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음이 무섭다. 직접 경험하는 순간 끝이고 경험을 바탕으로 새롭게 시작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내가 언젠가 겪을 것을 기다리는 것도 남의 일을 지켜보는 것도 모두 두렵다.
죽음과 관련해 떠오르는 색깔은 검은색이다. 우리나라 장례식장에서 보이는 색은 대부분 까맣다. 왜 검은색을 사용했을까? 깜깜한 밤 모든 이가 잠드는 것처럼 죽어서 눈을 감으면 영원히 어둠 속에 살 것 같았기 때문일까. 모든 색을 다 잡아버리는 그 무거움 때문일까. 저승사자의 모습을 비롯해 각종 미디어 등에서 묘사하는 죽음의 이미지는 검은색이다. 이런 영향 때문인지 몰라도 왠지 검은색에는 어두움과 무게감이 느껴진다.
이런 우리나라와 다르게 화려한 색을 수놓으며 고인을 기억하는 나라도 있다. 바로 멕시코다. 멕시코는 10월 31일부터 11월 2일까지의 기간을 ‘망자의 날’이라는 명절로 보내며 조상과 가족, 친구, 반려동물 등을 추모한다. 해골 인형과 꽃으로 집 안을 장식하고 고인의 사진과 고인이 생전 좋아하던 음식들로 제사상을 차린다. 또 밖에 해골 분장을 하고 나가기도 한다. 주변을 장식한 것의 색은 매우 영롱하다.
이런 화려하게 색으로 이루어진 장식을 보며, 즐겁게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들을 보며 ‘과연 이것이 고인을 기리는 방법일까?’라며 진정성에 대해 의문을 가졌었다. 단순한 문화와 인식의 차이인데 옳고 그름을 따졌던 것이다. 이 편견을 깰 수 있게 한 콘텐츠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유튜버 빠니보틀의 멕시코 여행 콘텐츠이고 다른 하나는 애니메이션 <코코>다. <코코>를 보며 망자의 날을 완전히 이해할 순 없지만 죽음을 기억하는 방법의 다양함을 생각할 수 있었다.
가족의 거센 반대에도 가수를 꿈꾸는 미겔은 전설적인 가수 에르네스토의 기타에 손을 대고 ‘죽은 자들의 세상’에 들어간다. 그리고 헥토르라는 사람을 만나 현실로 돌아가기 위한 모험을 하게 된다.
<코코>가 영화로서 자신을 기억하게 하는 방법은 색이다. 망자의 날을 다루는 만큼 그 분위기를 내기 위한 화려한 색은 눈의 피로함보다 인상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내가 기억하는 픽사 영화의 색은 부드럽고 안정적이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방법은 음악이다. 영화에서 음악은 이야기 소재로 중요하게 활용된다. 음악에서 비롯한 오해가 가족을 해체했지만, 그 음악이 가족을 다시 끈끈하게 이어준다. 이는 현생을 사는 가족을 넘어 이승과 저승의 가족까지 이어줬다. 이야기 소재로 활용되는 음악 외에도 캐릭터가 부르는 노래가 라틴 음악의 특성을 잘 살렸기에 영화에 더 몰입하는 요소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추모의 자리를 어둡게 만든다. 이와 반대로 멕시코는 화려한 인형, 색, 음식 등으로 오히려 추모의 자리를 더 밝게 만든다. 뭐가 더 낫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내 주변의 소중했던 이들을 슬픔으로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만날 대상으로 생각하고 이를 기대하며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죽음 이후에도 꾸준히 챙기는 멕시코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가벼워만 보였던 모습은 다른 무거움이 있었고 유쾌함도 느껴졌다. 고인의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고인의 살아있던 순간을 기억하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고인이 그 모습을 지켜본다면 오히려 더 좋아할 것 같았다.
영화를 보는 동안 주변의 먼저 떠난 이들이 떠올랐다. 죽음을 맞이하고 떠나보낼 때 슬픈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후로 그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 많은 이가 모일 수 있어서, 그 사람을 기억할 수 있어서, 그 사람과 함께했던 순간을 기억할 수 있어서 슬픔만이 아닌 기쁨과 감사함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을 너무 무겁게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훗날 내가 세상을 떠나는 날에도 웃음으로 기억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