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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Jul 10. 2023

다시 만난 프로레슬링

유튜브에서 왜 추천했는지 모르겠지만 WWE(World Wrestling Entertainment) 유튜브 채널 영상이 올라왔다. 2000년대 초부터 2010년대 초까지 경기 영상이었는데 보니까 재미있었다. 프로레슬링 경기는 생애 처음 보는 게 아니라 어릴 적 TV로 봤던 경기들이라 내게는 복기 영상이나 마찬가지였는데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초등학교 6학년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프로레슬링 경기를 챙겨봤다. 계기는 친구들과 이야기에 끼고 싶어서 그랬다. 같은 반 친구들이 프로레슬링 선수들 이야기를 하는데 무슨 말인지 몰라 챙겨보게 됐다. 학교에서 쉬는 시간이 되면 선수들의 동작을 따라 하면서 놀았던 기억이 난다. 친구들은 거기까지였지만 나의 탐구심은 나를 마니아 수준으로 프로레슬링에 몰두하게 했다.


WWE에는 크게 두 가지 쇼가 TV쇼로 만들어지는데 월요일에는 <RAW>, 목요일에는 <SMACK DOWN>이라는 방송이 제작된다. (내가 한창 봤을 때 기준이고 지금 <SMACK DOWN>은 금요일에 방송한다고 한다) 슈퍼스타라고 불리는 선수들이 쇼에 나와 얽히고설키며 이야기를 만들고 대결을 펼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TV 드라마에 과격한 액션과 스포츠 요소가 들어 있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나는 iTV 경인방송에서 방영한 <SMACK DOWN>을 먼저 접했다. <RAW>는 SBS스포츠에서 방송했는데 우리 집에는 케이블방송을 설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었다. WWE의 전체적인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둘 다 봐야 한다. 나는 그렇지 못했기에 마치 월화 드라마를 월요일에만 보는 것처럼 해 이야기를 반만 이해하는 상황이었다.


내가 프로레슬링에 빠졌던 이유는 보는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각본만 잘 짜면 물 흐르듯 흘러가며 보기 좋은 스토리라인에 드라마에서 보기 힘든 과격한 액션이 있어 하나의 색다른 연속극 같았다. 인터넷에서 할머니들이 낮에 프로레슬링을 즐겨보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존 시나 같은 선수들을 알고 선수들의 경기나 이야기를 보며 마치 자기 일처럼 반응하는 것을 보며 할머니들도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지 않았을지 추측해 본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선수는 ‘더락’이었다. 지금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배우로서 더 많이 활약하지만, 프로레슬러로서 활동했던 더락은 정말 프로레슬링에  알맞은 능력을 갖춘 스타였다. 링 위에서 카리스마뿐만 아니라 연기, 말솜씨까지 다 좋았다. 조금 과하지만, 상대의 기술을 받아주는 접수 기술도 눈에 띄는 선수였다.


이야기와 선수, 과격함 속에 열정이 있는 경기까지. 프로레슬링에 빠지고 더 알고 싶어 인터넷의 프로레슬링 팬 페이지와 카페에 들어가 선수들의 경력, 선수 간 대립 구도나 기믹(캐릭터의 특징이나 콘셉트) 등을 섭렵했다. 파고들수록 프로레슬링은 매력 있었다. 덕분에 가수 노래보다 선수들의 등장 곡을 더 즐겨 듣던 때도 있었다. 관련 상품에도 관심 있었다. 그들이 쇼에 입고 나오는 티가 사고 싶은데 부끄러움과 그 당시 내가 감당할 수 없었던 가격 때문에 사지는 못했다. 양키 시장에서 파는 짝퉁인지 진짜인지 알 수 없는 옷을 살 수도 있었지만 진짜 WWE 웹사이트에서 파는 정품 티셔츠를 해외직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장바구니에만 담았다 빼면서 아이쇼핑만 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좋아했던 프로레슬링에 멀어진 이유는 점점 몸을 사리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각본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그렇게 충격적이지 않았다. 각본의 유무를 떠나 선수들의 몸을 사리지 않는 열정이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WWE가 WWF(World Wrestling Federation)라는 단체명으로 활동하던 시절 세계자연기금(World Wide Fund for Nature)과 약칭을 두고 다투다 WWE로 이름이 바뀌고, 선수들의 부상, 사고 등이 생기면서 과격했던 WWE는 점점 순화되었다. 그때 재미가 덜해졌다. 또 시간이 갈수록 좋아했던 선수들은 점점 나이 들고 이를 뒷받침해야 할 후배 선수들은 스타 선수들만큼 매력을 못 느껴 더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유튜브로 추억 여행 중 지금은 중년 노년이 된 선수들의 젊은 시절을 보니 왠지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들의 등장과 함께 등장 곡이 나오자 바로 환호하는 사람들, 링 위에 오를 때 때 팡팡 터지는 사진 플래시를 봤을 때 선수들이 얼마나 흥분되고 뿌듯했을지 조금이나마 간접 체험할 수 있었다. 그들의 영광의 시절을 보니 나도 가슴이 웅장해졌다. 이와 동시에 ‘내 20년도 금방 지나갔구나, 곧 20년이 또 훌쩍 지나가겠지.’라는 생각이 드니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묘한 기분이 들었다.


또 눈에 띄는 것은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이었다. 영상을 보니 심각하게 느껴질 정도로 진짜 감정 이입하면서 보는 사람이 많았다. 저 정도로 몰입하며 즐길 수 있는 게 내게도 있을까 궁금했다. 선역 선수에게는 힘내라고 응원하는 모습, 악역 선수들에게 욕을 하는 사람들, 1, 2, 3 카운트를 세다 3 전에 일어나면 환호하고 머리를 쥐거나 승패가 이미 결정되어 있을 텐데 결과에 따라 나오는 반응들. 경기장에서 보면 정말 그렇게 되는지 누군가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간절히 보는 순수함이 너무나 신기했다. 이제는 어느 정도 경기를 많이 보면 어떤 기술이 나올지, 흐름이 어떻게 될지, 누가 이길지 등 경기를 예상하며 보는 나와 비교되어 보였다.


우리 부모님 세대 때는 TV가 귀해 ‘박치기왕’ 김일 선수의 경기를 보려고 TV 있는 집에 모두가 모였다는 그 시절을 나는 솔직히 모른다. 일본 프로레슬링이나 헐크 호건, 워리어 같은 선수들이 뛰던 1980년과 1990년대 시절도 솔직히 잘 모른다. 그래도 나도 프로레슬링을 즐겼던 시절이 있었다. 인기가 한창일 때는 한국에 투어를 와서 경기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는데 그때가 프로레슬링의 전성기였다면 이를 누렸던 나도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코로나바이러스 이후, 유명 선수들의 뒤를 잇는 선수들이 줄어들면서 인기가 1990년, 2000년대보다 식은 것처럼 보이는데 앞으로 세대들에게도 프로레슬링이 즐거움을 계속 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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