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칸다 포에버 Mar 15. 2021

산소를 내려오는 길

아버지 산소를 오르는 길. 담담했던 여느 때와 달리 가슴이 먹먹하다. 오늘은 아버지가 이사 가는 날. 의사는 묻지도 않고 당신을 낯선 곳으로 모시려니 마음이 편하지 않다. 당신은 멈춰버린 시간 속에 존재한다. 하지만 당신의 아내는 시간의 흐름을 몇 바퀴 돌고 돌았다. 그래서 이제 당신을 만나러 가는 길이 벅차다. 조금이나마 편히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당신도 이해해줄 것이다.    


당신의 공백에서 생긴 여러 측면의 부담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었다. 나이, 직업, 금전. 모든 것이 시간이 지나니 해결됐다. 당신의 도움이 없어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올바른 길을 가기 위해 애썼다. 나는 당신의 경험이 궁금했다. 공백이 큰 만큼 스스로 터득하는 경험의 크기는 컸다. 그렇다고 그 공백이 메워지지도 않았다. 사무치는 외로움과 그리움에 한 번씩 당신이 보고 싶었고 안고 싶었다. 


생전에 어린 나의 몸으로는 절대 업을 수 없었고 어린 마음에 부리는 객기로 업겠다며 억지 부렸어도 아들 녀석 다친다고 웃어넘겼을 아버지. 그렇게 20년이 지난 후 당신을 작은 상자에 담아 두 팔로 안아본다. 가벼운 당신의 무게, 차가운 당신의 온도가 새삼 당신이 우리와 사는 이곳을 떠난 지 오래 지났음을 느끼게 한다. 같은 길임에도 오르는 길보다 내려오는 길이 더 몸을 무겁게 한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버렸기 때문일까. 당신의 얼굴, 목소리가 점점 희미해진다. 하나라도 잃으면 완성되지 않는 수천 개의 퍼즐 조각 중 하나를 찾듯 모든 기억을 부여잡으려 하지만 연기처럼 새어나간다. 그리고 나를 원망한다. 당신을 고온의 동굴 속으로 보내는 것이 가슴 아프다. 여기저기 나는 곡소리는 그 감정들과 어우러져 더욱더 씁쓸하게 만든다. 그래도 곧 다시 만날 것을 알기에 차분하게 마음을 다스리며 당신이 돌아오길 기다린다. 


돌아온 당신은 한여름 햇볕보다 더 뜨겁다. 열기에 가득 찬 당신을 안고 새집으로 떠난다. 돌아온 아버지 당신의 모습은 너무나 조그맣다. 항상 힘든 것 내색하지 않던 아버지 당신도 이리 연약한 줄 알았다면, 더 많이 안았을 텐데. 미안한 마음 담아 당신을 옮겨 흙으로 덮으며 다시 한번 이별을 고한다. 그리고 재회를 약속한다. 새로운 이 집에서 더 편히 만나자고. 먼 훗날 나 역시 당신처럼 되었을 때 그 미지의 세계에서 웃으며 만나자고.

매거진의 이전글 촛불을 기억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