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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대결 이야기

그보다 더 눈에 띄는 감독의 승부수

by 와칸다 포에버

일을 할 때 결과는 항상 정해져 있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 쉽게 바뀐다. 그 상황 중 하나는 일에 임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다. 어떤 마음 상태냐에 따라 태도와 행동이 달라진다.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하면 결과에 연연하지 않게 된다. 또 생각에 미치지 않는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이기고 짐이 있는 대결 상황은 그런 모습이 확연히 드러난다. 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기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큰 각오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각오에 따른 선택과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최근에 본 영화 <승부>는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과정이나 영화의 내용 모두 영화 제목 그대로 승부를 보고자 하는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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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바둑 대회에서 우승하며 국민적 영웅이 된 조훈현(이병헌)은 바둑 신동이라 불리는 이창호(김강훈)를 제자로 맞는다. 수년간 한집에서 지내며 맞이한 사제 대결에서 조훈현은 제자 이창호에게 충격적인 패를 당한다. 제자의 승승장구와 달리 바닥에서 고배를 마시던 조훈현은 승부사 기질로 올라와 다시 한번 제자와 대결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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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제작될 때부터 조훈현과 이창호 두 위대한 바둑 기사를 연기할 배우로 이병헌과 유아인이 캐스팅 되면서 주목을 받았다. 유아인의 마약 투약 사건 때문에 많은 이가 안타까워했다. 영화 개봉에 차질이 생길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가장 안타깝고 괴로운 것은 영화감독이었을 것이다. 어떻게든 영화를 살려내기 위해 돌파구를 마련하려 했겠지만, 유아인의 흔적을 지우겠다고 조훈현의 상대인 이창호를 영화에서 완전히 지워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여기서 보여 준 감독의 승부수는 유아인을 영화에서 지우는 것이 아닌 살려내는 것이었다. 문제를 일으킨 유아인이 버젓이 나온다며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유아인이 보여준 연기는 실제로 이창호의 모습이 그럴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훌륭했다. 이병헌은 늘 그랬듯 안정적이고 인상적인 내면 연기를 보여줬다.


유아인이 아무 문제가 없었다면 영화 내외적으로 더 큰 비중을 차지했을 것이다. 영화 포스터에도 등장했을 것이고 조훈현 중심의 이야기 전개가 아닌 이창호의 모습도 영화에서 많이 다뤘을 것이다. 영화를 보기 전만 해도 목소리나 포석하는 손 정도만 나오도록 유아인을 편집할 줄 알았다. 최대한 비중을 줄였겠지만 과감하게 유아인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며 영화를 개봉하기까지 감독이 많은 고민과 결단을 했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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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을 스포츠의 범주에 둔다면 다른 경기에 비해 아주 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바둑은 영화 소재로 다루기엔 어렵다.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어렵고 단순하지 않아 많은 이가 쉽게 공감과 쾌감을 느끼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둑 관련 영화는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것에 대한 우려를 해결하기 위해 범죄와 얽혀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내기나 사기, 도박, 아니면 일대일 승부 같지만, 알고 보니 조직 대 조직의 문제 등이 대다수다. 그래서 바둑으로 시작하지만, 바둑은 이야기의 중심이 아닌 일종의 수단에 불과한 때가 많다. 하지만, 이 영화는 영화보다 영화 같은 실제 역사가 긴장감을 주기 때문에 바둑에 집중한다. 이 또한 영화를 재밌게 볼 수 있는 감독의 승부수였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잘 나가던 사람이 무너졌을 때 좌절은 누구보다 더 크다. 조훈현의 마음이 그랬을 것이다. 스승이기에 제자가 잘되면 뿌듯하고 좋겠지만 본인도 현역 기사기에 상대가 아무리 제자라 할지라도 승리를 향한 욕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제자 또한 그렇다. 감히 스승을 이겨도 되는지 고민하고 이겨도 스승의 괴로워하는 모습에 행복하지 않다. 그래도 승리는 놓고 싶지 않다. 승부라는 것이 그렇다고 영화는 말한다. 그래서 승부에 대해 가장 많이 배운 사람은 감독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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