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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Oct 08. 2019

달콤한 인생 속 시각 요소

대학교에서 ‘영상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수업을 들으면서 배운 것 중 하나는 시각 요소(Visual Element)였다. 그냥 스토리에 따라 감독의 ‘액션’ 소리에 촬영하면 되는 줄 알았던 영화 속에는 촬영 감독의 다양한 촬영 기법이 녹아 있었다. 영화 역시 다양한 전문가가 모여 작품을 만들어내는 팀 프로젝트라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달콤한 인생


나는 김지운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좋아하는 영화는 배우 이병헌이 연기한 ‘달콤한 인생’이다. 왠지 모를 여운이 계속 남아 마음에 든다. 유키 구라모토의 ‘Romance’는 그 기분을 더 오래 가게 한다. 이 영화 속에도 다양한 시각 요소가 있다. 영화 제작을 꿈꾸는 사람에게는 교보재로 써도 될 것 같을 정도로 말이다. 전문가가 아니기에 틀린 부분도 있을 테고 많이 부족하겠지만 영화 속에서 찾을 수 있는 다양한 시각 요소 중 몇 가지 장면을 추려 주관적 생각과 함께 담아본다.


1. 업소 영업을 방해하는 건달을 처리하러 가는 선우(이병헌)    

극 초반부터 격투신이 발생하는데 선우가 일을 해결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김지운 감독이 누아르를 구상하면서 왠지 영화 <Point Blank>를 오마주 했을 것 같은 장면이다.

배경의 흑백 조화가 눈에 들어온다. 공간이 대칭적이다. 안정적인 배경에 대한 집중을 점점 이병헌이 걸어 나옴으로써 이병헌의 모습에 집중하게 된다. 첫 장면으로 이병헌이 맡은 선우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 예상하게 하는 장면이다. 일에 있어서 철저하고 완벽하며 대범한 인물임을 알 수 있는 걸음이었다.

하얀빛이 밝게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극 중 사건의 시작을 색으로 알려주는 것 같다. 약간의 긴장감을 관객에게 느끼게 하려는 것 같다. 슈트와 천장, 벽의 색의 조화가 분위기가 가볍지 않음을 느끼게 한다.

Long Shot으로 촬영했으나 점점 배우가 다가옴에 따라 바스트까지 보이게 된다. 표준적으로 앵글을 맞추어 배경과 배우 모두 눈에 들어오도록 활용했다.

이병헌이 앞으로 걷기 때문에 벡터가 앞을 향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앞으로 나올수록 점점 힘을 느끼게 한다. 정면으로 찍지 않고 약간 대각선으로 찍었기 때문에 운동성을 더욱 줄 수 있었다. 공간이 깊이감을 느끼게 해주는데, 내가 보기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병헌 바로 뒤에 있는 조명이다. 이 조명이 잘 보이지 않았거나 어두웠다면 어땠을까?



이미지 편집프로그램으로 조명 부분에 어둡게 색을 칠해보았다. 어두운 부분이 좀 더 깊은 느낌을 주어 깊은 곳에서 걸어오는 이병헌을 부각해 벡터의 힘을 더욱 증대해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2. 휴식을 청하는 선우    


이 영화에서 가장 편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이병헌이 소파에 눕는 장면은 두 번 나오는데 모두 이병헌이 극 중에서 잠을 청하려 하나 잠을 이루지 못하고 스탠드의 불을 껐다 켰다 반복을 하게 된다. 극에서 보스 강 사장(김영철)의 지시로 그의 애인인 신민아를 감시하게 되는데, 이병헌이 그 애인에 관심을 두게 되며 여러 생각으로 인해 잠을 못 이루는 것이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대조다.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의 대조를 하고 있다. 흑백의 대조로 눈을 끌어 관객에게 이병헌의 심리와 이후의 이병헌에게 일어날 일들에 대해 예상하게 한다. 이후에 일어날 위기의 스릴과 그에 대한 감정 증대를 위해서 이런 장면을 마련한 것 같다.

영화에서 이병헌은 완벽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집에서의 모습은 속옷만 입고 잘 정도로 털털한 사람이다. 관객들에게 이 장면은 영화에서 이병헌의 겉모습에 대한 편견을 제거하는 데 도움을 줄 것 같다.

