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으로 끌고 가는 86분의 원맨쇼
뉴스나 드라마의 영향인지 몰라도 재판과 관련된 이야기를 보면 의문이 든다. 진실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맞을까? 단지 자신이 이기기 위해 거짓을 서슴지 않고 활용하는 것이 아닐까? 거짓이 눈에 보이는데, 내가 그 상황을 겪었기 때문에 무엇이 진실인지 확실하게 알고 있는데 뻔뻔하게 느껴질 정도로 행동하는 모습들을 보고 있자니 황당하다. 진실인지 거짓인지 혼란스러운 게 아니라 짜증이 날 정도다.
진실보다 거짓에 익숙해지다 보니 법정에서 진실만 말하는 것을 보는 것도 이상하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와 관련된 영화 <라이어 라이어>를 보게 됐다.
플레처 리드(짐 캐리)는 소송에 이기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변호사다. 거짓말이 익숙하고 능수능란한 그는 아내와 아들도 못 말릴 정도다. 아들의 생일 파티 약속도 거짓말로 지키지 못하는 플레처는 아들의 “아빠가 하루만이라도 거짓말을 하지 말아 달라”는 생일 소원 기도에 갑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정직한 말만 하게 된다.
영화 속 플레처가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버리지 못하는 게 있기 때문이다. 재판의 승소, 이에 따라오는 명예와 돈. 그의 우선순위는 세상에서 높게 쳐주는 가치에 있다. 갱생 이전의 그에게도 가족은 소중했다. 하지만 명예는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지만 가족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소홀하게 대했다.
명예는 물론이고 가족마저 잃을 위기에 처하자, 그는 무엇이 소중한지 깨닫는다. 우선순위가 변하니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진다. 무엇을 내 중심에 두고 사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바뀐다. 대상의 형상이나 기능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 대상을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이 변하는 것이다. 법원 앞 노숙자에게 대하는 태도나 가족을 만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다하는 플레처의 모습에서 알 수 있다. 양심적으로 사는 삶, 세상의 가치보다 내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가치를 위하는 삶. 누군가는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래도 이상을 꿈꾸는 것, 그것이 누가 봐도 모범적이고 흠 없는 것이라면 가장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것일 수도 있겠다.
짐 캐리는 180도 바뀌는 인생 역할 연기를 참 잘 한다. 이 비결은 그의 뛰어난 표정 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는지 따라 하기 힘든 얼굴 움직임에서 나오는 표정으로 선과 악을 모두 표현한다. 감정 표현이나 세부 연기만으로도 선과 악의 분위기를 나타내는 배우는 많겠지만 둔감한 관객이라면 배우의 그런 노력을 잡아내기란 쉽지 않다. 이에 반해 표정은 직관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가볍게 영화를 보는 이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짐 캐리가 연기자의 또 하나의 무기인 표정을 잘 활용하기에 이런 영화에 적합한 배우로 짐 캐리가 떠오르는 것 같다. 어쩌면 결말이 뻔히 보이는 교훈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종종 이런 영화가 나와 조금이라도 작금의 사태와 관련해 생각의 시간을 가질 시간을 준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