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사랑도
스마트폰이 내 생활의 중심이 된 지 꽤 오래됐다. 돈, 일정, 사람 등 모든 관리를 이 기계 하나로 해낸다. 심심하면 만화나 영화도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어딜 가더라도 바라보는 게 이 기계 하나밖에 없다. 예전에는 내 이동을 즐겁게 하는 것은 거리의 풍경이었다. 하지만 요새 주변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잘 모른다. 관심이 없다. 오로지 내 삶에 관심을 가질 뿐이다.
그런데 한번은 이상하리만큼 스마트폰이 잘 작동하지 않았던 적이 있다. 배터리 탓인지, 기계 결함인지. 껐다 켜도 작동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그냥 움직였다. 출근길이 심심할 것 같았다.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차단했던 주변 소음도 곧이곧대로 들렸다. 내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주변 광경이었다. 창밖을 내다보기도 하고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기도 했다.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새롭게 느껴졌다. 주변이 보이니 내 행동도 달라졌다. 어르신께 자리를 양보하기도 하고 별거 아닌데 사람들의 순간 우스운 행동에 피식 웃기도 했다. 주변에 관심을 가지니 다양한 것이 보였다.
장진 감독의 영화 <아는 여자>는 주변을 의식하니 삶이 달라지는 사람의 이야기를 다뤘다. 연극 한 편을 보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 영화는 요즘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한때 잘 나가던 투수였지만 현재는 프로야구 2군에 소속된 외야수 동치성(정재영). 애인에게 갑작스러운 이별을 통고받은 날, 설상가상으로 3개월 시한부 판정까지 받는다. 상처를 달래고자 바에서 술을 마시고 눈을 뜨니 낯익은 바텐더 한이연(이나영)이 있다.
삶을 포기하려고 해도 삶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다 주변이 보이고 사랑이 생긴다. 좁은 시야로는 볼 수 있는 것이 당연히 적다. 어떤 것이든 주변을 돌아 볼 계기가 마련되면 그때 시야가 넓어지고 삶의 방향이 달라진다. 실패라고 여겼던 치성의 삶에는 이연이 그런 존재였다. 불청객, 지나가는 이처럼 느꼈었던 처음과 달리 점점 눈에 들어오니 포기로 향했던 삶의 방향도 점점 살아야겠다는 쪽으로 180도 변한다. 주변을 향한 관심이 생기니 사람도 변한다. 알고 보니 이연도 자신과 비슷한 결의 삶을 살고 있었다. 치성은 이연에게 궁금한 것을 쏟아내며 영화는 끝난다.
직접 묻든, 책을 읽든, 질문이 생기면 답을 구하는 방법은 소통에 있었다. 누군가 답을 구할 대상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요즘은 그 대상이 없어도 된다. 사람이 아니어도 된다. 기계와 AI에 물으면 쉽게 답을 구할 수 있다. 나밖에 없는 삶을 살다 소멸할 것 같은 기분이다. 이럴 때 눈을 아래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전후좌우 주변으로 향한다면 새로운 인연과 경험이 찾아올 것이다.
편해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으나 점점 인간으로서 삶이 적적해지는 기분이 드는 요즘인데 <아는 여자>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로 접근하지 않더라도 가슴이 괜히 몽글몽글해지는 기분이 들게 하는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