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문제를 보며
한민족, 한 가족 등 공동체를 강조하던 우리나라가 개인주의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게 사실일까? 개인주의는 개인의 가치를 중시하는 입장을 말한다. 개인의 독립과 자립에 가치를 두고 개인의 이익이 국가나 사회집단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구별하기보다 같은 입장으로 여기는 때가 많은데 나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 차이는 책임에 있다. 행위의 주체가 되고 이에 따른 책임을 개인이 지는 것은 개인주의다. 이와 달리 자기만의 이익을 추구하고 그 과정과 결과의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 것은 이기주의다. 우리나라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구별하지 못하는 이유는 책임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때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개인주의가 아닌 이기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의대 증원 방침을 두고 정부와 의사가 힘겨루기가 이기주의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기주의는 극단적일 때가 많다. 자기 뜻을 펼치기 위해 상대에 향한 관심은 없다. 대표적인 예가 진나라 시황제의 분서갱유(焚書坑儒)가 떠오른다. 시황제는 새로운 법령이나 정책에 비판하는 것에 대한 조치로, 꼭 필요한 책들만 제외하고 나머지는 수거하여 불태웠다. 그리고 이런 자신을 비판하는 데 가담한 460명을 산채로 각각 구덩이에 파묻어 죽였다. 절대권력을 행사한 그는 어떤 반대의견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거대한 중국 땅덩이를 급하게 통일했기 때문에, 분열을 막고 질서 체계를 잡기 위해. 분서갱유의 당위성을 주장할 이유는 많겠지만 이에 따른 책임과 명쾌한 대안이 없는 걸로 봐서는 진시황을 이기주의라고 생각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의 의료 개혁은 필요하다. 나는 정부의 정책 시기가 의문이다. 2024년 총선을 앞두고 이 문제가 거론됐다. 나는 일종의 퍼포먼스라고 생각한다. 과정에 대한 책임은 관심 없다. 윤석열 정부가 의사, 의대생을 향한 어떤 대화나 회유의 여지없이 면허 정지 카드를 들고 있는 모습은 극단적이다. 더 나아가서는 늘 그랬듯 압수수색으로 이곳저곳을 들쑤시지 않을까.
이기주의는 분열을 촉진한다. 이제 우리 사회는 공동사회가 분리, 분열되어 소수, 나노 사회가 되고 있다. 우리의 모든 곳은 사적으로 변해간다. 개인 공간이 늘고 있다. 공동체를 중시하는 교회에서도 각자의 공간은 분리되고 격리되며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카페도 이제는 내 공간을 만들어 침범받는 것을 경계한다. 종교 모임이나 동호회 같은 여전히 공동으로 모임을 가지는 형식이 존재하지만, 예전처럼 자신들의 울타리 밖을 챙기는 모습보다는 울타리 안만 신경 쓰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지금 의료업계는 환자의 생명을 위해 싸우기보다 자신의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사투 중이다. 엘리트 의식에 빠져 자신들만 자신들이 쳐 놓은 울타리 안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의료 행위를 중단하며 의대생 정원 증가를 반대하고 있다. 직업의 본질을 기억하기보다 자신들과 다른 사람을 구분해 밥그릇을 챙기려 하는 모습에 한숨만 나온다.
의대 정원 관련된 문제는 지난 정부에도 거론됐던 문제다. 하지만 지금까지 의사들은 대화를 거부했고 어떤 협의도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없다. 대한의사협회는 우리나라는 전공의가 전혀 적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OECD 평균보다 높은 우리나라 의사 1인당 외래진료 횟수를 말한다. 그만큼 진료받을 확률이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통계에는 과잉 진료 등 다양한 진료가 포함되어 있어 이 진료가 질적으로 좋은 진료인지 알 수 없다. 또 진료를 자주 받을 수 있는 것은 도시에 한정된 것일 뿐 소아과를 비롯한 일부 의료 분야나 지방에서는 의사를 만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기주의는 방관한다. 지금 지하철의 모습을 보면 사람마다 이어폰을 사용 중이다. 이어폰이 제공해 주는 개인의 칸막이 덕분에 바로 옆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관심이 없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면 관심 가지지 않는 것이 요즘 사회다.
하지만 이 방관자들은 관심 없던 문제가 자신들에게까지 번지면 그때 난리를 친다. 구직난 문제는 우리나라의 다른 문제 중 하나다. 기피 업종이나 중소기업 구인난 문제 뉴스를 접하면 젊은이들은 힘든 일을 하지 않는다고 혀를 찬다. 하지만 자기 자식이 그 직업을 하겠다고 하면 그런 일을 하라고 그렇게 학원 보낸 줄 아느냐며 화를 낸다. 정부와 의료 갈등도 지나가는 남의 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자신을 비롯한 주변의 누군가에게 일이 생기면 관심을 가질 것이다.
의료 인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고 언젠가는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에 의대 증원은 필요하다. 의대 증원한다고 해서 이들이 수익성 있는 분야를 찾지 비인기 분야로 간다는 보장이 있을까. 이들도 엘리트 의식에 빠진 일부 의사와 다를 게 없을까. 정부는 무조건 증원을 외치고 의료 면허 정지로 의사를 압박하고 있다. 의사는 집단 사직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 문제는 이들의 이해관계다. 환자를 위해, 다 나은 의료에 대한 고민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표 때문에, 자기 밥그릇을 위해 싸운다. 이와 관련 없는 사람들은 자기 살기 바쁘다. 결국 지금 정부와 의료 갈등의 큰 피해자는 지금도 쓰러지는 환자와 그 가족들이다.
의료 분야가 정말 살아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증원하되 지방 의대와 병원 및 비인기 의료 분야가 살아날 수 있게 해야 한다. 의대생들이 해당 분야로 가서 정착할 수 있게 지원하되 자부심을 느낌과 동시에 의사로서 교육, 지원받는 것에 경각심을 느낄 수 있는 평가 등의 방법으로 관리해야 한다. 또한 다양한 의료 분야와 지방 병원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단기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관계자들의 장기적이고 끊임없는 대화와 방법 모색이 필요하다. 다른 국민은 모르쇠 할 것이 아니라 이 두 집단의 변화를 위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이익의 사유화, 책임의 상대화. 너나 할 것 없이 다퉈 이를 실천하니 사회적 신뢰가 땅에 떨어지고 서로를 믿을 수 없게 되니 사회 곳곳에서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한다. 사회는 비용 과다로 인해 파탄 날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의료 분야가 출발선을 끊을 것일 뿐 앞으로 우리나라는 다양한 분야에서 이기주의와 이기주의의 대립, 이를 바라보는 이기주의자들의 방관으로 앓고 잃을 것이 많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