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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Aug 22. 2023

멋 부리고 나갔는데 애매한 소개팅

지천명 배우의 액션분투기

남들보다 많이 했다고 말할 순 없지만 주변 사람의 도움으로 내게는 과분할 정도로 소개팅을 경험했다. 목적이 다를 뿐 소개팅은 회사 면접과 같다. 연애와 취업이라는 최종 목표를 위해 이 사람이 과연 나와 회사에 어울리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때 첫인상이 주는 영향력은 크다. 그래서 면접자는 깔끔한 차림으로 좋은 인상을 주려고 한다. 하지만 차려입는 것은 추가 점수일 뿐 그것만으로 면접에서 통과하는 것은 아니다. 면접에서 성공하려면 다양한 부분에서 면접관을 만족시켜야 한다. 시시콜콜한 질문부터 숨이 턱 막히는 압박 질문까지. 다양한 질문과 이에 대한 답변, 태도뿐만 아니라 내가 신경 쓰지 못한 부분에서도 점수가 매겨진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는 소개팅에서 성공한 적이 없다.



영화 <길복순>은 그런 나를 보는 듯한 영화였다. ‘칸의 여왕’이라 불린 배우 전도연의 넷플릭스 데뷔작이고 유명한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는 영화이기에 기대는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났을 때 들었던 생각은 기억에 남는 것도 많지만 아쉽다는 것이었다.



한 아이의 어머니이자 직장인인 길복순(전도연)은 평범한 회사 같지만, 청부살인을 업으로 하는 회사에 다니는 킬러다. 회사에서 위상과 다르게 딸 재영(김시아)과의 관계는 소원한 복순은 딸과 가까워지기 위해 회사에서 나오려고 한다. 마지막이라 여긴 임무의 수행 중 복순은 회사의 규칙을 어기고 임무를 포기한다. 이런 복순을 향해 자신의 회사 동료들과 다른 킬러들이 칼을 겨눈다.


<길복순>은 겉으로 봤을 때 인상적인 것이 꽤 많은 영화다. 배우 황정민이 나온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극의 처음에 나올 줄은 몰랐다. 액션도 인상적이었다. 할리우드 영화 <킹스맨>이나 <원티드>를 보는 것처럼 잔인하지만 웃음을 유발하는 액션 신은 다른 한국 영화에서 보지 못한 장면이었다. 출연 배우도 화려했다. 이 정도 배우가 이 정도 비중의 배역인데 나온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낯익은 배우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많았다. 영화도 하나의 이야기다. 그래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잘 드러내야 한다. 독특한 것으로 인상을 남기는 것만으로는 보는 이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기 어렵다. 영화는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가 많았다. 가정 폭력, 동성애 등 여러 이야기를 녹이려 했지만, 영화가 이 모든 걸 담기 어려워 보였다. 매력적인 등장인물도 많았지만, 이들의 이야기도 제대로 다뤄지지 않아 입체적으로 보일 기회를 놓치고 그냥 스쳐 지나가는 복순의 희생양에 불과한 것 같아 아쉬웠다. 다양했지만 미처 다 보여주지 못했던 서사를 줄이고 특유의 액션에 더 집중하거나 이야기를 더 길게 다루기 위해 <수리남>처럼 영화보다 여러 화로 나뉜 드라마로 만들었다면 더 나았을 것 같다.



지금까지 소개팅을 돌이켜보면 만난 사람의 유형은 여러 가지다. 아무것도 기억에 남지 않는 사람, 다시 만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던 사람, 좋은 쪽으로나 나쁜 쪽으로나 인상적인 것이 있던 사람. 내 입장이 면접관보다 면접자에 가까웠기에 누굴 만났다고 해도 결과는 똑같았다는 슬픈 이야기가 있지만 적어도 내가 어떤 사람을 원했고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는지, 어떻게 해야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지 고민할 수 있었다.


그런 내가 떠오른 영화, 소개팅 실패 후 반성의 마음가짐으로 본 영화 <길복순>은 지금껏 본 한국 액션 영화 중 눈에 띄는 것이 많아 독특한 인상을 남기는 데는 성공한 영화였다. 이것저것 준비도 많이 했고 새로운 시도도 했다. 결코 재미없는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겉에 너무 신경 쓰다 보니 남는 것이 그다지 없는, 합격 점수를 주기에는 아쉬운 영화였다. 마치 내 소개팅처럼.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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