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왕 비룡>이라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다. 중국 요리의 대가들이 요리로 대결을 펼치는 게 주된 내용이다. 심사를 맡는 사람이 음식을 먹을 때마다 다양한 환상과 미사여구로 맛있음을 표현하는 것이 볼거리 중 하나였다.
넷플릭스에서 요리를 소재로 한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을 선보였는데 고수들이 모여 대결을 하는 것이 마치 <요리왕 비룡> 같았다.
넷플릭스 예능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한다면 ‘스케일’이다. 촬영 장소도 크고 지원하는 것도 크다. 하지만 크다고 해서 재미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넷플릭스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재미있었던 것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흥미롭기는 해서 첫 화는 볼 수밖에 없게 만든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은 조금 다르게 처음부터 끝까지 보게 됐다.
이 프로그램은 유명 셰프부터 잘 알려지지 않은 요리사 등이 모여 최후의 1인을 선발하는 요리 서바이벌 예능이다. 스튜디오 슬램이라는 중앙그룹 산하 제작사에서 만들었는데 JTBC 출신 PD들인 많은 제작사라 그런지 JTBC에서 방영한 <냉장고를 부탁해>, <싱어게인> 같은 프로그램이 느껴지는 요소들이 곳곳에 들어가 있다.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계급을 나눴다는 것이다. 대중이 알 만한 성과를 낸 요리사에게는 ‘백 요리사’라는 호칭과 계급을, 잘 알려지지 않은 요리사에게는 ‘흑 요리사’라는 호칭과 계급을 부여해 대결 구도를 만들었다. 또 개인 대결, 팀 대결 등 다양한 대결 구도를 만들고 편의점 음식이나 재료의 개수 한정 등 요리에 여러 가지 제약을 라운드마다 넣어 요리 서바이벌의 최종판 같은 느낌이 들게 했다. 요리의 승자를 판단하는 심사위원도 중요한데 다양한 측면에서 요리를 평가하고 누구나 인정할 판단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 미슐랭 3스타를 받은 파인다이닝 셰프 안성재와 요식 사업 최고 사업가인 백종원을 섭외한 것도 좋았다고 생각한다. (출연자들도 각종 인터뷰와 코멘터리에서 심사위원을 호평했는데 음식에 대한 지식, 감각, 판단 등에 놀란 것 같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었다. 첫째는 요리를 만드는 과정이다. 평범한 요리를 하든지 남이 하기 힘든 요리를 하든지 ‘이 사람들은 뭔가 다르다’라는 생각이 들게 화면을 잡았다면 최고를 뽑는다는 이 방송의 취지에 더 맞았을 것 같다. 다양한 요리사가 등장하기에 이들의 매력적인 개성을 보여주기 위해 요리보다 인물 조명에 집중하는 때가 많았는데 워낙 많은 출연자가 있었기에 모든 것을 담기 어려워 무게 중심의 선택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한다. 조리 장면에만 치중했다면 서바이벌보다 요리 정보 프로그램에 가깝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둘째는 설정이다. 계급이라는 처음부터 주목하게 하는 독특한 설정을 내세우지만, 점점 그 설정이 무색해진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옷 색깔에서 나오는 무게감과 중압감이 느껴지지만, 마지막으로 갈수록 계급이 아닌 인간으로서 느낄 수밖에 없는 긴장감만 보였다. 계급 대 계급 대결 구도를 더 오래 유지하거나 계급에 따른 혜택을 주거나 계급을 요리사들이 더욱 분발케 하는 장치로 계속 활용되었다면 원래 설정이 더 돋보이지 않았을까. 라운드 진행에 따라 백 요리사나 흑 요리사만 남을 수 있지만 어떻게든 계급 대결이라는 것을 부각하려고 왠지 모르게 비율을 유지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셋째는 장르 활용의 아쉬움이다. 2000년대에 서바이벌 예능이 장르를 불문하고 늘어남에 따라 이를 많이 접한 우리나라 시청자들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어떤 흐름으로 흘러갈지 어떤 요소가 알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다. 그래서 조금은 다른 느낌을 받길 바라는 사람이 많았을 텐데 이 프로그램도 다른 서바이벌과 구별되는 면이 적었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는 내가 살아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 생존 경쟁이라는 요소를 결과로만 두지 않고 과정에 두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정정당당한 승부가 나올 것만 같은 이 프로그램에서도 재료를 두고 다투거나 팀을 갑자기 나누는 등 요리사가 요리에 집중할 수 없게 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요리사는 자기의 온전한 실력, 요리는 보여주지 못한 채 탈락하는 안타까운 일도 벌어졌다. 고급 요리, 고급 요리가 아니더라도 고급스럽게 보이는 요리. 이런 것이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참가자들에게 기대되는 것이었는데 단지 살아남기 위해 집중하는 것처럼 보임에 따라 다른 프로그램과 차별성이 덜 느껴졌다. 아마 전 세계를 상대로 하는 넷플릭스 예능이다 보니 외국인 시청자들에게도 자극적으로 느껴질 만한 요소를 활용해 그들을 잡으려는 수단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조금은 이해할 수 없는 요소들이 프로그램 중반에 등장함에 따라 이 프로그램도 용두사미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지막 결승에 가기 위한 대결을 지켜보며 그 우려는 사라졌다. 마지막 대결은 재료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줬다. 처음부터 오로지 맛으로 승부하기 위해 단순한 방식으로 계속 나갔다면 어땠을까? 팀을 구성했는데 갑자기 방출하거나 물론 요리사에게 중요하겠지만 매출 경쟁 같은 요소는 대결 소재로 사용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다양한 대결을 보여주기 위한 제작진의 생각이 좋으면서도 아쉬웠다.
그 외에도 워낙 출연자가 많아 사람마다 개성, 서사를 드러낼 시간이 많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실력을 드러내지 못하거나 마녀사냥처럼 사람들의 공격을 받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담기에는 긴장감 없이 늘어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것. 모두 이해되고 편집할 때 많이 고민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예능이었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이전에 <피지컬 100> 같은 육체를 활용한 서바이벌이 있었고 두 프로그램 모두 성공을 거둠에 따라 앞으로 넷플릭스는 또 서바이벌 예능을 시도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다음에는 어떤 것으로 사람들을 경쟁하게 할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