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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D Kim Feb 24. 2020

00 - 여는 글, 1코노미인이 되고 싶었다.

글쓴이는 뭐 하는 사람이람?

 지금 이대로면 안 되겠다는 불안함이 있는가? 세상은 빠르게 돌아가는데 나는 도태되는 기분이 드는가? 그래서 내 일을 찾거나 혹은 이어가고 있는가? 독서모임 ‘1코노미'에 찾아온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이 의문을 품은 자기소개를 하고 있었다. 같은 상황이시라면 동지가 된 것을 환영합니다. 앞으로 이 공간을 통해서 어떤 사람들이 1코노미에 함께했고, 우리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를 나누려고 한다.


 왜 모임에서 나눈 이야기를 공유하려고 하는가? 나와 다른 사람의 마음이 너무나도 비슷했기 때문이라고 하면 답이 될까. 1년 동안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논의가 개개인의 성향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며 우리의 생각을 관통하는 큰 흐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글을 쓰는 당사자인 내 이야기로 문을 연다. 모임에 참석한 다른 사람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내 생각이 맞다면, 내가 하는 이야기들에 대해서 고개를 끄덕거리는 사람들을 더 발견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



트레바리를 시작한 이유
뭔가 해야 했다.


 나는 착실하다. 매주 꾸준하게 정해진 활동을 한다. 일, 가족, 운동, 취미생활. 2개를 챙기면 일주일이 적당했고 3개부터는 벅찼으며, 드물게 4개까지 챙기기도 했다. 하루하루는 충분했고 풍족했다. 실행력이 좋은 한 친구는 정기적으로 책도 읽고 운동도 하고 있으니 나보고 부지런하단다. 내가 보기에는 일하면서 1~2개 분야의 공부도 하는 네가 더 대단했다. 나보다는 타인이 하는 일이 어려워 보이기 마련이며 그저 투자하는 분야가 다른 것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당면한 일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은지, 우리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지,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 것인지, 돈은 어떻게 모을 것인지, 어느 나라로 여행을 갈 것인지, 가서 무엇을 할 것인지와 같은 일상적이고도 반복되는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마음 한 켠에는 불안함이 있었다. 내 것은 유지처럼 느껴지고 네 것은 발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지만 이미 하루가 바빴다.


 이렇게 안정되게 살다가 평생 이 모습 그대로면 어떡하지? 가족보다 자주 보고 친구보다 친숙한 동료라도, 시간을 넓고 깊게 나누었는데도, 일이 끝나면 소원해졌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같이 멀어짐을 반복하다 보니 내가 관계를 잘 맺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때그때 만나는 사람만 만나고 하는 행동만 반복한다. 1년 뒤는 물론이고 5년 뒤, 10년 뒤의 모습까지 선명하게 그릴 수 있었다. 신선한 관계와 자극을 원했다. 왜 접한 적 없는 “새” 것이어야 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  


 그때 제안받은 것이 독서모임이었다. 넌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고 새로운 사람도 만나고 싶어 하니 독서모임 트레바리가 잘 어울릴 것 같아! 재미있게도 막상 그 제안을 한 친구는 트레바리를 한 적이 없었다. 내 성향, 친구의 친구가 들려준 트레바리 경험담, 각종 기사글로부터 받은 인상을 기반으로 조언을 준 것이다. 그래도 난 그의 말을 신뢰했고, 몇 달이 흐른 후에 트레바리 멤버십을 신청했다. 그 결과 실망했고 다시 신청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한 번 더 멤버가 되었고 어쩌다 보니 트레바리 파트너를 하게 되었다. 파트너는 각 독서모임(이하 클럽)에서 행정적 운영을 맡는다. 한 번 시작하니 여느 때처럼 꾸준하게 이어가, 어느새 지금이다.  



어떤 경험을 했는가
얻은 것은 뚜렷했지만, 뭔가 잘못되고 있었다.


 트레바리 멤버십을 처음 등록할 때는 기대에 부풀어있었다. 하지만 나누는 주제가 마음에 드는지와 별개로 트레바리 클럽(모임 단위)에 만족할지 여부는 보장할 수 없다. 어느 특정 한 클럽의 사례가 아니라 종합적으로 그렇다. 일단 같은 주제의 클럽이라 하더라도 파트너 스타일에 따라 미묘하게 분위기가 다르다. 클럽 주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과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며 무언가가(어느 무언가 인지는 나도 모른다) 바뀔 것이라 기대했지만, 모인 사람도 내 예상과 다르다. 멤버들의 관심사는 미세하게 차이가 있었고, 1주일 만에 서둘러 고른 책은 투표한 사람들은 물론이고 추천한 사람도 실망하곤 했다. 취향에 맞지 않는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것은 고역이었다. 책 값이 아까우니, 멤버십 값도 아까워졌다. 돌이켜보면 나도 내가 상상한 그 클럽의 멤버에 적합하지는 않았다. 전문가가 부재한 상태에서 무엇을 할지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모르지만 정해진 일정에 따라 책을 읽고 다 같이 헤매며 탁상공론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최악은 아니었지만 극적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기대를 하고 있었던가? 애초에 한 달에 책 한 권을 읽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고 내가 바뀌지는 않는다. 대단한 일이 일어날 리가 없다. 합리화는 쉬웠다. 그 경험에 만족하기로 했다. 최소한 ‘관심 있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어요.’의 영역으로 한 걸음 걸어가기는 했다고.


