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간보거나 도망치지 말아요.
내가 야구 볼 때 굉장히 싫어하는 몇 가지 상황이 있다. 크게 이겨도, 적게 이겨도 열받는 게 야구팬이라고 하지만.. 특히 내가 가장 싫어하는 상황은 투수들이 도망가는 피칭을 해서 '스트레이트 볼넷'을 줄 때, 혹은 타자들이 방망이를 휘두르지도 않고 멀뚱멀뚱 서있다가 '루킹삼진'을 당할 때이다.
7회 말, 2대 0으로 우리 팀이 간발의 차로 앞서고 있는 상황. 잘 막고 있던 선발투수가 갑자기 흔들리면서 무사 1, 2루가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선발투수가 막으면 베스트겠지만, 이미 100구 이상 던졌다면 필승조가 올라갈 타이밍이다. 우리 팀은 가장 잘 나가는 불펜 투수를 올릴 것이고, 상대 팀은 장타 하나면 동점을 만들 수도 있기 때문에 대타 카드를 내거나, 다음 타자가 핵심 선수라면 믿고 맡길 것이다.
하지만 불펜 투수가 올라오자마자 스트라이크에 넣지도 못하고 볼질을 한다면? 영점이 안 맞는 게 아니고 누가 봐도 맞을까봐 도망가는 게 보인다면? 난 항상 어김없이 “그냥 처맞더라도 꽂아 넣으라고!!!!!!!!!!!!”를 외치며 극대노를 시전한다. 근데 반전은 맞아도 화난다는 거.
타자일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 팀이 안타 하나면 역전할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대타로 나온 타자가 상대 투수의 공만 멀뚱멀뚱 보고만 있고 도저히 칠 기미가 안 보인다면? 난 답답해서 소파 위에 있는 애꿎은 쿠션을 향해 분노의 물주먹 펀치를 하면서 야구를 볼 것이다. 결국 방망이는 한 번도 대보지도 못하고 시원한 심판의 삼진 콜을 보고 있자면 정말 욕이 절로 나온다. 다리가 무너지더라도 치겠다는 의지는 보여야 하는 거 아닌지?
(아 물론 볼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 근데 한가운데 들어온 거는 누가 봐도 쳐야지; 아 물론 그게 허를 찌른 걸 수도 있겠지만, 제발 멍청하게 루킹삼진은 당하지 말란 말이야)
연애에서도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바로 스트레이트 볼넷과 루킹삼진이다.
먼저 연애에서 스트레이트 볼넷이란 무엇일까? 내가 투수고 상대방이 타자면, 내가 상대방에게 원하는 바가 있더라도 빙빙~ 모호한 스탠스를 이어가는 거다. 상대방이 투수일 때도 마찬가지로 볼만 던지며 나에게 애매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연애에서 루킹삼진은 상대가 꽂은 직구, 즉 상대가 나한테 보여준 확신이나 낙차 큰 포크볼로 거절을 표시할 때 내가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고 쳐다만 보다가, 결국 타석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을 때다. 반대일 경우 내가 던진 투구에 이것도 저것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는 상대를 보고 있으면, 정말 루킹삼진스럽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근래 이런 경우가 있었다. 무슨 관계인지 정의를 딱 내릴 수 없는 이상하고 기묘한 관계. 썸?도 아니고.. 친한 오빠?도 아니고.. 뭐지 싶은 순간이 많았는데, 누가 먼저 시작했든 어쨌든 그래.. 어떤 마음으로 발전했든, 뭐 불씨가 어디서부터 시작됐든 그게 뭐가 중요하겠니... 그 관계를 좀 복기해 봤다. 상대가 나에게 했던 행동들로 인해 기분 나빴던 감정에서 벗어나서 상대를 바라봤던 나의 감정이나 내 행동들에 대해서 말이다.
과연 나부터 상대에게 확신을 줄 만한 행동을 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가장 오래 남아있고, 그게 아직까지도 숙제이다. 그가 나를 어떤 관계로 정의해야 하냐고 대놓고 물어서 그냥 “썸 정도로 온도 올려와요”라고 상대에게 대놓고 얘기했었다. 하지만 그것 빼면 뭐가 있나 싶은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 정도면 확신을 준거지’라고 생각하면서도, 내 마음 한편에 나 역시도 상대에 대한 ‘애매함’이 결국 문제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애매한 마음은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행동을 낳는다.
그리고 솔직했는지에 대해서다. 굳이 알아도 되지 않을 얘기를 하는 등의 지나친 솔직함은 상대를 찌르는 무기가 될 수 있겠지만, 관계에 있어서 솔직함은 매우 필요한 부분이다. 상대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는데 그런 상황에서 난 침묵을 지키는 쪽을 선택했다.
그렇게 따지면 나는 가장 싫어하는 스트레이트 볼넷을 던진 꼴이다. 볼을 던지더라도 상대가 속아주길 바라는 마음은 너무 비겁하지 않는가? 특히 사랑의 영역에서 그런 행동들은 개인적으로 너무너무 별로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이번 일화를 통해 느꼈던 거는 아, 내가 이렇게 도망가는 피칭을 하거나 투명하지 못한 사람이었나. 난 항상 오승환(전성기 시절 묵직한 돌직구를 던지던 선수입니다) 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을 정도로 묵직한 패스트볼을 구사하던 사람인데. 이제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예전의 나로 돌아가야지. 안타를 맞는 한이 있더라도 가운데에 꽂아 넣고, 다리가 무너지면서 삼진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냥 크게 휘둘러야겠다고 생각했다.
경기 중에 스트레이트 볼넷이랑 루킹삼진이 나오는 상황은 너무 맥 빠지고 허무하잖아요. 그리고 저는 그런 허무한 삶은 원하지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