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레시피의 필요성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그 식당은 정기적으로 방문하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고 해도 매일 매끼 먹는다면 평생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그런 음식, 그런 식습관을 경험하지 못했지만, 그때부터는 행복한 일이라기보다 고된 일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이병헌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특유의 말장난이 섞인 대사를 좋아한다. 일상생활에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성가실 수 있지만 영화 속 인물마다 깐족거림과 센스 사이를 오가며 쉬지 않고 나오는 말들은 큰 웃음과 희미한 웃음을 여러 번 나오게 한다.
하지만 여러 번 이병헌 감독의 작품을 겪었던 탓일까. 새로 나온 <드림>은 이전 작품보다 조금 아쉬웠다.
축구 선수 윤홍대(박서준)은 사고로 선수 생활에 위기를 맞는다. 이에 벗어나고자 홈리스 풋볼 월드컵 감독에 재능기부를 한다. 하지만 형편없는 선수들의 실력과 이를 촬영하는 다큐멘터리 PD 이소민(아이유)의 연출 요구에 홍대의 축구에 대한 의지는 더 떨어진다.
실화를 기준으로 한 영화는 제작 중 갈림길 앞에 선다. 실화를 그대로 따라야 하는지, 아니면 얼마나 재구성해야 하는지. 전자를 따르면 영화 내용이 실제 내용과 같아 재미가 떨어진다. 후자를 따르면 자칫 잘못 뿌린 편집과 설정에 재미를 망가뜨린다. 그래서 이를 잘 조절해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드림>은 2010년 대한민국이 첫 출전한 홈리스 월드컵 실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다. 우리나라에서 홈리스 월드컵에 나갔다는 것 정도만 활용하고 나머지는 다 새롭게 만들어 낸 것 같은데 그러다 보니 영화에 내용이 없다. 감동을 극대화하기 위해 극 후반 경기를 엄청 늘어지게 만들었다. 스포츠를 소재로 했다면 경기의 긴박함을 위해 호흡을 빠르게 해야 하고, 스포츠 요소를 포기하고 이야기에 집중하려면 인물의 서사를 잘 풀어야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둘 다 놓쳤다.
초반은 인물 서사, 후반은 축구 경기로 이루어진 이 영화는 워낙 사람이 많아 주연인 홍대, 소민은 물론 축구팀 멤버들까지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한 명씩 다 소개하려 하는 데 시간을 소비한다. 그나마 이 지루함을 해소하는 것이 재미있는 대사지만 그 대사도 너무 장난 같아 영화가 주려는 감동을 줄이는 데 한몫했다. 경기도 처절한 전투를 묘사하려 했지만, 감동보다는 기시감에서 오는 아쉬움, 느린 진행에서 오는 답답함이 더 많이 느껴졌다.
대부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마지막 크레딧 장면에서 실존 인물들의 근황이나 해당 사건의 결말에 대해 천천히 읊어준다. 이병헌 감독이라면 색다른 장면을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다른 실화 기반 영화와 같은 마무리에 또 아쉬웠다.
개인적인 바람으로 이병헌 감독이 ‘이병헌의 영화’로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 아예 다른 영화를 만들어봤으면 한다. 장난스러운 대사 없이 조금은 진지한 모습으로 말이다. 전문 음식점에 새로운 요리를 해보라는 것과 비슷한 말 같긴 하지만 음식이 좋은 평을 듣지 못하면 새로운 시도를 해봐야 하지 않을까. 물론 자신의 특징과 장점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기에 쉽지 않겠지만 그런 영화로 성공한다면 앞으로 이병헌 감독은 좋은 영화를 더 많이 만들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