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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Dec 14. 2020

슈가맨, 식스토와 양준일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만화인 <원피스>의 명대사 중 하나를 인용하며 시작하려 한다. 사람이 죽는 순간은 언제일까. 바로 잊혔을 때다. 인기로 사는 연예인들이야말로 이 말에 가장 크게 공감하지 않을까. 사람들이 잊는다는 것은 어쩌면 연예인들이 가장 바라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     


어느 한 히스패닉 가정의 여섯 번째 아이로 태어나 이름이 식스토인 식스토 로드리게스는 술집에서 노래하다 발굴돼 두 장의 앨범을 발매한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지 미국 시장에서 판 음반의 개수는 단 6장이었다. 가족과 프로듀서가 산 것을 빼면 2~3장밖에 되지 않는 어마어마(?)한 판매량이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리지도 못하고 식스토 로드리게스는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그의 1집 앨범인 <Cold Fact>를 구매한 미국 여성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이 앨범을 가져가면서 남아공에 전파된 것이다. 생각지도 않은 문화계 문익점이 되어버린 셈이다. 당시 아파르트헤이트로 상처 입은 남아공에 Cold Fact의 가사는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그 시대를 이겨내는 민중들의 주제가가 된다.


얼굴 없는 가수 식스토 로드리게스에 대해 알려진 정보가 없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당연히 그가 죽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를 기억하는 몇몇 열성 팬들이 그의 행적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행적을 좇았을 뿐인데 산 사람을 찾아내는 쾌거를 이룬다. 


앨범 프로듀서의 도움으로 만난 식스토 로드리게스는 살아 있었다. 비록 미국 디트로이트의 한 허름한 집에서 살고 있었지만 말이다. 이후 로드리게스는 남아공에 "살아있는" 전설로서 방문하게 되고, 1998년 3월 8일, 남아공 콘서트장에서 새롭게 가수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이 동화 같은 이야기가 바로 음악 다큐멘터리 영화인 서칭 포 슈가맨(Searching for Sugar Man)이다.


식스토 로드리게스 같은 슈가맨이 우리나라에도 있다. 바로 양준일이다. 양준일의 노래는 외면의 대상이었다. 1991년 ‘리베카’라는 곡으로 데뷔했지만, 당시에는 생소한 노래라며 많은 사람이 외면했다. 이후 나온 ‘가나다라마바사’도 이상하게 여겼고 ‘댄스 위드미 아가씨’는 영어가 너무 많고 퍼포먼스가 너무 퇴폐적이라는 평을 받았다. 백댄서와 춤을 추고 자신의 끼에 맡긴 채 흐느적거리고 폴짝 뛰는 춤사위는 지금 시대에는 익숙하지만, 그 당시에는 충격을 넘어 기피의 대상이 되기 쉬웠을 것이다.


라디오에서는 영어를 많이 써 방송정지, 출입국사무소 직원의 “너 같은 사람이 싫어서 체류 허가 도장을 찍어주지 못하겠다”는 갑질로 비자 연장도 실패하면서 쓸쓸히 한국을 떠나야 했다.


수년이 지난 후 양준일은 양준일의 두 번째 버전이라는 의미의 V2라는 이름으로, 음악, 옷 스타일을 완전히 바꾼 채 나왔다. 시대에 맞춰 테크노 음악으로 눈에 띄는가 싶더니 소속사 문제로 영어 강사로 강의만 하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미국에서 한인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며 그 역시 가수로서 흔적을 지운다.


시간이 지나고 유튜브에서 고전 방송들이 유행하게 된다. 가요프로그램도 그중 하나였는데 사람들이 추억을 떠올리며 모여들어 ‘온라인 탑골공원’이라는 별칭이 붙게 된다. 그런 방송에 혼자서 지금 걸맞은 외모와 파격적인 의상과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가수가 있었다. ‘저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의문과 함께 특히 GD를 닮았다며 탑골 GD라는 별명도 얻게 된다. 그가 바로 양준일이었다. 유튜브가 죽은 양준일을 살린 것이다. 입소문을 타면서 점점 인기가 오른 양준일은 급기야 팬카페도 생긴다.


볼 수 없는 가수의 팬이 되어버린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팬들은 양준일의 근황을 수소문하고 그 사연을 접한 양준일은 팬 카페를 찾게 된다. 이후 JTBC <슈가맨>에서 양준일과 연락이 닿아 복귀 무대를 갖게 된다. 50대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의 동안과 죽지 않은 끼를 과시하며 놀라운 무대를 선보였다. 그간의 한을 풀 듯이.


가장 무서운 것은 선입관이었다. 예전에는 교포 출신이라면 돈이 많아 건방지고 껄렁댈 것 같은 느낌이라 많은 사람이 미워했는데 인간 양준일은 그런 느낌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맑으면서도 솔직한 그의 인터뷰를 보며 그가 누구인지 궁금해했던 사람들은 한 번 더 놀라고 매력적으로 느꼈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아무도 알아주지 못했지만, 보수적인 남아공에 반향을 일으켰던 식스토 로드리게스와 달리 보수적인 그 당시 대한민국에서조차 족적을 남길 수 없었던 양준일은 시기를 잘못 만났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자신이 선보였던 뉴 잭 스윙 음악들이 이후 현진영, 듀스 등이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이제야 빛을 봤다지만 91년에는 아무런 이유 없이 미움받던 가수가 거의 30년이 다 된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관심받는 사람이 되어버렸으니 다양한 감정이 오갔을 것이다. 


주변에서 스타의 자질이 보이는 사람을 놓칠 리가 없다. 광고 모델과 새로운 앨범으로 무대로 돌아올 준비를 하는 그의 꿈은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것이다. 석연찮은 핍박 때문에 성공 가도를 달리지 못했던 그인데 말이다. 아마 양준일의 마음은 식스토 로드리게스가 콘서트 무대에서 “살아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한 것과 같지 않을까?    


양준일은 방송에서 지금의 양준일이 20대의 자신에게 건넨 ‘네 뜻대로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다는 걸 내가 알아, 하지만 걱정하지 마. 모든 것은 완벽하게 이뤄질 수밖에 없어.’라는 말은 사실 가지고 있었던 꿈을 내려놓으면 새로운 일이 찾아올 거라는 뜻이었다고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하지만 젊은 양준일을 향한 그 위로는 품고 있던 꿈을 실현하기 위해 현재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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