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다래끼가 났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며칠 피곤해서 면역에 이상이 있었던 것인지, 길을 걷다 눈에 먼지가 눈에 들어가 고통스러웠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안과에서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눈의 마이봄샘이 막혀 있어서 그로 인한 여파로 생긴 것인지. 큰 고통은 없었지만, 자꾸 느껴지는 눈의 이물감과 거울을 볼 때마다 보이는 다래끼 때문에 일에 집중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다래끼는 치료하는 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약을 사흘, 나흘 치를 보통 받는데 차도가 없어 병원을 두 번 이상 더 방문해야 했고 수시로 안약을 넣었다. 고름은 줄어들지 않았고 결국에는 콩알처럼 크기가 커져 이를 도려내는 작은 수술을 받았다. (이후로 반대쪽 눈에도 다래끼가 생겼는데 그때는 따뜻한 수건으로 눈 찜질을 자주 했더니 조금 더 차도가 있었다)
수술은 참 두렵다. 내가 직접 수술 장면을 보는 때는 드물다. 온전히 내 몸을 의사에게 맡겨야 한다. 어떤 도구, 어떤 방법으로 내 아픈 부분을 치료할지 알 수 없다. 눈에 마취 바늘이 들어왔을 때 뭔지는 모르겠지만 눈 주변을 베고 후비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분명 마취했음에도 고통과 촉감이 있었다.
지혈을 위해 눈에 붕대를 감은 내 모습을 봤을 때 저절로 나온 말이 있었다. “누구인가? 지금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어?” 나는 마치 궁예 같았다. 하지만 아픔을 여유로 소화하고자 했던 것도 찰나였다. 한쪽 눈이 보이지 않자, 모든 게 어색해졌다. 반대편 눈의 시력이 떨어진 것 같았고 거리감도 없었다. 수술 후에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집에 사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이 금방 사라졌다. 빨리 집에 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과 카페 간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은데도 그 거리를 내가 쉽게 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눈이 보이지 않으니 어지러움도 있었다. 집중해 집에 도착했고 한 시간 후에 붕대를 풀라는 말을 따르기 위해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리고 붕대를 풀었을 때, 양 눈에 사물이 들어왔을 때 개운함을 느꼈다. 사람의 눈은 왜 두 개일까. 한 개나 세 개로는 살 수 없을까? 어린 시절 막연히 가졌던 의문에 답을 얻었다. 다 이유가 있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잠깐의 불편한 시간을 가졌을 뿐이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시야의 제약을 받는 사람들은 얼마나 불편한 생활을 할지 돌아보게 됐다. 고인이 된 유상철 축구 감독을 비롯한 운동선수 중에도 눈에 불편함을 가진 사람들이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들이 얼마나 피나는 노력으로 그 자리에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 붕대를 떼어냈을 때 개운함은 근래 들어 가장 개운했다. 하나의 눈이 아닌 양 눈으로 앞을 보니 정말 잘 보였다. 흐릿하던 시야가 안경을 써 깨끗하게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탁 트인 전경을 본다는 것.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일인가. 며칠간의 고통 때문에 얻은 경험과 교훈은 너무나 크다. 하지만 이 감동은 반복된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점점 지워지고 무뎌질 것이다. 그래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도록 종종 되새길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