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가 줄어들 것 같은 여행 예능 프로그램이 오히려 늘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점차 잠잠해지면 본인이 직접 여행하려는 사람이 늘어 대리만족의 매체로 사용된 여행 예능에 대한 수요는 줄어들 줄 알았다. 하지만 여행에 쓰는 금전과 시간 소비에 대한 부담감, 남이 하는 여행을 보는 것만으로도 간접 체험에서 오는 만족 등이 여전히 있어 여행 예능 강세에 영향을 준 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수많은 여행 예능 중 내 눈에 가장 띄는 것은 MBC 최후의 보루였던 김태호 PD의 제작사인 TEO에서 제작한 <지구마불 세계여행>이다. 유명한 연예인이 무리를 지어 여행을 떠나는 대부분의 포맷과 달리 이 예능은 여행 유튜버(빠니보틀, 곽튜브, 원지의하루) 중심의 예능이다. 간단히 말하면 여행 유튜버들의 채널 영상을 합친 것이다. 다른 여행 예능에 여행 유튜버가 출연하면 보통 연예인들의 여행 가이드 역할에 그치기 마련인데 이 방송은 여행 유튜버가 주인공이 되어 자신의 무대를 보여준다.
또 게임적 요소를 활용해 다른 여행 예능과 차별화했다. 많은 이가 해봤을 <부루마불>이라는 보드게임을 개조한 말판에 주사위를 던져 나온 수에 해당하는 국가를 여행하는 것이 여행 규칙이다. 여행하는 동안 촬영한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조회수와 좋아요 수를 계산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출연자가 상으로 우주여행을 하게 된다.
이 방송은 여행 유튜버들의 방송에 조금이라도 익숙한 시청자라면 어색함 없이 볼 수 있다. 하지만 재미가 없는 건 아닌데 조금 아쉬운 느낌이 든다. 여행 유튜버 각자의 채널에서 영상을 본다면 그들만의 개성을 충분히 느낄 수 있지만 이들을 한곳에 모아놓은 이 방송은 느껴지는 각자 개성이 덜하다. 온전히 재미를 느낄 수 없고 어색했다.
그 원인은 편집에 있는 것 같다. 방송은 편집을 TEO의 PD들과 여행 유튜버들의 협의로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TV 방송 버전은 뭔가 조금 아쉽다. 여행 유튜버의 채널에서 그들의 영상을 볼 때는 짧은 시간 동안 어느 정도 주제를 가지고 함축시켜 보여주기에 집중할 수 있다. 하지만 TV 방송은 출연자 각자의 분량 조절을 하기 위해 조금씩 나눠 보여주기 때문에 몰입감이 떨어진다. 한 명씩 전체 영상을 보여주는 것이 더 나았을 것 같기도 하다.
또 여행 유튜버 각자의 색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여행 유튜버들의 가장 큰 역량은 이들의 캐릭터로서 매력만이 아닌 각자의 색깔이 담긴 편집에 있다. 음악 등에서 유튜버만의 개성을 보는 재미가 있는데 TV 방송 버전은 그 점을 잘 살리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TV 방송 버전보다 유튜버들의 각자 색을 조금 더 느낄 수 있는 유튜브 버전이 더 재미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차라리 유튜버들에게 편집을 온전히 맡기고 TV 버전에도 이를 보여줬다면 어땠을까? 원래대로라면 출연부터 촬영, 편집까지 다 하는 유튜버지만 이 방송에서는 출연자로서 역할만 하기도 바쁘기에, 또 방송 심의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그 외 수많은 다른 이유로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TV 방송이기 때문에 오히려 어색해진 것도 있다. 심의 없는 유튜브에 익숙한 유튜버들이 TV 방송을 위해 자신의 행동, 언어 사용 등을 스스로 또는 제작진이 정제하는 모습이 자주 있는데 이것도 재미에 영향을 줬다. 눈치 보는 유튜버는 재미가 덜했다. 유튜버는 프로 방송인이 아니다. 그래서 언어 사용과 방송 진행에 조금 미숙한 모습을 보인다. 이를 조금이라도 무마하고자 방송인들은 여행 영상을 함께 보는 참관인으로 넣은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이 방송이 더 재미있어지려면 유튜버 3인의 색을 확실히 뽑으면서 여행지의 매력을 보여줄 방법이 필요할 것 같다. 여행을 장르로 한 예능은(추구하는 바가 힐링이 아닐지라도) 여행을 잘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방송은 예능적 재미를 더 추구한 방송이다. 재미를 만들기 위해 인위적인 요소가 곳곳에 있다. 이를테면 복불복 요소인 ‘황금 열쇠’는 예능적 요소를 살린 장치다. 극한, 돌발 상황을 만들 수 있어 재미를 줄 수 있지만 시청자가 각 나라의 매력을 느끼게끔 하는 데는 방해 요소였다. 어차피 조회수를 위해 유튜버들이 일반 여행과 다른 방향으로 여행 콘셉트를 정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다른 장애물을 추가로 주는 것은 재미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또 자기 색 강하고 자유로운 유튜버의 여행을 분명 여행지는 다르지만 비슷한 여행을 하는 것처럼 느끼게 했다. 황금 열쇠를 더 희소성 있게 만들되 용도는 출연자를 더 풍족하게 지원해 이들이 마음껏 즐길 수 있게 이끌었다면 이색적인 여행을 추구하는 데 더 도움 됐을 것 같다.
여행할 나라를 선택하는 방식도 기존처럼 주사위를 던져서 정하되 출연자들이 함께 같은 나라로 여행을 가 그 나라에서 각자 다른 여행을 하도록 해 경쟁을 펼치는 모습을 보였다면 어땠을까? 많은 나라를 한 방송에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여행지 하나에 집중하기에는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여기에 유튜버들이 알아서 여행하게끔 자유를 줘 방송에서 여행 유튜버들이 말버릇처럼 말한 것처럼 ‘남들이 하지 않는 여행’을 알아서 하게끔 했다면, 또 복불복 요소를 극복하고 누리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예능적 재미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그러지 못한 이 방송은 출연자 각자의 매력을 보여주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으나 여행지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던 것 같다.
<지구마불 세계여행>은 잘 나가는 여행 유튜버를 모았지만, 그들의 개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해 조금 아쉬웠다. 유튜버들은 아무리 여행 유튜버지만 본인이 여행을 가고 싶어야 자연스러운 영상, 자신들도 즐거운 여행 영상이 나온다고 자신들의 채널 속 여러 영상에서 스스로 말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자신들이 가고 싶은 여행보다 방송을 만들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 같은 주객이 전도된 여행 영상 같았다. 그래서인지 재미있지만, 많은 요소가 온전히 조화를 이루지 못해 보여줄 수 있는 재미 최대치까지 끌어내지 못한 기분이 드는 방송이었다. TV 버전이 아쉬운 사람은 TEO 유튜브 채널의 유튜브 버전으로 여행 유튜버 개인 영상을 본다면 조금 해소될 것 같다. 설마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게 해 조회수에서 나오는 수익을 노리고자 아쉽게 만든 건 아니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