이 장면은 이병헌만 보이게 찍은 것이 아니라 주변 공간을 활용함으로써 더 편안한 느낌이 들게 해준다. 카메라의 앵글은 High도 Low도 아닌 표준으로 촬영한 것 같은데 배우가 누워 있어서 조금 높게 잡은 것처럼 보인다. 공간을 넓게 잡아 촬영하여 백색의 빛과 반대편의 어두움을 잘 대조했다고 생각하는 장면이다.

   


배우의 노즈 룸(nose room)이 어두운 곳에 향하다 잠을 자기 위해 스위치를 누른다. 어두운 곳에 시선이 있다는 것을 통해 복잡한 심경을 느낄 수 있는데 만약 이런 형태로 잘랐다면 배우의 심리 파악을 하기보다는 그냥 휴식한다는 느낌으로 받아들이기 쉬웠을 것이다.


3. 선우가 생매장 당하는 장면    


선우가 자신의 조직에 버림받고 생매장당하는 장면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이 장면이 주인공의 눈에서 바라봤다는 점이다. Eye level로 촬영했다. 극 중 이병헌이 땅이 팬 곳에 떨어지는데 카메라가 촬영하는 것이 이병헌의 눈이다. 조직원들이 흙을 삽으로 퍼 던지는데 카메라 렌즈에 흙이 떨어짐으로써 점점 어두워지는 것을 표현하는데 보는 이에게 이미지를 통한 현실감과 공포감을 느끼게 해주는 부분인 것 같다.

조명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어둡게 촬영되었다. 이런 상황이 실제 상황이라면 조명이 없는 것이 더 당연할 것 같은데, 비가 쏟아지는 모습과 조직원 역할의 배우들 등 여러 가지를 촬영하기 위해서는 조명이 필요한 것 같다. 조명이 조금만 더 어두웠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Low 앵글로 촬영했다. 거의 수직으로 촬영되어 있어서 깊이감이 깊다. 그래서 떨어지는 흙과 무표정을 진 조직원들을 보면서 더욱 죽음의 공포감의 느낄 수 있는 장면인 것 같다. 어두운 하늘과 검은 우비를 입은 단체의 모습이 더 압박감과 공포감을 준다. 조직원들을 수평적으로 배치하여 Line의 모티프를 주었다.

이 장면을 통해 이전의 모습과 너무나 다른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선우에게서 선우 역시 죽음의 공포 앞에서는 같은 인간이라는 느낌이 들게 하는 장면이었다.


4, 5. 선우가 조직으로부터 탈출하는 장면 2    


간신히 선우가 조직으로부터 탈출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김지운 감독이 다양한 방법으로 촬영했다고 느껴진다. 한 Scene을 다양한 방법으로 촬영하여 쾌감과 스릴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인 것 같다.

전체적인 배경은 어둡다. 어두운 곳에 백열등과 드럼통에 붙은 불이 조명의 전부다. 인적이 드문 곳, 밤이라는 느낌을 잘 표현했고, 목숨을 걸고 탈출하는 영화의 내용에도 긴장감, 박진감을 더해주는데 도와준 것 같다. 

위에 있는 장면은 격투씬 중 한 장면인데 FPS 게임 화면과 비슷하여 선택했다. Eye level에서 촬영하여 내가 이병헌의 등 뒤를 따라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했다. 이병헌과 맞서는 배우는 당연히 작아 보인다. 이병헌과 맞서는 배우의 Occlusion을 통해 원근법을 표현했고 깊이감을 주었다. 또한 광각으로 촬영하여 이병헌은 커 보이고 주변은 실제보다 멀어 보이고 흐릿하게 보이도록 했다.



이 장면은 차로 탈출하는 장면인데, 조직원들이 차에 달라붙는 것을 촬영한 것이다. Low 앵글로 촬영하여 차가 상당히 크게 느껴지며, 대각선을 활용하여 액션을 더욱 역동적으로 만들어주었다. 광각으로 촬영하여 차는 더욱 크게 보이도록 했고, 탈출을 방해하는 조직원들은 조금 더 작고 흐릿하게 보였다.

