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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Nov 20. 2023

전철차장의 선택의 순간

노동요 - 철도 인생

전철차장으로 일하면 항상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소소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중대한 선택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내 선택에 따라서 누군가는 편해지고 누군가는 불편해진다. 이 때문에 인간으로서 내 선택에 조금이라도 피해를 본 사람을 보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래도 어떤 쪽이든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 그래야 원활한 열차 운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철차장으로서 어떤 갈등의 순간이 있는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온도 조절은 어려워


열차나 선로에 이상이 없지 않은 이상 전철은 365일 운행한다. 사계절인 대한민국에서 봄이나 가을은 그나마 기온이 극단적으로 높고 낮음이 없기 때문에 객실 온도 조절에 큰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무더운 여름이나 혹한의 겨울에는 승객마다 편안히 느끼는 적정 온도가 다 다르기 때문에 이를 조절하기가 참 어렵다.


웬만한 열차 객실 에는 온도감지장치가 있다. 그래서 운전실에서 객실 온도를 확인할 수 있다. 전철차장은 이에 맞춰 냉방기와 온풍기 세기를 조절한다. 열차 운행 중 객실로 나와 냉방기의 상태나 객실 온도를 확인하기도 한다. 한여름이나 한겨울이라고 그냥 냉방기나 온풍기를 세게 가동하는 것이 아니다. 이를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온도 관련 민원을 제기하면 바로 조절한다. 결론적으로 전철차장은 장치가 알려주는 현재 온도, 고객이 원하는 객실 냉방, 온방 상태, 회사의 지시사항 등을 종합해 온도 조절한다고 할 수 있다.


겨울에는 옷을 두껍게 입기 때문에 보온이 쉽다. 옷 덕분에 온풍기를 조금 약하게 틀어도 춥다는 민원은 적다. 오히려 너무 세게 온풍기를 틀면 덥다는 민원이 생긴다. 겨울은 객실 온도와 관련한 민원이 적은 편이다. 문제는 여름이다. 조금이라도 자기 기준보다 춥거나 덥게 느껴지면 민원이 폭발한다. 냉방기를 약하게 켰는데 춥다거나 최대한 세게 는데 덥다는 민원이 생기면 이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뜨거운 여름날 경부선 쪽 열차 운행을 하는 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출입문을 닫으려는데 한 할아버지가 삿대질을 하며 쌍욕을 내게 퍼부었다. 뭐 때문에 그런가 싶었는데 자세히 욕을 들어보니 열차 안이 너무 춥다는 것이었다. 춥다고 욕을 먹으니 당연히 냉방기의 세기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날에는 열차 안의 비상전화기로 연락이 왔다. 너무 춥다는 한 아주머니의 민원이었다. 객실 온도가 그리 낮지 않았고 냉방기도 그리 세게 작동하지 않은 상태였는데도 춥다고 해 당황스러웠지만 민원 해결을 위해 조치할 수밖에 없었다. 열차가 춥다는 민원으로 객실 내 온도를 조절하겠다고 방송하고 냉방기를 조금 약하게 다. 그러자마자 또 덥다는 민원이 들어왔다. 그래서 다시 방송 후 냉방기를 원상태로 돌렸다.


사람마다 더위와 추위를 느끼는 기온이 다르다. 그렇다고 개개인 모두가 바라는 대로 맞춰줄 수 없다. 전철을 이용하는 사람은 한 명이 아닌 수많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에어컨 바람이 싫어서 여벌의 옷을 챙기는 사람이 있다. 겨울에는 더우면 옷을 벗는 사람이 있다. 전철차장의 입장에서 보면 참 감사한 사람이다. 스스로 먼저 대비하고 대응하기 때문이다.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또 표현해야 전철차장도 그에 맞춰 재빨리 대응할 수 있으니 전철차장 업무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나의 편의만 생각하면 다른 사람이 힘들어질 수 있다. 객실이 덥거나 춥게 느껴질 때는 민원을 제기하기 전에 다른 승객을 배려해 옷을 벗거나 덧입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하고 싶다.


출입문 닫습니다


역에 도착해 열차의 출입문을 여닫을 때 전철차장은 승강장의 CCTV와 승강장 안전문과 열차 출입문 사이를 확인한다. 혹시 사람이나 물건이 끼지는 않았는지, 문이 완전히 닫혔는지 등을 확인하고 기관사에게 출발해도 좋다는 신호를 보낸다.


