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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May 27. 2024

한국적 사랑의 맛을 찾아서

덜 세련되어도 기억에 남는 맛

세계라면협회(WINA, World Instant Noodles Association)에서 2023년 5월에 밝힌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 대비 라면 소비량은 39.5억 개로 전 세계 8위다. 1인당 라면 소비량은 연간 77개로 전 세계 2위로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라면을 먹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상품으로 나온 라면을 다양한 재료와 방식을 활용해 새롭게 만드는 이들도 점점 늘고 있다. 조리의 수준이 아닌 요리로 발전시킨 것이다.


뭔가가 엄청난 선호를 받으면 그만큼 안 좋은 말도 나오기 마련이다. 우리나라의 라면 사랑이 커지자, 라면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말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고 라면에 있는 인공 조미료, MSG가 문제로 거론됐다. 라면 업계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MSG 사용을 줄였고 이에 따라 라면의 맛도 변했다. 맛의 변화에도 별말 없이 라면을 소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를 큰 문제로 여기며 옛 맛을 찾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 연구하는 이들도 있다. 신라면의 옛 맛을 구현하려면 물을 조금만 넣고 미연을 넣으면 된다고 한다. 맛이 그리워 방법을 찾아내는 이들의 열정은 전혀 기행으로 보이지 않는다. 


내게 영화는 라면 같은 존재다. 영화만이 아니라 대다수 콘텐츠가 그러하다. 요즘 콘텐츠에서 느낄 수 없는 예전 맛이 그리우면 찾아보게 된다. 아무리 촬영 장비나 기술이 좋아졌다고 해도 스토리텔링의 비결이 쌓이고 쌓였다고 해도 예전의 감성과 참신함을 찾을 수 없을 때가 있다. 멜로, 로맨스 이야기가 그렇다. 요즘은 정형화된 틀이 있는 것 같다. 인물과 환경이 각자 다르지만, 왠지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언제 어떤 갈등이 등장할지 감이 잡힌다. 시기와 갈등의 정도 이런 것도 큰 차이가 없고 현실에서 겪을 일인지 공감되지 않고 혼란스러울 때가 있기도 하다.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은 그런 혼란에서 벗어나는 영화였다.



군인 철수(이성재)는 마지막 휴가를 보내기 위해 연인 다혜(송선미)의 집에 찾아가지만, 그곳에는 낯선 여자 결혼 비디오 촬영기사 춘희(심은하)가 살고 있다. 다혜를 다시 만나기 위해 철수는 춘희에 방에 눌러앉게 되고 함께 <미술관 옆 동물원>이라는 제목의 영화 시나리오를 써 나가게 된다.



이 영화는 화면 전환이 단순하다. 마치 연극 같다. 한정된 두 장면이 자주 반복되는데 첫째는 춘희의 방에서 보여주는 주인공들의 현실의 삶이고 둘째는 춘희와 철수가 만드는 시나리오의 묘사다. 이 두 작은 장면의 반복으로 거의 모든 이야기가 진행된다. 요즘 같으면 스케일 화려한 화면과 기술로 치장할 영화를 이 영화는 대사로 꾸민다. 자세히 묘사하지 않아도 삶이 드러나는 인물의 철학과 지식이 참 매력적이다. 대사라고는 하지만 유식하고 유창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춘희와 철수,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면 나를 포함한 요즘 젊은 사람은 이런 이야기를 나누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항상 있어야 할 것만 같은 사람도 눈에 띄지 않는다. 예를 들면 부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이들의 부유함으로 모든 상황을 해결하지 않는다. 맹한 여주인공의 모습도 답답하지 않고 귀엽다. 찢어지게 가난하고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귀가 얇아 사기를 당하거나 위험을 자초하는 것도 아니다. 생활 속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어리숙함이 인물을 귀엽게 바라보게 한다. 요즘 콘텐츠는 몇몇 설정이 기시감을 느끼게 하지만 이 영화는 오래된 영화임에도 그런 것을 느낄 수가 없어 오히려 신선했다.


돈을 많이 내고 비싼 재료를 넣은 라면을 먹는다고 꼭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요즘 넣으면 맛있다는 것을 아무것도 안 넣어도 더 맛있을 때가 있는 법이다. <미술관 옆 동물원>은 요즘 고급화된 라면과는 다른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라면 같은 멜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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