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와 영화 <범죄도시 2>의 성공으로 2022년 가장 핫한 배우로 떠오른 손석구. 그가 인기몰이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자기 배역을 잘 소화해내는 연기력, 꽃미남의 대명사라 불리지는 못하겠지만 ‘한국의 톰 하디’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마초 속성의 매력과 무심해 보이는 무쌍에서 나오는 미소와 탄탄한 몸 등 여러 요소가 거론된다. 나는 그의 인기 비결을 한국 사회에 유행인 MBTI 검사가 대표하는 '레이블링 게임'과 엮어 말해보고자 한다.
지금 우리나라 사회는 MBTI를 비롯한 자기 성격 유형 검사가 유행이다. 이를 ‘레이블링 게임’이라고도 하는데 자기 정체성을 특정 유형으로 딱지(레이) 붙인 뒤 해당 유형이 갖는 라이프스타일을 동조하고 추종하는 경향을 가리킨다.
이 게임에 열광하는 세대는 대개 MZ세대다. 기성세대는 이들이 본인보다 좋은 환경에서 자랐기에 열정과 끈기가 부족하다고 하지만 이 세대 또한 바쁜 현대 사회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왔다. 성공이 최우선 가치가 되고 이를 위해 공부, 취업 등 여러 분야에서 끊임없는 경쟁을 해야 했다. 여기에 코로나바이러스까지 발생하며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했다. 치열하게 사는데 한정된 공간 속에서 사는 것, 그 과정에 쉼이 없기에 모든 것이 소모되는 ‘번 아웃’을 겪는다. 기운 없는 상태에서 우울함을 느끼며 자신을 돌아볼 여유는 없다. 확실한 것을 추구하지만 확실하게 정해진 것이 없어 불안하다.
요즘 자신이 '부캐릭터'라고도 불리는 현실과 가상 속 다양한 정체성이 유행이다. 많은 이가 자신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한정시키지 않고 다양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진짜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 하는 욕망도 크다. 그런데 오래 성찰해서 파악하기보다 빠르고 간단하게 자신을 파악하기를 바란다. 이를 충족하는 레이블링 게임은 젊은 세대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평소에 생각하고 이해하는 나와 검사에서 비롯된 내가 일치한다고 느끼면 그 결과를 강하게 신뢰한다. 하지만 여기서 작은 문제가 생기는데 자신의 유형을 확고히 믿는 것 말고도 다른 사람의 유형을 분석하고 확정 지으며 자신과 궁합이 맞지 않는 이들을 피하려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이 정확한지 잘 모르지만 확신하는, 혹은 정체성을 오해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말이다.
이런 레이블링 게임을 통해 스스로에 대한 확고한 인식을 가진 대중에게 손석구는(본인의 의도는 아니겠지만) 찬물을 끼얹었다. 손석구가 출연한 <나의 해방일지>와 <범죄도시 2>는 비슷한 시기에 대중에 공개되었다. 이 두 작품에 등장하는 손석구가 연기하는 ‘구 씨’와 ‘강해상’이라는 두 사람은 각자 삶, 성격 등 많은 면에서 결이 다르다. 한마디로 색이 뚜렷한 사람이다. 구 씨는 삶에 지쳐 도시에서 벗어난 남자고 ‘강해상은 해외로 도피한 잔혹한 범죄자다. 다른 인물임이 확실하나 한 배우가 연기할 때 자신 특유의 연기 색을 버리지 못하고 같은 이미지가 보이게끔 하는 때가 있다. 캐릭터의 정체성을 해석하고 연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캐릭터에 투영한 것이다. 앞서 말했듯 대중은 자기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알고 싶어 한다. 또 정해주기를 바란다. 더불어 자기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요소가 자신에게 있기를 바라기도 한다. 이런 분위기가 만연한 이때 손석구는 서로 전혀 다른 인물을 매력적이면서 실제로 존재할 것처럼 느껴지게 표현해냈다.
손석구가 출연한 작품마다 선보인 구별된 인물 연기는 누구나 정체성은 있지만 자기가 생각하는 정체성이 실제로 철옹성처럼 확고한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에 대중은 혼란을 느낀다. 과연 내가 규정짓고 있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 틀린 것은 없는지, 또 내 성격과 특징이 자기 소유가 맞는지 말이다. 비록 연기일 뿐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그의 연기를 본 대중은 자신이 상상하는 자신과 실제로 보이는 자신을 비교하며 의심하게 된다. 대중은 이 불확실성을 기분 나쁘게만 받아들이지 않고 여기서 오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했다. 확고한 취향과 바람에 대한 흥미에 국한되어 있던 내가 여러 면으로 개발하거나 자신과 다른 성격에도 흥미를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손석구의 연기 배경에는 자신에 대한 성찰이 있었다. 그는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오랜 무명 생활을 하면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성찰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자신을 오래 돌아본 것이 다양한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연기하는 데 큰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이는 간단하고 빠르게 자기를 알고자 하는 현대 사회와 다른 모습이지만 주목할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자신을 확실하게 알고 싶어 하는 욕구 속에는 자신의 바람대로 자신을 규정짓고자 하는 한국 사회의 얽매인 목마름이 있었다. 그것이 옳은지 아닌지에 대한 의문 또한 있었다. 이런 자기 정체성 확립에 대한 욕구에 얽매인 이들을 배우 손석구가 조금이나마 해방했다고 생각한다. 이는 사회문화적으로 적잖은 영향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목표를 다작이라고 했던 만큼 나는 배우 손석구가 앞으로 여러 작품에서 선보일 다양한 연기가 대중이 자신을 앞으로 더 ‘추앙’하게끔 할 것 같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