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하느냐, 정체하느냐
드라마에나 볼 수 있다고 생각한 ‘시즌제’가 예능 프로그램에 도입됐을 때 나는 의아했다. 큰 틀이 바뀌지 않는 이상 같은 포맷을 늘 유지하는 예능 프로그램에 휴식이 필요한지 몰랐기 때문이다. 제작자의 마음을 오롯이 알 수는 없지만 매주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게 힘들었을 것이고 촌각을 다투며 편집해야 하는 것이 고됐을 것이다. 또 그런 노고에도 시청자들이 점점 지루해하는 반응을 견뎌야 했을 것이다. 공들여 만든 프로그램이 잠깐의 부진으로 폐지 절차를 밟는 것도 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사정을 고려했을 때 시즌제는 휴식이 필요한 이에게는 재정비의 시간이고 실패를 맛본 이에게는 재도전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물론 추후를 기약하지만 돌아오지 않는 프로그램도 있었지만 말이다)
시즌제가 점점 정착하면서 새로운 시즌이 시작할 때면 시청자는 해당 방송이 출연진이나 소재, 이야기의 변화로 새로움을 선사할 것을 기대하게 된다. 대부분의 시즌제 프로그램은 그렇게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연애 프로그램은 출연자가 바뀌고 여행 프로그램은 여행지가 바뀐다. 시즌제를 활용하는 제작자라면 지난 시즌의 미숙한 점을 보완하는 등 더 완성도 있고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작은 변화라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시즌으로 돌아오면서 더 큰 재미를 준 예능 중 하나는 넷플릭스의 <좀비버스>다. 이 예능이 더 흥미로웠던 이유는 전작의 구성에서 아쉬웠던 점을 잘 찾아 보완했기 때문이다. 전작에서 누군가는 좀비에게 물리자마자 바로 좀비가 되고 누군가는 끝까지 버텨내는 모습을 보이며 보는 이에게 혼란을 주었다. 이번에는 ‘희귀 체질자’라는 요소를 넣어 좀비에게 물려도 좀비가 되지 않을 수 있다고 방송 내 설정을 확고히 함으로 전작의 모순을 해결하고 이야기의 흐름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출연자에게 이야기의 흐름을 결정하게 하는 선택 요소를 더 많이 주었다. 이야기가 진행될 때 갈림길을 만들었고 게임으로 치면 NPC라고 할 수 있는 단역 출연자와 좀비들이 출연자들에게 급박한 상황에서 여러 갈래 중 선택을 하게끔 유도했는데 출연자가 선택을 앞두고 딜레마에 빠진 모습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이는 드라마 요소를 강화하고 자유도는 조금 낮춰 시청자가 더욱 프로그램에 몰입할 수 있게 했다.
<좀비버스>는 이번 시즌에도 생존자가 있으니 새로운 시즌이 또 나올 여지가 생겼다. 후속이 나온다면 좀비를 소재로 한 액션 영화처럼 출연자들이 좀비를 화끈하게 제압하는 장면도 나오면 좋을 것 같다. 프로그램의 장르가 예능이고 좀비를 연기하는 사람도 실제 사람이다 보니 과격한 액션이 나오기는 힘들겠지만 말이다.
새로운 시즌을 거듭할수록 지루해지는 예능은 <골 때리는 그녀들>이다. 이 예능은 시즌마다 보완점을 잘못 찾는 것 같다. 처음 방송이 시작할 때는 모든 팀이 우승이라는 큰 목표를 두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는 재미가 있었다. 팀마다 색깔도 확실했다. 축구를 향한 열정에서 보이는 실력 향상과 근성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계속 다양한 것과 새로운 것을 찾으려고 하지만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우선 팀은 다양한데 전술이나 팀 색깔은 다양하지 않다. 더 박진감 있고 수준 있는 경기를 위해 실력 있는 사람들을 섭외하지만, 여기에 몰두하고 각 팀에 집어넣으니, 팀마다 개성이 모호해졌다. 경기 중에는 선수들에게 캐릭터를 부여해 시청자에게 흥미를 주려고 하나 오히려 독처럼 보인다. 경기보다 사람 부각에 집중하려고 하니 경기 보는 재미가 떨어진다. 또 방송 자체가 경기가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결정적인 장면이 아닌데도 지나칠 정도로 계속 나오는 리플레이 영상과 편집이 보는 이를 지루하게 한다.
이 방송은 팀이나 인물의 다양성을 보여주려고만 할 게 아니라 스포츠 경기의 전문성을 강조해야 한다. 경기만 하는 팀이 아니라 JTBC <최강야구>처럼 팀마다 진짜 스포츠 구단 경영하는 느낌을 줘야 한다. 이를 위해 팀마다 팬덤을 만들 수 있는 요소를 개발해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타 국가임에도 해외 축구 리그 팀의 골수팬이 있다. 이들은 직접 경기를 보러 가기도 하고 유니폼이나 팀 상품을 구입하며 시차가 달라도 중계방송 시간을 기다리며 응원하기도 한다. 그렇게 팬들이 열광할 만한 것을 만들어야 한다. 스폰서를 끌어오거나 팀마다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 시청자들이 선수들을 연예인이 아닌 진짜 팀과 선수처럼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 계속 실력자를 구별 없이 데려와 팀에 넣고 팀의 정체성을 약화할 거라면 팀 구성도 개그맨 팀, 가수 팀, 모델 팀, 아나운서 팀 등으로 구분하는 게 아니라 드래프트 같은 요소로 팀을 완전히 재구성해 실력자들을 섞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시즌제는 흥행하면 금방 돌아오지만, 흥행에 실패하면 만남을 기약하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때가 많다. 어떻게든 다시 돌아오지만, 지난 시즌보다 재미가 덜한 것도 있다. 그래서 나는 잠깐의 휴식기를 가진 후 차기 시즌이라고 외치는 것은 그렇게 반갑지 않다. 부족한 점은 개선하고 새로운 요소로 흥미를 끌어 더 재미있는 방송을 제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