역마다 열차의 출발 시각 있기 때문에 최대한 이를 맞추기 위해서는 빠른 확인과 출입문 취급이 필요하다. 지연 운행이 없어야 다음 역의 고객에게 불편이 없을뿐더러 열차 운행이 제대로 안 된다는 민원도 적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안전 문제를 무시할 순 없기 때문에 신속하면서도 안전하게 승강장과 출입문 상태를 파악해야 한다. 간단하게 생각하며 문 여닫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이 일에도 여러 판단과 그에 따른 선택이 필요하다. 문을 닫는 순간까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출입문을 닫기 전에는 꼭 출입문을 닫겠다는 안내 방송을 하고 닫는데 모두 열차에 타 승강장이 텅 비어있으면 마음이 참 편하다. 문을 닫기가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열차 운행 중 문이 닫힐 때 달려드는 사람이 한 번은 꼭 있다. 문을 닫을 때쯤 열차를 향해 오는 사람이 있을 때 그 수가 적거나 역을 오가는 열차의 시간 간격이  그 사람이 이 열차를 타지 못하면 한참을 기다려야 할 것 같을 때는 문을 다시 열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CCTV를 확인했을 때 승객이 열차에 타기까지 시간이 조금 많이 걸릴 것 같으면 문을 다시 여는 일은 거의 없다. 그 사람을 기다리고 문을 여닫는 데 시간이 걸려 그만큼 열차 운행도 늦어지기 때문이다. 종종 열차에 타지 못해 아쉬워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럴 때 조금 안쓰럽기는 하다. 하지만 그 사람을 위해 문을 닫지 않고 기다리거나 문을 다시 열면 뒤따라오는 사람도 태우기 위해 또 기다려야 하는 일이 생긴다. 그렇게 계속 문을 열고 기다리며 수많은 사람을 태우다 보면 다음 역에 가기까지 시간이 지연되기 때문에 조금은 매정해질 수밖에 없다.


자기가 늦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열차에 타기 위해 뛰어오는 사람이 있다. 열심히 달려 열차에 타면 뿌듯해하거나 자기 달리기 실력에 만족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은데 착각일 가능성이 크다. 승객이 재빨라서 탄 게 아니라 전철차장이 그 사람이 타도록 기다릴 때가 많다. 달리다가 넘어지는 사람도 많이 봤다. 무리하지 말고 늦은 것 같으면 그냥 다음 열차를 타는 것이 안전을 위한 방법이다.


출퇴근 시간에 특정 역에는 사람이 워낙 많아 밥을 공기에 꾹꾹 눌러 담듯 열차에도 많은 사람이 몸을 잔뜩 끼워 타는 것이 보인다. 제시간에 목적지에 가야 하기 때문에 다음 열차를 기다릴 여유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참 위험하다. 출입문을 닫아야 하는데 물건이나 몸이 끼일 것 같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안전을 위해 다음 열차를 이용하라고 해도 말을 잘 듣지 않고 어떻게든 차에 타려고 하고 문을 닫을 테니 물건이나 몸이 끼지 않게 조심하라고 해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


어떤 때는 문이 닫히는데 물건이나 몸을 넣어 문을 억지로 붙잡는 사람이 있거나 문을 닫으려고 하는데 승강장 안전문과 출입문 사이에 서서 버티는 사람도 있다. 혼자 타기 위해 그런 이기심을 부리거나 일행이 있는데 다 같이 타기 위해 자기가 먼저 열차에 가서 붙잡겠다는 생각으로 기다리는 것이다. 사람이 있으니 닫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하는 행동 같은데 자신을 위한 행동이거나 일행에게는 멋진 행동일지 몰라도 전철차장에게는 진상 중에 진상이다. 이 또한 자기만 생각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이다. 그리고 전혀 안전한 일이 아니다. 열차를 붙잡기보다 다음 열차를 기다리는 것이 남을 위한 배려가 아닐까?


이 밖에도 자신은 타지 않으면서 출입문 가까이 붙어 연인에게 애정 표현을 하는 이, 친구에게 인사나 장난을 치는 이 등이 있는데 이 사람이 열차에 탈지, 안 탈지 분간이 잘 안 될 뿐만 아니라 문이 닫힐 때 끼거나 다칠 수 있으니 조금 멀찍이 떨어져서 표현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열차 운행은 마음 같아서는 내 기준과 마음대로 일하고 싶지만, 사람을 상대로 하는 일이다 보니 그럴 수가 없다.  고객의 편의와 안전을 위해 하는 일인 만큼 다양한 애로사항이 있다. ‘왜 내 편의는 생각하지 않지? 왜 내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지?’라고 불만을 가질 수 있지만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승객도 있을 것이고 나의 편함이 다른 이에게는 불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번은 했으면 한다. 승객 또한 전철차장을 조금이나마 이해해 주고 조금이라도 도와준다면 더 편하고 원활한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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