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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TV를 켰네

민감한 부분을 잘못 건드린 쇼

예전 같았으면 참신하다고 생각했을 예능

by 와칸다 포에버

JTBC의 <한끼줍쇼>는 시대를 벗어난 예능이었다고 생각한다. 평범한 가정에 들어가 저녁 한 끼를 대접받고 삶을 나눈다는 기획의도는 따뜻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스럽다. 이경규와 강호동이라는 MC와 스타 게스트를 웬만해서는 만날 수 없기에 문 한 번 열어줄 수 있지만,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찾아온다면 절대 열어주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내 사생활을 공개하는 것은 결심이 필요하다.


사생활은 나만의 사적인 영역이기에 남에게 드러내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나는 숨기고 싶지만 남의 것은 궁금해지는 마음이 생긴다. 다 같은 인간이라며 비슷할 거라고 말하지만, 내가 흥미를 느끼는 대상은 왠지 특별할 것처럼 느껴지고 더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연예 정보 프로그램이 2000년대 이전에 성행했다. 연예인 소식을 알 길이 TV나 신문 등을 제외하면 매우 적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인터넷과 SNS가 발전하면서 여기저기 소식이 올라오고 요즘은 팬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직접 자신의 사생활을 공개하기도 한다.


사회문화, 역사적 영향 등이 있었기에 ‘우리’라는 단어는 대한민국에서 결속력이 강했다. 나와 너로 나누기보다 공동체로 행동하는 때가 잦았다. 남의 집 문을 제 집 드나들 듯하고 음식뿐만 아니라 여러 물건도 나눠 쓰고 함께 쓰는 시절이 몇 년 되지 않는다. 지금은 옆집에 누가 있는지 모를 정도로 예전만큼 공동체 의식은 약해지고 달라졌다. 온전히 나를 중심으로 구성된 공동체만이 내 공동체이지, 내 주변, 동네 등의 공동체는 기껏해야 협력체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가족이나 친구 수준의 공동체 의식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이렇게 변해버린 시대에서 과거의 의식을 조금은 회복하고자 했는지 <한끼>시리즈는 ‘줍쇼’에 그치지 않고 ‘합쇼’로 이어졌다. 돈도 많이 버는 연예인이 일반인 집에 들어가 밥을 얻어먹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이번에는 셰프와 함께 찾아가 직접 요리를 해준다는 것으로 바뀌었다. 대접한다고 하면 일반인들이 더 문을 열어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그 생각은 프로그램을 더 실패로 이끄는 요소였다.


문을 열어주면 대접을 한다고 하지만 대접을 위한 요리의 재료를 집주인의 냉장고에서 찾았다. 내 집을 공개하는 것도 꺼리는 시대에 내 집은 물론 내 집 냉장고까지 공개해야 한다니. 밥 한 번 얻어먹기 위해 내 생활을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에 공개하려는 사람이 많이 있을까. 잘 사는 동네에서 사는 이의 집에서 성공한 적도 있지만, 성공보다 실패가 잦았던 이유다. 실패하면 편의점을 찾아가 편의점 상품으로 별미를 만들어 먹어야 했는데 차라리 이런 요리로 사람들을 찾아갔다면 어땠을까.


평범한 가정의 음식을 털어 선물 같은 한 끼를 챙겨주기보다 평범한 농촌, 어촌, 산촌에서 직접 재료를 구비하고 행정복지센터 같은 곳에서 음식을 마련해 동네 사람들에게 베풀고 그곳을 찾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듣고자 했다면 조금 더 의미가 남지 않았을까. 동네 사람끼리 서로 얼굴을 익히게 하는 기회도 주었다면 더욱 옅어진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는 데 도움 되지 않았을까.


80, 90년대에 신비에 가까운 연예인들이 집을 찾아가 했다면 특별한 선물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지금은 불청객이나 다름없다. <한끼합쇼>는 예전이라면 참신하다고 평 받았을 예능이지만 지금은 반응이 시큰둥한 시대착오적인 예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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