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다. 예전에는 배달 주문을 하려면 자주 먹는 식당의 전화번호를 알 방법이 필요했다. 전화번호가 가득 담긴 전화번호부를 활용하거나 스티커, 자석, 병따개, 라이터, 이쑤시개 등 홍보용으로 전화번호가 적힌 물건을 버리지 않고 모아서 이를 보고 전화로 주문했다.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배달 앱이 있기 때문이다. 중화요리나 치킨 정도에 그쳤던 내 배달 음식 스펙트럼이 배달 앱 덕분에 늘어난다. 한, 중, 일식 식당부터 서양과 생소한 나라의 음식까지. 별의별 식당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가끔 이 앱을 사용하며 세상이 점점 편리해지는 것을 느낀다.
나는 배달 앱을 단순히 배달 주문용으로만 사용하지 않을 때가 있다. 자린고비가 천장에 굴비를 매달아 이를 보며 밥을 먹는 것처럼 배달 앱은 내 허기짐을 달래는 데에 활용한다. 늦은 밤 당장이라도 시켜 먹고 싶지만, 살이 찌고 내 통장 잔고가 줄어드는 것을 막고 싶을 때 배달 앱의 식당 목록과 메뉴를 보며 군침만 삼킨다. 여기서 만족하지 못하고 이성의 끈을 놓으면 나도 모르게 주문하기 버튼을 누른다. 하지만 스마트폰 화면을 멀리하며 그 순간을 참아내면 눈으로 배고픔을 달램과 동시에 내 인내심을 조금 더 키웠다는 뿌듯함을 얻을 수 있다.
배달 앱은 일종의 일지로 사용되기도 한다. 배가 고파 배달 앱에 들어가 무엇을 먹을지 고민해도 딱히 어떤 것이 먹고 싶은지 빨리 결정되지 않을 때가 있다. 막상 결정하더라도 어떤 식당에 주문해야 내가 성공적으로 한 끼 식사를 마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그럴 때 찾아보는 것은 식당 리뷰다. 식당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지만 내가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찾아보는 식당 일지다. 내가 쓴 리뷰는 대부분 이벤트 참여를 위한 것이다. 다른 음식이나 음료수를 무료로 받기 위해서 적은 대가성 리뷰다. 그래서 가식적일 때가 많다. 그래도 식사를 마치고 느낀 그대로 적었기 때문에 이 기록을 토대로 음식을 시킨다. 내 리뷰에 식당 사장님의 댓글도 가식일지 모르지만 내 칭찬에 뿌듯해하는 것이 보이는 글을 보면 괜히 내 마음도 흐뭇해진다.
안타까운 것은 내가 주문했던 식당의 반 이상은 사라졌다는 것이다. 내 입맛이 이상한 건가? 아니면 식당 맛을 모르는 범인(凡人)들의 잘못인 건가? 리뷰를 적었다고 해서 단골이 되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한 번 이용한 인연, 그래서 생기는 의리로 몇 번 더 먹었어야 했을까 뒤늦게 후회한다. 일개 고객인 내가 몇 번 더 먹는다고 그들의 수입에 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더는 볼 수 없는 식당의 존재를 확인하고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식당을 찾아야 하는 내 손가락에서 아쉬움이 묻어 나온다.
내 리뷰만으로는 빨리 식당을 찾을 수 없을 때는 남의 리뷰를 찾아보기도 한다. 대체로 리뷰를 많이 적는 사람의 리뷰를 찾아보게 되는데 그만큼 표본이 많기 때문이다. 배달 음식을 자주 먹는다는 것이고 높은 확률로 맛있는 식당을 잘 안다는 것이다. 항상 칭찬만 일삼는 ‘천사 형’, 리뷰 이벤트를 위한 ‘기회 형’, 사진에 신경 쓰는 ‘예술가 형’, 쓴소리만 가득 찬 ‘악플러 형’ 등 다양한 사람이 있는데 나는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미식가의 식당 리뷰를 찾아보려 한다. 뭐가 맛있고 뭐가 아쉬운지 리뷰에 담아내기 때문에 내 입맛과 설령 다를지라도 어느 정도 참고할 수 있다. 하지만 너무나 솔직한 탓에 리뷰를 보면서도 놀라기도 한다. 나는 소심해서 웬만하면 다 맛있다, 좋았다고 하는데 그들은 요리 서바이벌의 심사위원처럼 평가하며 조언까지 아끼지 않기 때문이다.
또 오늘은 어떻게 허기를 때울지 고민의 시간이 찾아왔다. 대충 집에서 차려 먹을지, 또 자린고비처럼 배달 앱을 쳐다만 볼지, 과감하게 주문할지 갈팡질팡 고민한다. 배달 음식을 먹기로 하며 기원해 본다. 이번에는 내가 주문하는 식당의 음식이 맛있기를, 내가 남긴 리뷰의 식당이 조금 더 오래 운영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