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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진 Nov 15. 2022

버스 사람

매일 같은 버스를 타고 통학을 하다 보니 기억에 남는 특정 기사님들이 계십니다. 오늘 만난 분은 상당히 말수가 많으셨습니다. 기사님은 승객이 탑승할 때에는 "안녕하세요"를, 내릴 때에는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와 같이 계속 인사를 건네셨습니다. 어떤 승객은 덩달아 "안녕하세요"와 "감사합니다"를 건넸지만, 대부분의 승객들은 기사님의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차가 막히는 지점에 버스가 도달했을 땐 수많은 경적 소리가 도심을 채웠습니다. 많은 차들이 조금 더 빨리 가겠다고 차선을 바꾸며 끼어드는 형국이었습니다. 기사님은 혼잣말로 "아주 자기들만 바쁘지, 바빠. 모두가 바쁜 세상에 뭘 그리 빨리 가겠다고"라고 중얼거리셨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정말 모두가 바쁜 세상이지요.


지선버스였으니 기사님은 하루 종일 같은 곳을 반복해서 운행하셨을 겁니다. 기사님의 인사는 상냥하고 공손함을 표출하기 위한 서비스가 아니었을 거라 느꼈습니다. 어쩌면 기사님은 말동무가 필요하셨던 건 아닐까요. 매일 같은 노선을 반복하는 삶, 바뀌는 건 본인의 버스에 탑승하는 승객들밖에 없는 삶. 버스는 늘 같은 도로를 같은 시간에 달리고, 기사님은 운전을 하겠다며 한결같이 본인 앞 창만 바라보시고, 서울의 한 구역을 돌고 도는 이 버스에 바뀌는 것은 오로지 승객뿐입니다. 버스의 규칙성 속에서 이따금 유일한 즐거움이 되는 우리는 무얼 위해 귀를 막고 바닥만 보며 어딘가로 행하는 것일까요. 어쩔 수 없는 침묵만이 우리의 버스를 가득 채웁니다.


때로는 사소함이 많은 것을 바꿔 놓습니다.

버스 기사님들은 본인과 같은 번호의 버스를 길 위에서 마주치면 상대 운전사에게 간단한 손 인사를 건넨다는 사실은 알고 계시나요. 저는 종종 그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짓곤 합니다. 인간은 정말 혼자 있을 수 없구나. 동료 없이 일하는 건 불가능하고, 우연히 친한 동료를 만났을 때 반가워하는 모습은 모든 세대를 불문하고 똑같구나.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면 묘하게 기사님들의 얼굴을 기억하고 싶어집니다. 다음에 만나면 먼저 반갑게 인사라도 건네드리고 싶어서요. 지루하게 쳇바퀴를 돌며 반복되는 삶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 규칙적이고 안정된 삶을 원한다고 하더라도, 그 속을 면밀히 보면 우리는 그 안에서의 약간의 변형을 추구하곤 할 겁니다. 아침에 먹은 커피가 유난히 맛있어서 좋았다거나, 같이 일하는 사람과 나눈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즐거웠다거나. 정말 말 그대로 모든 게 온전히 매일같이 반복되는 삶은 인간을 살 수 없게 만들 겁니다.

우리는 이따금 순간을 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확히는 자신의 순간이 아닌 타인의 순간이요. 우리는 매 순간 타인의 삶의 한순간을 차지합니다. 내가 건네는 작은 인사가 곧 누구의 삶의 일부분이 되고,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분들에게 약간의 즐거움이 된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일 아닐까요. 뭐가 그리 급하다고 우리는 자신의 순간만을 우두커니 지켜보며 사는지, 각박해지고 싶어서 각박해지는 개인이 어디 있겠냐마는, 다들 조금씩 유해졌으면 좋겠다고 소망합니다.


우리의 시대는 참 각박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출퇴근길에 보는 너무나도 많은 피로들. 웃음을 잃은 표정들. 사람으로 가득 찬 버스는 정말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숨 쉴 틈이 없다고 생각되곤 합니다. 버스 내부와 우리 마음속은 이따금 그렇게 유사해집니다. 사람들로 가득 차서 숨 막히는 공간. 인사 하나 없이 꽉꽉 채워지는 밀집. 많은 이들이 오고 가지만 다정한 인사는 희미한. 어떤 버스가 덜커덩 소리를 내며 출발할 때 많은 이들의 마음도 함께 어디론가 나아가는 느낌이었고, STOP을 눌러도 멈추지 않는 버스는 정말 어디로 가는 건가 싶었습니다. 뒤돌아보면 정말 많은 것이 그 시점 이후로 변해버렸구나 싶은 소회처럼요. 많은 것들이 그렇게 영영 우리를 떠나 버립니다.


아 그래서 저는 오늘 "안녕하세요"도 건넸고, "감사합니다"도 건넸습니다. 열 글자로 충분히 담을 수 없는 그 무언가. 저는 늘 그 무형의 것이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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