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달리기 대결
건강에 관한 관심으로 운동은 현대인의 취미를 넘어 일상이자 필수 항목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전까지는 헬스클럽에서 몸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요즘은 길거리에 뛰는 사람이 한 명은 꼭 보일 정도로 달리기 열풍이다. 장비를 이것저것 사려면 거금이 필요하긴 하지만 필수 사항이 아니기에 달리기만큼 쉽고 싸게 건강을 챙길 수 있는 운동은 없을 것이다.
달리기를 주제로 하는 영화가 한국과 일본에서 나왔다. <나쁜계집애: 달려라 하니>와 <100미터.>다. 이야기 흐름은 다르지만 영화마다 주인공과 영화를 보는 이에게 묻는다. 왜 달리느냐고. 이들은 왜 달릴까?
달리기로 전국을 제패한 전국구 육상 스타 나애리는 전학 간 빛나리 고등학교에서 딱 한 번 진 적이 있는 하니와 다시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티격태격하는 동안 열린 ‘에스 런’이라는 도심 달리기 대회에 참여하며 신예 주나비와 맞붙게 된다.
<나쁜 계집애: 달려라 하니>는 어린 시절 즐겨 봤던 애니메이션 <달려라 하니>의 이후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이 영화를 보면서 반가운 마음이 컸다. 하지만 80년대와 90년대의 시대 배경에서 요즘 시대로 맞추다 보니 처음 보는 사람이 아닌 이전의 하니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적응되지 않는 기분이 들 것 같았다. 이전의 하니를 모르고 보는 이들에게는 이들의 관계가 어떤지,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혼란스러웠을 것 같았다. 차라리 후속작의 느낌보다 <천방지축 하니> 같은 다른 하니의 이야기를 다뤘던 시리즈처럼 새로운 이야기로 구성했다면 어땠을까? 시대의 이질감도 느껴지지 않고 주인공으로 내세운 나애리에 더욱 집중할 수 있지 않았을까.
예전 애니메이션의 하니가 달리는 이유는 ‘엄마가 보고 싶어서’였다. 엄마가 보고 싶을 때마다 달리고 그 마음이 원래 타고난 달리기 실력을 더 증폭시키는 매개였다. 하지만 성숙해진 것인지 단순해진 것인지 ‘달리기가 좋아서’라고 말한다. 자기는 왜 달리는지 의구심이 들고 있던 나애리도 그 답변에 달리는 이유를 깨닫는다. 달리기는 알고 보니 나쁜 아이가 아니었던 나애리와 하니의 경쟁 수단에서 사이가 가까워지게 하는 매개로 변한다.
재미를 주려는 부분이 가끔 유치하게 느껴질 때도 있고 최근에 나오는 다른 애니메이션에 비하면 작화가 부족해보이기도 하지만 오래된 작품으로 다양한 시도를 펼쳤다는 것에서는 박수를 치고 싶은 작품이었다.
달리기에서 지는 법이 없었던 토가시는 전학생 코미야에게 달리는 법을 알려준다. 그리고 몇 년 후, 계속 이겨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던 토가시 앞에 일본 기록 경신을 꿈꾸는 코미야가 나타난다.
<100미터.>는 100미터 달리기로 인생의 철학을 담아내려 한다. 전성기가 초반에 찾아오는 사람도 있고 더 늦은 시기에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항상 승리하는 자는 없다. 경쟁의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그것을 인생에는 어떻게 대입해야 하는지 달리기를 통해 설명하려고 한다. 누군가에게 달리기는 자신을 드러내는 수단이고 누군가에게는 현실을 잊게 하는 수단이다. 이 모든 것은 달리기가 빠르기 때문이다. 찰나의 순간에 자신을 뽐내게 하고 기억을 잊게 한다.
이 애니메이션은 원래 원작 만화가 있다고 하는데 전체를 짧은 시간의 영화로 담으려고 하니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뚝뚝 끊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이 사람은 갑자기 왜 튀어나오는 것이며 이야기가 왜 이렇게 전개되는 건지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작화 기법이 실제 경기를 보는 것처럼 역동적이고 속도감 있어 이야기보다 달리기 경기를 표현한 것에 몰입하면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뭔가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처음 시작하는 목적은 다 다르다. 체력을 기르려고, 체중 감량을 하기 위해, 기록 단축이나 대회 출전 같은 목표 달성을 위해 등 다양하다. 목표한 바에 도달하려 애쓰다 보면 가끔 포기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숨이 벅차오르고 다리가 아프다. 하지만 이를 참고 달리면 괴로움이 조금씩 사라지고 회복되는 기분이 드는데 이를 ‘러너스 하이’라고 한다. 이 상태를 겪고 운동을 마무리하면 몸이 개운하고 가볍다.
육체적인 개운함 외에 정신이나 의지의 측면에서 쾌감이 찾아오는데 그 느낌의 크기와 모양은 다를지라도 영화 속 캐릭터들은 각자 다 느끼지 않았을까. 그래서 더 달리기에 빠지고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것이 아닐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