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칸다 포에버 Mar 11. 2024

친절하기 싫은 사람

보통 사람이라면 편하게 살고 싶어 하지 않을까? 누가 고생하려고 할까? 노동은 물론 돕는 것도 그렇다. 아무리 사람이 모여 사는 세상이라지만 서로 돕고 살지 않더라도 편하게 살 수 있다면, 웬만하면 돕지 않고 각자도생하자고 할 것이다. 어떻게든 피하려는 게 고생인데 그 고생을 심심찮게 알아서 하는 사람이 나다 “뭐 하러 나서서 고생하냐?” 지금까지 살면서 종종 들었던 말이다. 아무도 하지 않는 일에 나서서 손해를 본 적이 많다. 내게 돌아오는 것도 없다. 일을 하고 나서 뿌듯함보다는 ‘왜 한다고 했을까’라고 후회했던 적도 많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고 살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그냥 남의 일을 못 본 척하고 살고 싶다. 쌀쌀맞게 굴거나 못된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것은 아니다. 속 편하게 그냥 내 일에만 집중하고 싶다. 하지만 저절로 몸이 나선다. 눈에 띄고 싶은 것이 아니다. 내가 잘났기 때문에 한다는 우월감도 없다. 보면 지나치기가 힘들다. 누군가 해야 하는데, 해야 할 것 같은데 아무도 하지 않을 때 그냥 내가 하면 속 편하다. 지금 생각하면 참을성이 없어 보이기도 하다.


지하철역에서 한 할머니를 도와준 적이 있다. 무거운 짐을 수레에 묶어서 끌고 가는데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계단으로 낑낑대며 올라가는 할머니였다. “도와드릴까요?” 하면서 수레의 손잡이를 잡았는데 할머니는 나를 손바닥으로 엄청나게 때렸다. 노인이 얼마나 힘이 세다고 그게 아팠겠느냐마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알고 보니 내가 손잡이를 잡았을 때 할머니 손이 꼈던 것이었다. 선의로 했던 일인데 할머니를 아프게 했으니. 도와준답시고 신경 쓰지 못했던 것이 너무 죄송했다.


도움을 빙자해 일어나는 범죄 소식을 종종 뉴스를 통해 보기도 하니 도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항상 호의적인 것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랬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무겁게 가방을 메고 서서 가다 보면 가끔 앉아서 가는 사람들이 안고 있어 줄 테니까 가방을 달라는 때가 있었다. 감사하며 가방을 주는 사람, 사양하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나는 가방을 어떻게 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나도 그런 사람인데 도와주는 것이 의도와 달리 항상 좋은 행동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일을 겪고 나니 이후로는 또 실수하면 어쩌나 생각이 들어 도움이 필요할 것 같은 일에 나서기가 망설여졌다. 도와주는 게 배려일 수도 있지만 그 배려 때문에 어쩌면 피해를 주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또 불필요한 선 넘는 관심일 수도 있으니까.


얼마 안 돼서 또 같은 지하철역에서 한 여자가 자기 몸만 한 캐리어를 못 끄는 모습을 봤다. 외면과 응시를 반복하며 고민하다 도와줬다. 나도 끙끙댈 정도로 무거운 짐이었다. 다 들어주고 나서 가려는데 진심은 알지 못하겠지만 그 사람의 눈을 봤을 때 나는 섭섭함을 조금 느꼈다. 다른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닌데 내게 뭔가 꿍꿍이가 있어 보였나 보다. 아쉽지만 요즘 세상이 그러하니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나를 달랬다.


이제 친절은 아무 때나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계산해서 해야 할 것 같은 시대이고 과하면 안 되는 시대인 것 같다. 그래서 계산할 바에 그냥 친절하지 않은 사람으로 살고 싶을 때가 더 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쪽 눈으로 바라본 세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