입사하기 전만 해도 정말 체육 활동으로 대회를 했다는데 경기 도중 너무 과도한 경쟁심 때문에 직원끼리 싸움이 일어나기도 하고 다치기도 해서 이름만 체육대회로 부르고 간단한 등산, 산책 등으로 강도를 줄인 신체 활동을 하거나 영화를 감상하는 등의 문화 행사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를 마치면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헤어진다. 대개 야간 근무를 마치고 비번인 날에 해서 제대로 된 활동을 하기는 쉽지 않다. 졸면서 하는 행사다.


밥만 먹고 헤어지면 좋겠지만 여럿이 모이는 회식에 술이 빠지기는 쉽지 않다. 음주라는 것은 단순한 식문화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음주는 사회생활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친분을 쌓기 위해 다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람들은 술잔을 비우고 채운다. 20대 학생일 때도 술자리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 자주 참여하지 않았던 나도 회사에서 술자리는 쉽게 피할 수 없었다. 가면을 쓸 수밖에 없다. 잘 놀고 마시는 사람이 아니지만, 흥을 깨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회사라는 간판이 있기에 이를 염두에 두며 최대한 예를 갖추나 술을 이기는 장사는 그리 많지 않다. 술의 끝은 대부분 고주망태다. 전날 밤 진상 취객을 상대하느라 진을 뺏는데 다음 날은 진상 동료를 상대한다면 연타석 홈런을 맞은 투수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멈추면 다행이지만 2, 3차를 가게 되면 더욱 피곤해진다. 하루가 다 가기 때문에 쉴 수 있는 날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술을 마시는 2차도 피곤하지만, 노래방으로 가는 2차는 더욱 피곤하다.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 이들이 있다면 선곡의 기회가 많이 주어지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분위기라면 부끄러움 많이 타는 나도 노래방 기계를 꽉 붙잡아야 한다. 분위기 좀 살려보겠다고 온갖 신나는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 누구 하나 의무라고 말하지 않지만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자리다. 땀이 뻘뻘 나게 무대를 달구면 만족하는 직원들의 모습과 현자 타임에 접어드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실상은 그렇지 않음에도 잘 노는 직원으로 동네방네 소문이 다 나게 된다.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 모르겠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각종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는 점, 만나기 힘든 다른 역 직원들과 함께 모여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 등 체육대회의 장점도 있다. 하지만 장시간 이어져 느끼는 고단함은 단점 중 하나다. 사내 게시판에서도 비번 날 하지 말자, 체육대회를 하지 말고 기부하자, 차라리 체육대회 비용을 각자 돈으로 달라 등 여러 불평과 의견이 나오기도 한다. 어떤 게 좋은 방법인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앞으로는 체육대회가 장점을 살리면서 단점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발전하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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