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복제 예능 속 새로운 재미
2022년 예능에서 가장 흥한 장르는 연애와 운동이다. 젊은 남녀의 사랑 외에 이혼, 동성연애 등 다양한 이의 사랑과 갈등을 활용한 연애 예능이 파생됐다. 많은 운동선수가 예능에 투입되면서 이들을 활용한 다양한 운동 예능도 등장했다. 이밖에 관찰 예능과 노래 예능은 여전히 강세를 보였고 강형욱, 오은영 등 전문가를 활용한 솔루션 예능도 입지를 유지했다. 2021년과 비교하면 큰 변화가 없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새로운 예능이 등장해도 타 방송사의 방송과 비슷할 때가 많아 큰 흥미를 느끼기 어려웠다. A와 B라는 방송국은 다르나 서로 비슷한 예능이 있다면 A만 보고 B는 보지 않아도 B가 어떤 방송인지 금방 감이 올 정도다. 오히려 장수하는 예능이 새로 나오는 예능보다 소재 면에서 신선하게 느껴졌다.
방송 플랫폼의 다양화에 따른 방송 수의 증가에서 오는 부작용은 기시감과 카피캣 방송의 증가다. 시청자의 입장에는 답답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창작은 고통이 따르는 법이다. 이는 음악과 비슷하다. 올해 뜨거웠던 유명 가수들의 표절 논란은 도덕적인 문제에 대한 경고만이 아닌 우후죽순으로 등장하는 노래 사이에서 비슷한 느낌 없는 완전 새로운 곡을 만들어내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방송도 한 소재가 성공하면 그 소재에 눈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 방송국은 새로움을 추구하지만, 방송으로 수익을 창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공을 확신할 수 없는 소재를 활용하는 도전보다 성공한 소재를 활용하는 안정을 택하는 것은 더 선호할 만한 방송 제작 방법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는 흥미로운 예능이 있는지 여러 예능을 훑어보고 있다. 그리고 화제성은 조금 떨어지나 재미있는 예능을 발견했다. JTBC에서 화요일에 방송 중인 <오버 더 톱>이다. 이 예능은 팔씨름을 소재로 한 예능이다. 대한민국의 팔씨름 좀 한다는 사람을 모아 팔씨름 대결로 1등을 뽑는 이 예능은 미니 게임으로 활용할 만한 팔씨름을 주 소재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신선한 예능이다. 다른 스포츠 예능에 해당 종목의 흥행을 지원하고자 스타들이 총출동했듯이 <오버 더 톱>에 많은 팔씨름 선수들이 대거 출연했는데 초대 대회 우승의 목적은 물론이고 팔씨름을 알리고자 참가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오버 더 톱>의 특징은 시원한 전개다. 많은 예능이 흥미롭거나 긴장되는 장면이 나올 때 이를 여러 번 보여줄 때가 많다. ‘질질 끄는’ 것이다. 이런 효과가 방송을 더 재미있게 만들기도 하지만 보는 이를 지치게 할 때가 많다. 이 예능은 속도감을 살리기 위해 그런 장면을 줄였다. 짧고 빠른 승부로 승자를 가리기에 전개되는 상황 때문에 지루할 일이 없다.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이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개인 이야기가 덧붙기는 했으나 결승까지 갈수록 경기 수가 줄어드니 방송 분량 확보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이해할만하다.
아쉬운 점도 있다. 팔씨름은 세계대회가 있고 우리나라에 팔씨름 훈련 도장이 있을 정도로 게임에 그치지 않고 정식 스포츠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팔씨름에 관심 있는 사람만 알만한 정보다. 그렇다면 선수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더 없을 것이다. <오버 더 톱>에 출연하는 선수마다 캐릭터와 서사가 있는데 방송은 이를 상세히 알려주지 않는다. 이를테면 챔피언이나 세대 계보, 선수들의 관계 같은 것 말이다. 경기 전 선수 소개에 짤막하게 나오지만, 이것만으로는 혼란이 오는 점이 있다. 예를 들어 특정 만화책과 애니메이션을 너무 좋아해 다 본 사람이라면 내용과 캐릭터를 잘 알아서 이와 관련한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봐도 금방 이해하고 몰입하겠지만 만화에 흥미 없고 극장만 다니는 영화마니아가 단순히 새로 나온 애니메이션이라고 여기며 무심코 본다면 극의 특정 캐릭터가 만화 내용을 언급했을 때 무슨 말인지 이해 못 하는 것과 같다. <오버 더 톱>은 팔씨름 마니아가 아닌 일반 시청자가 보기에는 경기 외적인 요소에 관심을 가지기 어려워 화제성이 부족한 방송이다. 속도감 있는 경기에는 방해되겠지만 팔씨름과 팔씨름 선수에 관한 이야기 등을 조금 더 친절하고 자세히 다뤘다면 시청자가 몰입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경기에 출전하는 전문 선수에 대해 잘 아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그래서 잘 모르는 사람이 즐비한 이 방송에 대한 흥미가 떨어질 수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오버 더 톱>은 시청자에게 친숙한 연예인과 운동선수도 출전시켰다. 이들을 경쟁에서 조금이라도 오래 남기기 위해 처음부터 다양한 분류로 나눠 전문 선수들과 경기를 최대한 방지하려 했다는 점은 단순해 보이는 이 방송이 대회를 열심히 준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선 초반에 연예인은 연예인부에 속해 연예인끼리 경기하고 일반부 소속 전문 선수들은 선수끼리 경기해야 했기 때문에 일반부의 강자들이 초반에 대거 떨어지는 장면이 많았다) 여기에 자막으로만 그치지 않고 기술, 규칙, 대회 역사 등 자세히 알려주는 중간 코너 같은 게 있었다면 시청자에게 팔씨름과 이 방송에 대한 흥미를 더 줄 수 있지 않았을까.
방송은 화제성이 있어야 주목을 받고 주목을 받은 만큼 많은 사람이 시청한다. 그런 점에서 <오버 더 톱>은 후속작을 만들기에는 조금 어려운 점이 있다. 먼저 팔씨름은 모두에게 익숙하지만 파고들기에는 마니아적인 소재이기 때문에 흥미를 끌기 어렵다는 점이 있다. 또 변칙적인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 한 신진세력이 높은 단계로 올라가지 못하고 기존 강자만 살아남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 금방 질릴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있다.
만약 후속작을 새롭게 만들고자 한다면 익숙한 팔씨름을 새롭게 느껴지게 만들되 방송의 서사를 살릴 방법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여성 팔씨름 대회가 개최될 수도 있을 것이고 세계대회를 목표로 팀을 구성하거나 세계의 인물을 섭외해서 대회 규모를 키우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부족한 화제성은 조금만 보완한다면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경기 자체가 짧고 빨라 하이라이트 영상을 만들기도 좋아 동영상 플랫폼에 영상을 제공하기도 편하다. 이를 활용해 다양한 커뮤니티에 입소문을 타게 한다면 조금이나마 화제성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서로 닮은 예능이 계속 나와 피로감을 주는 지금 <오버 더 톱>은 그중에서 신선하면서 가능성이 많은 예능이었다. 이처럼 앞으로도 새로운 소재를 활용한 다양한 예능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