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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Apr 09. 2024

퍼주는 것은 할머니 사랑으로 족하다

정이 너무 넘쳐나는 시상식

연말마다 챙겨 보는 특집 방송이 있었다. 바로 방송사 시상식이다. 연기대상, 가요대상, 연예대상 등 한 해 동안 각 분야에서 활약한 이들이 누군지 그리고 그중 누가 상을 받는지 예측하고 결과를 보는 재미가 있었다. 후보가 쟁쟁할 때는 당사자가 아님에도 긴장하는 재미까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재미가 줄었다. 요즘은 결과만 보거나 아예 관심이 없는 때도 있다. 왜 시상식이 재미없을까? 왜 그들의 잔치가 더욱 그들만의 잔치처럼 되었을까?


첫째는 예전만큼 수작이 많이 나오지 않아서다. 가장 치열했던 연기대상으로 손꼽히는 2005년 KBS 연기대상은 지금 돌아보면 부문마다 치열했음을 느낄 수 있다. 대상에 <불멸의 이순신> 김명민, 최우수상에 <해신> 최수종, <부모님전상서>, <장밋빛 인생> 김해숙, <장밋빛 인생> 최진실. 누가 대상을 받았더라도 아쉽지 않았고 결과도 인정할 수 있는 결과였다. 각자 다른 해에 나왔더라면 누구나 대상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요즘은 이렇게 재미있는 작품이 많이 나오지 않는다. 한 방송이 화제가 되면 시상식에서 각종 상을 싹쓸이하는 게 다반사가 됐다. 그러다 보니 시상식 전부터 누가 어떤 부문에서 수상할지 예상 가능하고 특정 누군가의 팬이 아닌 이상 누가 받아도 크게 관심이 가지 않는다.


둘째는 상을 너무 다 퍼주기 때문이다. 2023년 SBS 연기대상에서 7명이나 신인 연기상을 공동 수상했다. 각자 훌륭한 연기를 했을지는 몰라도 그중 가장 뛰어난 연기를 했다고 여겨지는 배우에게 주어야 하지 않을까. 흥행과 화제 여부를 떠나 참가상을 주는 것처럼 시상식에 참여한 이들의 손에 상을 하나씩 준다. 깔끔했던 시상 부문도 아주 다양해졌다. 내년에도 같은 상을 줄지 안 줄지 모르는 듣도 보도 못한 상이 양산된다. ‘베스트 XX상’이나 스폰서 이름으로 된 상, 아니면 우수상을 XX 부문, XX 부문 등 여러 부문으로 쪼갠다. 이제 시상식은 작품에 대한 수고, 실력에 대한 확인 등에는 의미가 없는 축제가 됐다. 연예인의 눈치를 보며 그들을 서운하지 않게 하려는 목적으로 변질됐다. 상을 준만큼 다음에 제작할 방송사 작품에 출연해달라는 것처럼 보인다.


후보에 오른 연기자들에게 상을 너무 다 주는 게 아니라 그중 제일 잘한 사람을 공정하게 선정해 상을 줘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받은 사람도 못 받은 사람도 다음 작품에 분발하게 해야지, 한 명씩 다 챙겨주려고 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 좋은 작품과 연기가 예전보다 덜 나오는 데는 이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방송사 시상식, 특히 연기대상은 상 이름에 걸맞은 실력에 대한 상이 아닌 상마다 이름만 다를 뿐 후보에 오른 사람에 대한 인기상이 된 지 오래다. 이 때문에 백상예술대상이 공신력 있고 권위 있는 시상식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2019년 SBS 연예대상에서 김구라가 연예대상 통합으로 해야 한다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여러 이유로 그렇게 하지 못하지만 이 뼈 있는 의견은 연예대상뿐만 아니라 연기대상에도 적용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TV 시청이 점점 줄고 OTT 외 다른 플랫폼에서 각종 콘텐츠가 나오는 마당에 방송국 콘텐츠가 가장 재미있고 화제가 된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시상식으로서 위상을 높이려면 고려해야 할 일이다. 아니면 상을 주는 방식이 아니라 축제 형식으로 바뀐 가요계처럼 한 해를 돌아보는 방송처럼 시상식을 진행하면서 대상 공로상 같은 굵직한 것만 챙겨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영화제처럼 연기자만 신경 쓰지 않고 각본, 음악, 촬영, 미술 등도 시상하는 것도 좋겠다.


요즘 식당 맛집을 꼽을 때 정말 맛있거나 가성비가 좋은 집을 맛집으로 꼽는다. 후자는 적은 가격으로 푸짐하게 반찬을 누릴 수 있는 식당인데 대개 친할머니처럼 남는 것 없이 퍼준다고 평한다. 시상식은 할머니 식당이 아니다. 넘쳐나는 상은 시상식을 더 지루하게 할 뿐이다. 예전에는 신인상 받은 사람이 이듬해 조연상, 우수상, 최우수상 등 여러 상을 차근차근 밟아가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재미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것도 보기 힘들어 아쉽다. 항상 방송국은 TV가 위기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지만 위기를 자초하는 건 시상식에서조차 자신들의 설 자리를 깎아내는 본인들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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