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의 재해석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면 찬 바람이 부는 겨울임에도 왠지 따뜻하고 풍성한 분위기가 생각난다. 산타 할아버지와 크리스마스 선물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산타 할아버지와 만남을 고대했던 것 같다. 한밤중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두고 갔을 때, 그 선물이 내가 바라던 것이었을 때 감동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었다. 어떻게 내 마음을 그리 잘 아는지 놀라웠고, 다음 해에도 선물을 받기 위해 착한 아이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게 했다. 만화, 영화 속 인물들은 쉽게 만나는데 내 눈앞에는 나타나지 않는 산타 할아버지는 신비한 존재였으며 언젠가 만날 것을 기대하게 했다.
만나고 싶었던 산타 할아버지는 유치원에 다니니 만날 수 있었다. 집에 찾아오기도 했고 유치원 쉬는 날 유치원에 호출해 선물을 주기도 했다. 신기했던 것은 볼 때마다 모습이 달랐다는 것이다. 체형과 목소리, 심지어 수염까지 매번 달라 긴가민가했다.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에 놀란 적도 있었다. 언젠가 받은 크리스마스 날 선물은 지금껏 받아본 적 없는 너무나 가벼운 편지였다. 그 모습에 약간 실망했는데 봉투를 열어보니 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봉투에는 현금 3천 원과 산타 할아버지가 감기에 걸려서 선물을 준비 못 했다는 편지가 들어있었다. 그런데 이 편지 글씨가 너무 낯익은 게 아닌가. 바로 엄마의 글씨였다. 지금은 웃긴 이야기나 당시에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와 정체를 궁금해한 적이 있을 것이다. 넷플릭스의 <클라우스>는 산타는 누구이며 어떻게 탄생한 것인지 재해석한 애니메이션이다. 이 계절과 시점에 어울리는 애니메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우체국장 아버지를 둔 제스퍼(제이슨 슈왈츠만)는 언젠가 아버지의 자리를 물려받을 생각으로 방탕한 생활을 한다. 이에 아버지는 아들 제스퍼를 일하기 가장 힘든 오지 ‘스미어렌스버그’에서 편지 6천 통을 전달하라는 임무를 준다. 두 가문의 싸움으로 가득한 이곳에서 제스퍼는 임무 완수를 위해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아이들에게 선물을 만들어주는 클라우스(J.K. 시먼스)와 함께 일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선물을 받기 위해 각자 노력한다. 그 행동에 제스퍼와 스미어렌스버그도 조금씩 변화한다. 선물에 기뻐하는 모습, 선물을 받기 위해 착한 일을 하는 모습, 선물을 받고 싶다며 글을 공부하는 모습. 작은 것에 감동하고 이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애니메이션 속 아이들처럼 나도 순수했던 적, 온전히 열의를 다했던 적이 있었는지를 돌아보게 됐다.
<클라우스>에서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은 사미족 아이 마르구(네다 마그레테 라바)였다. 글을 몰라 편지를 보낼 수 없는 상황인 마르구는 갖은 노력 끝에 선물을 받는다. 차별 없이 누구에게나 산타 할아버지는 존재하며 누구든지 선물을 받을 자격이 된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실존하든 그 정체가 어떻게 됐든 산타 할아버지라는 존재는 선한 영향력이 있다. 아이는 착한 일을 하면 선물을 줄 것 같다는 생각에 행동을 바르게 한다. 어른은 옛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런 작은 변화에 사회도 변하기 마련이다. 애니메이션 속 대사대로 선한 행동은 또 다른 선한 행동을 낳는 법이니까. 그런 점에서 산타 할아버지는 전 세계적인 계도가, 계몽가가 아닐까.
외국 어딘가에는 산타 할아버지라며 아이들을 만나 선물을 주는 곳도 있다고 하는데 나도 한번 찾아가 만나보고 싶다. 딱딱해진 내 마음이 조금은 말랑말랑해지지 않을까. 그리고 미처 하지 못한 말을 할 것이다. 3천 원으로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으니 7천 원만 더 주시면 안 되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