두 장면 모두 벡터가 잘 표현되도록 촬영했다고 생각이 든다. 위의 장면은 이병헌이 적에게 점프하면서 발차기하는 장면인데 이병헌을 부각함과 동시에 위에서 아래로 힘이 움직이는 느낌이 강하게 들도록 표현했다. 아래의 장면은 차가 계속 회전하면서 다른 배우들과 충돌하는데 벡터의 충돌을 잘 표현했다. 살기 위해 긴박하고 위험한 상황 속에서 탈출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모습과 어울리는 카메라 구도와 촬영이었다고 생각이 드는 장면이었다.


6. 보스들의 모임에 참여하러 가는 백 사장(황정민)


백 사장이 조직 보스들의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장소로 향한다. 문을 총 세 번 여는데 문이 닫히지 않고 계속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반복된 패턴이지만 조금씩 방 모양에 변화가 있다. 방의 구조가 비슷하여 안정적인 느낌을 주지만 계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모습에 미로와 같은 깊이감이 있다. 원근법으로 인해 문이 점점 작아지는 느낌을 준다.

백열등 몇 개만으로 조명을 주었다. 바닥의 비치는 황정민의 모습이 더욱 입체감을 더해준다. Long Shot으로 촬영하여 배경의 깊이감을 더해준다. 황정민이 출발하는 시점에서는 헤드룸을 맞춰서 촬영이 시작하지만, 점점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앵글은 약간 낮게 느껴진다.

소실점이 1개라 시선은 황정민 한 사람과 한 곳에 집중하게 한다. 문이 계속 열림으로써 호기심을 자극한다. 조직의 우두머리는 항상 높은 곳이나 깊은 곳에 있기 마련이다. 깊이감을 줌으로써 어딘가 복잡하고 잘 드러나지 않는 곳으로 향하고 있다고 느끼게 한다.


7. 선우에게 당한 백 사장    

극 중 선우를 초반에 괴롭혔던 백 사장이 선우에게 복수를 당한다. 아이스링크에서 홀로 싸늘하게 죽어가는 장면이다.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선명한 피다. 백색의 공포가 느껴지는 공간에 붉은 피를 흘림으로 얼마나 잔인하게 죽어가는지 보여준다. 조명은 밝은 빛을 주었지만 약간은 어둡다. 지금보다 더 밝았다면 이상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스름을 줌으로써 좀 더 비참한 죽음을 표현하는데 도와주는 것 같다. 클로즈업에서 점점 카메라가 돌아가면서 Long shot으로 바뀌도록 촬영했다. 배우는 물론 배경을 잘 찍어냈다. 

공간 활용을 잘했다고 생각하는 장면인데 죽은 황정민의 좌측 빈 곳이 제거되었다면, 어스름이 제거되었다면 답답한 느낌을 주어 조금 아쉬웠을 것 같다.

High 앵글로 수직으로 촬영했다. 잔인함, 비참함을 한 눈에 볼 수 있고, 이로 인해 쾌감을 느낄 수 있다. 피의 모양과 색감이 계속 집중하여 보게 되면 퍼져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백 사장이라는 캐릭터가 잔인한 캐릭터였는데 그의 싸늘한 주검을 보며 잔인한 인간도 죽음 앞에서는 약한 어쩔 수 없는 인간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장면이었다.


8, 9. 자신을 죽이려했던 보스 강 사장과 대면한 선우 2    

    


강 사장과 선우가 대면하는 장면이다. 위의 장면을 봤을 때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색과 빛이다. 화려한 배경과 달리 검은 슈트의 두 남자의 모습은 대조적이다. 붉은 배경은 두 사람의 대면 이후 벌어질 피 튀는 싸움을 암시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배경에 보이는 달콤한 인생이라는 뜻의 ‘la dolce vita’ 글귀 역시 전혀 달콤하지 않은 상황과 대조적이지만 잘 어울리는 배경이라고 생각한다. 유리잔과 양주병들이 일렬로 배치되어 선의 모티프를 유지하고 있다. 병의 크기의 변화가 있다. 복잡함보다는 정교함을 느낄 수 있다.

