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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Dec 26. 2020

2020년 나의 키워드

어느 때보다 빠르게 흘러간 2020년. 연말이 되면 늘 그렇듯 올해도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1년 내내 마스크를 써 연약했던 귀를 마스크 끈으로 단련시키고 숨을 길게 마시지도 내뱉지도 못하고 마스크 속 공기로 자가 발전했던 것 빼고.


내가 기억력이 퇴화한 것인지,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지냈던 것일지 잘 모르겠다. 나이가 드니 10대, 20대보다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하루, 한 달, 일 년을 잊어버리기에는 내가 겪었던 시간을 헛되이 여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020년에 과연 내가 무엇을 했는지 키워드를 통해 되새겨보려 한다.


내 2020년의 일들은 하나의 큰 줄기에서 시작된다. 바로 ‘코로나 19 바이러스’다. 이 불청객이 한 해를 바꿔버렸다. 사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코로나바이러스가 별거 아닌 줄 알았다. 마스크를 쓰고 벗으면 안 된다기에 그대로 따랐다. 근데 그 기간이 1년이 넘어갈 줄은 몰랐다. 나는 12월이 되면 다음 해는 어떻게 지낼 것인지 미리 1년 계획을 구상하는 편이다. 물론 내 특성상 다양한 일을 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녀석은 조금 더 활발히 움직일 수 있던 나를 꼼짝 못 하게 만들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마치 판도를 바꿔버리는 ‘게임체인저’ 같았다.


1. 공부

코로나바이러스는 나를 공부에 매진하게 했다. 책상 앞 의자에 앉는 습관을 15년만 일찍 가졌더라면 내 인생이 바뀌었을지 모르는데 무지한 중생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 엎지른 물을 담아보려 애썼다.


올해 가장 열심이었던 공부는 자격증 공부였다. 점점 게을러지는 것이 느껴져 더 나이를 먹으면 공부와 인연을 끊어버릴 것 같아 목표치를 크게 잡았다. 올해 자격증을 다섯 개 따내는 것을 목표로 공부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시험 일정도, 방식도 변화를 주었다. 연간 일정에 따라 시행되어야 하는 시험이 몇 달 미뤄지기도 했고 시험 장소가 줄어들어 멀리 시험을 보러 가야 했으며 거리 두기 때문에 사람 간 자리는 더욱 멀어졌다. 그럴 때마다 답답한 마음도 있었지만 적응할 수밖에 없었다.


공부라는 것이 원래 남는 것이 있어야 정상이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나는 남는 공부를 한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나의 발전이 아닌 특정 점수, 자격 등의 획득을 목적으로 공부하다 보니 내게는 이해보다는 주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억지로 주입해 얻은 지식은 유통기간이 너무나 짧아 시험이 끝나거나 결과가 발표되는 순간 연기처럼 사라져 내가 하는 공부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아닌지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어쨌거나 올해 나는 총 5개 자격증 시험에서 3개의 자격증을 땄고 다른 하나는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하나는 실기 시험에 실패해 내년을 기약하기로 했다. 목표의 80%를 달성했으니 선전한 것이라고 여겨도 되겠지만 앞서 말한 것을 이유로 생각해보면 만족스럽지 않은 공부였다.


자격증 공부와 함께 우리말 공부에도 열중했다. KBS <우리말 겨루기>에 출연하게 되면서 개망신을 당하지 않기 위해 틈틈이 공부했다. 무리하게 자격증 공부와 병행했던 것은 과거 나 자신과 대결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학생 신분일 때만 해도 여러 가지 공부를 하며 시험을 준비했었는데 지금은 시험 하나만으로 쩔쩔매는 것이 왠지 창피했다. 갈수록 퇴보를 하는 것 같고 마치 패배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 감정이 나를 더 공부하게 했다. 이 역시 어느 정도 성과는 있었지만 내 성에 차게 이루어 낸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만족스럽지 못했다.


2. 정리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자유롭게 누비지 못해 우울한 감정이 든다는 ‘코로나 블루’의 영향이었을까. 나는 그 답답한 기분을 물건을 정리하며 해소했다. 원래 나는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물건마다 하나씩 의미를 두고 간직하는 것을 좋아한다. 단순한 물건이 아닌 기억을 간직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있어 누가, 언제, 무슨 이유로 준 물건인지 기억하며 보관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남이 볼 때는 쓰레기인 물건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방도 비좁은데 방에 꽉 찬 다양한 잡동사니를 차마 버릴 수가 없었다. 


정리를 결심하게 된 것은 기존의 내가 했던 것과 다른 생각을 하게 되면서부터다. 물건은 사라져도 기억을 잃지 말자는 생각, 과거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현재에 집중하자는 생각, 많이 갖고 있다고 해서 빈손으로 돌아가는 게 사람 인생인데 아껴서 뭐할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내게 필요 없는 물건을 버릴 것과 팔 것으로 분류해 처리했다. 책상과 장롱을 뒤졌다. 형태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이 수두룩했고 포장을 뜯지도 않은 물건도 많았다. 전자의 물건은 해체작업을 거쳐 분리수거 했다. 후자의 물건은 남들에게도 가치가 있을 만한 물건은 당근마켓, 번개장터, 중고나라에 올려 중고거래로 돈을 벌었다. 그 외의 물건은 미련 없이 버렸다.


중고거래를 하면서 겪어보지 못한 재미있는 일이 참 많았다. 어떤 물건이든 찾는 사람이 있다는 것, 웬만한 판매자보다 좋은 조건(싼 가격)에 팔려고 하는데 거의 기부 수준의 판매를 원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 중고 거래를 하려고 만남의 장소에 가면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어떤 사람이 내 거래 대상인지 금방 알 수 있다는 것. 눈빛과 행색을 보면 알 수 있다. “혹시, 당근?” 낯가림이 있는 내가 이렇게 과감하게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지 몰랐다.


물건을 버리거나 누군가에게 나누면서 내 안의 답답함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이 답답함이 단순한 스트레스였는지, 정말 코로나바이러스의 영향이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내 물건을 정리하는 것과 다르게 원하지 않는 정리도 있었다. 바로 거래처와 정리였다. 올해는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많은 자영업자가 문을 닫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나도 그 안타까움을 간접적으로 겪어야 했다. 작년에 계간 잡지를 출간하면서 많은 지역의 작은 서점에 연락을 돌려 입고를 부탁했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많은 타격을 입었는지 폐점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단지 거래 대상이 아닌 책이 홍보되고 팔릴 수 있는 창구가 되어주던 곳들인데 이렇게 거래를 접고 이별해야 한다는 것에 마음이 아팠다.


내가 책을 출간했던 계기는 서점에서 내 책이 한 권이라도 팔려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이를 통해 지역 곳곳에 서점이 생기는 기회를 마련하고 싶다는 바람에서였다. 바람은 정말 바람이 되어 쥐도 새도 모르게 날아가 버렸다. 참 가슴 아픈 일이다. 언젠가 능력과 기회가 주어진다면 동네 서점 활성화를 위한 일을 꼭 한번 해보고 싶다.


다사다난했던 올 한 해를 정리하며 드는 생각은 성인이 된 나도 계속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른이 되면 그 자체로 굳어져 버려 변화할 일이 없을 것 같았다. 내가 발달이 느린 것일 수 있겠지만 여전히 나는 변화를 겪는 시기인 것 같다. 내년 그리고 앞으로 살아나갈 동안에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조금은 나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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