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지만 강렬한
유튜브를 보면 정말 많은 사람이 영상을 만드는 것을 볼 수 있다. 구독을 눌러 정기적으로 보는 채널도 있지만 가끔은 우연히 보게 되는 브이로그도 많다. 대다수의 브이로그는 그 형식이 단조롭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한 번 보면 끝까지 보는 편이다. 의리 차원에서 1회의 조회 수를 늘려주기 위한 것도 있지만 영상 한 편으로 그 사람을 온전히 파악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사람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비정상적이고 이질적인 환경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삶과 비슷한 삶을 사는 누군가를 들여다보게 되니 그런 것 같다.
영화 <더 킬러>도 우연히 보게 된 영화였다. 넷플릭스 영화라는 왠지 꺼리게 되는 간판을 달고 있지만 마이클 패스벤더라는 훌륭한 배우가 연기했다기에 호기심에 고르게 되는 이 상황에 잠깐의 시간을 투자하기로 했다. 보고 나니 그리 후회할 선택은 아니었다.
한 킬러(마이클 패스벤더)가 결정적인 순간에 아슬아슬하게 목표를 놓쳤다. 킬러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
이 영화는 한 편의 브이로그를 보는 것 같은 영화였다. 물론 영화라는 만들어진 이야기로 보여주는 킬러의 삶이기에 이게 진짜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또한 킬러라는 것은 나의 삶에 있어 생소한 일이기 때문에 큰 공감을 하기란 어려웠다. 하지만 내가 인간이듯이 킬러라는 사람도 나와 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생활이나 행동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챕터를 나누고 챕터마다 제거할 상대가 달라진다. 그동안 킬러는 자신의 삶을 간단히 보여주며 일종의 철학을 나열한다. 이 킬러가 누구인지 서사는 없다. 정체를 바꿔가며 누군가를 살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일종의 원맨쇼만 이뤄질 뿐이다. 강한 액션에 길든 관객은 이 영화가 지루할지도 모르겠다. 기존의 킬러를 떠올리면 격투나 추격이 화려할 것만 같은데 이에 비해 이 영화 속 킬러는 모든 것이 단조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킬러는 이렇게 행동하지 않을까? 조용히 대상을 제거하고 사라져야지, 이것저것 다 부수고 다니면 그게 진짜 킬러인가?’ 영화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드니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킬러의 행동과 동선을 보며 <GTA>나 <스파이더맨> 같은 액션 어드벤처 게임을 하는 기분도 들었다. 마치 자유도 높은 게임처럼 소소한 이벤트를 즐기며 정해진 임무를 해결하는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 그래서였는지 몰라도 간단해 보이는 행동들이 오히려 색다르고 감각적으로 느껴졌다. 너무나 과한 액션 범벅의 영화 속에서 참신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마치 KBS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가 이야기 방식이 조금은 옛날 드라마 같은 느낌이 나더라도 당시 드라마 판에서 시청률 1위를 차지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