조명이 부분적으로 밝다. 이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발밑에도 조명이 있다. 이러한 조명에 의해 어느 부분을 밝고, 어느 부분은 어두운 효과가 나타나는데 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같다. 상체까지만 보이도록 샷을 잡았고 약간 낮은 앵글로 잡은 것 같지만 헤드 룸(Head room)을 잘 맞췄다.


이 장면은 망원 렌즈를 통해 촬영한 것 같다. 이병헌과 김영철의 거리가 위의 장면보다 더욱더 가깝게 보인다. 이병헌이 부각됨에 따라 김영철과 총의 모양은 흐릿하게 나온다. 조명 덕분에 흑백의 대조가 약간 보이며 그 덕분에 누아르 영화 특유의 음울함이 더 잘 묻어나오는 것 같다. 카메라의 앵글은 약간 낮은 앵글을 잡았고 헤드 룸을 맞춰주고 있어 답답한 느낌은 없다. 정면으로 찍지 않고 대각선으로 찍어 총을 부각한 장면은 아니지만, 총이 더욱더 크게 보이도록 표현되었다. 벡터의 방향이 정면을 향하는데 총 덕분에 그 에너지를 더욱더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왜 자신을 죽이려 했냐고 묻는 선우와 자신에게 모욕감을 주었다는 강 사장의 대립에서 강 사장의 회유에 선우는 갈등한다. 두 대립에서 남자 두 명의 자존심과 강인함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 7년 동안 밑에서 일하며 신뢰 관계를 쌓았지만, 자신을 죽이려 했기 때문에 복수에 갈림길에서 갈등하는 모습이 조명과 카메라 앵글이 더욱더 잘 표현해준 것 같다.

     

10. 창가에서 섀도복싱을 하는 선우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선우는 창가에서 섀도복싱을 하며 즐거운 표정을 짓는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이중적인 화면이다. 창을 통해 비치는 도시의 야경과 선우의 모습이 동시에 보인다. 촬영화면의 프레임 안에 창문이라는 프레임이 하나 더 만들어져서 선우의 섀도복싱에 더욱더 집중하게 만든다. 이 장면 역시 완벽한 이미지의 선우의 인간적인 면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다. 웃지 않는 항상 완벽함과 진지함 속의 인물이 해맑은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편안하게 엔딩을 맞이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바스트 샷으로 촬영했지만 화려한 야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더 웃고 있는 이병헌의 모습이 부각된다. 화려한 색감 속에서 소박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무거웠던 영화의 이미지에서 편안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정면을 향해 펀치를 날리는데 벡터가 정면을 향해 있기 때문에 이병헌의 활기찬 에너지를 받을 수 있다. 야경이 비치는 대로 배경 삼아 촬영했기 때문에 무엇보다 더 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넓고 큰 도시 속에서 더 큰 이병헌이 보이는 것 같아 깊이감과 입체감이 더해졌다고 생각한다. 



마무리하면서


조용한 가족들, 반칙왕 등 코미디 영화로 유명했던 김지운 감독이 누아르 장르의 영화를 감독하면서 더욱더 이후에 더욱더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감독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 영화가 달콤한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촬영법에 있어서 많은 시험을 했고, 이 영화는 특히 누아르 영화의 분위기를 잘 표현할 수 있는 촬영법을 찾아 여러 가지 시도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많은 시도 때문에 자연스러움보다는 연출, 조작된 구도가 더 많았다. 그래서 어지러운 느낌도 있었지만 거북함보다는 보기에 신선하고 시원했으며 깔끔했다. 누아르라는 영화를 떠올렸을 때 어두운 분위기에 맞추어 색감도 어둡게 해야 한다는 인식이 사람들에게 있을 것 같은데 달콤한 인생은 그런 틀에 박힌 인식을 사라지게 했다. 그만큼 색이 화려했다. 어두운색을 사용하더라도 색의 대조로 잘 표현했고, 그에 맞추어 공간 활용과 앵글과 시각을 잘 활용했다.

제목 그대로 달콤함을 맛볼 수 있었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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