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칸다 포에버 Feb 08. 2021

촛불을 기억하며

90년대 초중반 소년 잡지나 교육지를 보면 가끔 미래의 우리 생활 같은 게 나왔다. 작가의 상상인지 남들의 상상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로봇 찌빠, 맹꽁이 서당 같은 익숙한 그림체로 그려진 그림이었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 타임머신, 원격 의료 기술 등 지금 상용화된 기술도 있고 여전히 뜬구름 잡는 소리 같은 것도 있었다. 처음엔 만화라서 눈을 끌었다. 보고난 후 어린 나는 변화를 꿈꿨다. 빨리 이런 세상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변화라는 것이 참 가지각색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순식간에 바뀌는 것도 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천천히 삶 속에 스며든 것도 있었다. 내가 무딘 것인지. 상황에 맞춰 적응이 자연스레 되는 것인지 모르지만 '돌이켜보니 이리 되었네?'라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말이다. 사람이란 존재가 변화에 적응하는 동물이라 그런 것일까?


그러다 보니 변화의 규모나 영향력 같은 게 실감이 잘 안 난다. 나는 2000년도에 밀레니엄 버그가 일어난다는 말을 듣고 천지개벽이 일어날 줄 알았다. 영화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심판의 날처럼 컴퓨터가 반란을 일으킬 줄 알았다. 내 컴퓨터가 고장나면 어떡하나 걱정했다. 하고 싶은 게임을 못 하게 되니까. 하지만 그건 기우였다. 1999년 12월 31일에서 2000년 1월 1일로 넘어가는 밤, 송구영신예배를 다녀오며 엄마에게 얘기했다. "큰 일 날줄 알았는데 변한 게 없어." 그냥 1999년 12월 31일에서 2000년대로 들어선 것뿐이고 하루가 지나 12월이 1월로 바뀐 것뿐이었다. 그리고 내 나이가 하나 더 늘었다는 것 정도였다.


하지만 변화는 아주 실감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길고 긴 여정의 순례자 길 같으면서도 우사인볼트의 100m 달리기 같다. 내가 수명이 길어 고조선부터 지금의 대한민국까지 오랜 역사를 살아온 것이 아니다. 하지만 역사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숨이 벅찰 정도로 전력질주한 느낌이다. 근현대사는 더욱 그러했다. 


3.1 운동을 거쳐 6월 10일 민주항쟁까지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많은 사람이 싸웠다. 수많은 사람이 과격한 행동과 수단들로 인해 다쳤고 세상을 떠났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그들의 희생으로 이루어졌다. 그 과격함 때문에 평생을 슬픔으로 사는 사람이 너무 많다. 반면에 자신의 배를 불리며 사는 사람도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심판을 받은 날인 2017년 3월 10일은 앞서 말한 것과 다르다. 이 날은 우리나라 역사라는 나무의 한 줄기를 가지치기하는 느낌이다. 물론 이후에 상황이 어떻게 진행될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날이 있기까지 있었던 국민의 촛불 시위는 예전의 투쟁, 시위와 달랐다. 세계에서도 주목했으니 말이다. 촛불 시위에는 정신, 의식의 변화가 있다. 그게 행동의 변화를 만든 것 같다.


직간접의 구분을 어찌 둬야할지 모르겠지만 변화에 대한 내 나름의 정의를 해보고자 한다. 인간의 외적인 부분이나 기술 등을 외적 변화라 하고 사람의 내면, 즉 정신 변화를 내적 변화라 한다면 내적 변화는 깊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고 행동의 변화, 문화의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변화다.


역사에 의한 교훈도 있을 것이고 시민의식이 더 발전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내적으로 참 많이 변했고 성숙해졌음을 느꼈다. 이전 세대의 운동과 희생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책으로만 보던, 이전 세대에게 듣던 과격하고 무서웠던 그 운동이 지금 세대에 와서는 침착하고 질서정연한 운동으로 변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걱정되기도 한다. 약도 남용하고 오용하면 독이 되듯 이 목소리를 내는 모습들이 잘못 사용되지는 않을지. 잠긴 것을 모두 열어 버리는 만능열쇠처럼 필요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하게 되지는 않을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서 시행착오가 필요하듯 이런 모습들이 올바른 문화, 행동을 만들기 위한 준비 과정이기를 바란다.


날마다 켜져 어둠을 밝히는 촛불은 참 아름답게 보였다. 그리고 참 치열했다. 시간이 지나면 촛불을 들던 하루하루는 누군가에게는 추억이, 교훈이, 치욕이 되어 바람처럼 다가올 것이다. 사람들 스스로 선택한 변화는 이후 세대들에게도 영향을 줄 것이다. 여전히 우리나라가 갈 길은 멀다. 이념의 대립 갈등 긍정적이고 이상적이고 순진한 생각으로는 화합이 이뤄지면 사라진다고는 하나 인류의 역사 동안 항상 있었던 게 이건데 쉽게 사라지겠나. 하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옳은 길로 발전할 것이다. 이미 이뤄낸 과거가 있는 우리나라는 그 방향과 방법을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현대사 책에서 서울의 봄이 왔다가 금방 사라졌다는 말을 보고. 진짜 우리나라에 봄이 있느냐고 생각했었다. 봄은 언제 올까? 이제부터 서서히 시간이 걸리더라도 당시 18세 소년의 의문에 답이 될 진짜 따뜻한 봄이 올 것 같다. 조금 일찍 왔으면 좋겠다. 더 많이, 오래 누릴 수 있게. 그 봄이 한 순간의 단꿈처럼 슬며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후에도 은은히 오래 가는 향처럼 퍼져 더욱 후대에게도 나아가길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나브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