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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Jan 09. 2021

시나브로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만난 국어 선생님은 그 당시의 나에게 굉장히 불편한 선생님이었다. 그때 내 눈에는 자기주관이 뚜렷한 데다 고집이 세다 보니 학생들에게는 제멋대로에 상대를 무시하는 느낌을 주었다. 그때 그 선생님보다 나이 많은 지금의 내가 그 시절을 지금 돌이켜보면 그 선생님은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은 갓 초등학교 졸업한 학생들의 산만함에 대처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무튼 그때 마음이 불편했는지 그 모습을 보며 나중에 어린 학생들을 무시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런데 그 다짐이 무색하게 나는 요즘 아이들을 보며 가끔 혀를 찬다. 꼰대. 이 칭호가 나는 무관할 줄 알았는데. 어느새 그 꼬리표를 자연스럽게 달고 있었다. 10대. 조금만 아량을 베풀어 대학 시절까지 돌이켜보면 나름 여유와 재치가 있었던 것 같은데 딱딱하고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는 유연하게 살 줄 알았다. 항상 말랑말랑한 생각으로 살며 정신적으로 늙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머리와 마음이 점점 더 굳어버리는 것을 느낀다. 이 과정과 느낌이 반갑지 않다. 나도 모르게 보이지 않는 ‘내 상식과 이해’라는 한계선을 긋고 상대를 이해 못 한 채 절대 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더 큰 걱정은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창고를 정리하다 보면 겉보기에는 멀쩡한데 완전 돌처럼 굳어 사용이 어려운 시멘트가 있다. 시멘트를 뜯지 않고 아무리 관리를 잘하려 해도 습기를 조금씩 머금으면 포대 안에서 굳어버리게 된다. 나도 갑자기 그리 변한 것이 아니라 시간이 계속 흘러가는데 나도 모르게 점점 변화할 수 없는 나로서 굳어져 버린 기분이다. 조금은 유연한 척 농담을 해보기도 하지만 기본 바탕은 진중하고 딱딱한 나는 과거의 나로 회귀하기에는 늦어버린 것 같다.


전염병이 유행할 때 이에 적절히 대응하는 법 중 하나는 그 근원과 경로를 찾아 봉쇄, 차단하는 것이란다. 하지만 너무나 방치되었던 나는 완전히 잠식되어버린 것 같다. 근원지를 찾아내지 못하면 문제를 쉽게 풀어나갈 수 없다. 나도 마찬가지로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냥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발버둥 치는 중이다. 그런다고 나아지는 것은 없다. 마치 불로초를 찾는 진시황처럼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려는 사람처럼 보인다.


어른이 되는 것. 이 세상을 살면서 약 20년은 갈망해왔던 꿈이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니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 지금은 닿지 못해 군침만 흘리다 나중에 손이 닿아 따 먹은 열매 맛이 상상에 미치지 못할 때처럼. 지금은 오히려 어린이가 되고 싶은 기분이다. 하지만 몸은 커지고 사회의 눈을 이미 의식하기 시작한 돌이킬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어릴 때는 항상 곁에 길잡이 같은 존재가 있었지만 지금 내 앞가림은 내가 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앞가림을 잘 못 한다. 누군가를 도와줄 만한 올바른 길잡이가 된 것 같지도 않다. 결국 어린이도 어른도 아닌, 여전히 갈팡질팡 헤매는 중이다. 턱없이 부족한 내 모습을 보니 갑갑하고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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