 언젠가부터였나, 매 순간 나눴던 대화와 그때 대충 내렸던 나름대로의 결론을 기반으로 내 생각이 옮겨갔다는 것을 알았다. 모임을 나가 이야기를 듣고 말을 하지 않았다면 찾지 못했을 실마리가 있었다. 당장 삶의 기반이 달라지거나 새로운 습관이 생기지는 않았지만 미묘하게 삶의 목표 같은 것이 구체화되고 있었다. 무언가가 내 안에서 꿈틀대는 것을 알게 되자 한 번 한 번의 모임이 아까워졌다.


 그즈음에는 이미 파트너였는데, 트레바리 파트너라는 역할이 심적으로 힘들어지고 있었던 차였다. 시작할 무렵에는 모임이 돌아갈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었는데, 반복되다 보니 피로가 쌓였다. 익숙해지면 숨 쉬듯이 편하게 할 것이라는 예상은 오산이었다. 정해진 일정을 항상 염두에 두고 챙기는 과정에서 신경이 곤두섰다. 반면 일정만 챙기며 흘러가는 대로 두기에는 트레바리 파트너를 하기 위해 들이는 시간과 노력이 부담이 되었다.  


 결심이 필요했다. 파트너를 그만두거나, 최소한의 에너지만 써서 계속 참가하거나(성실하기 때문에 주어진 역할만큼은 충실히 할 것이 확실했다), 혹은 더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무언가를 얻어내거나. 언제나 결정을 내리기보다 보류하는 것이 편했고, 당장에 못하겠다 느껴질 정도로 심각하게 힘든 건 아니었다. 일단 스스로 모임을 통해 할 수 있는 일, 얻을 것들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안 그래도 모임에서 나온 이야기를 계속 기록하고 있었다. 기록을 했으니 멤버들에게 공유도 했다. 이전에 무슨 이야기를 나눴지? 그 당시 내 관심사가 뭐였지? 우린 지금까지 무슨 대화를 나눴지? 그럴 때 되돌아가서 확인할 수 있었다. 나쁘지는 않았는데 충분하지도 않았다.



1코노미 클럽 소개

 잠깐 멈추고 1코노미라는 클럽을 잠깐 소개한다. 트레바리의 1코노미 최초 소개 페이지* 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있었다.


나만의 활동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 있지 않나요?


 1인 미디어, 1인 사업, 1인 마켓 등 바야흐로 '1인 시대'입니다. 나만의 취미생활, 자기 계발 등 무엇이든 상관없어요. 혼자서 완전하게 1인으로서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지 [1코노미]에서 읽고, 대화하고, 실천해요.


 1코노미는 트렌드 코리아 2017에 언급된 단어로, 혼자만의 생활을 즐기며 소비활동을 즐기는 사람을 일컫는다. 혼자 살고, 혼자 먹고, 혼자 자고, 혼자 놀고. 트레바리에서는 뉘앙스가 조금 다르다. 혼자서 ‘하는’ 것에 사업, 크리에이터가 포함되었다. 흔히들 말하는 1코노미족과는 달라 보였다. 혼자라는 단어는 가볍고 동시에 무겁다.



세상 일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1코노미 클럽을 고민했을 때는 18년 말이었고, 이제 막 백수였다. 회사생활을 고되게 하다가 마음이 망가지기 시작하면서 중단했다. 퇴사 전부터 다르게 사는 방법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막상 시도하지는 못했다. 한창 취미로 캐리커쳐를 재미있게 하고 있었다. 전업으로 할 수는 없어도 내가 나에게 준 유예기간, 곧 마음이 회복되는 기간 동안 캐리커쳐 실력을 향상한다면 그 이후로도 꾸준히 재미도 느끼면서 용돈 정도는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나에게 의뢰를 하는 수준까지 만들고 싶었다. 내 그림에 개성이 묻고, 그래서 저 사람의 그림으로 내 얼굴을 남기고 싶다는 기분이 들기를 바랐다. 글도 쓰고 싶었다.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본업으로 외주를 받아야지 생각했다. 기술이 있으니 욕심을 낮추면 어떻게든 할 수 있는 기분이었다. 금전적 안정보다는 심리적 여유를 바랐다. 그렇게 프리랜서를 향해 한 발짝 내딛으려는 차였다.  


 얕굳게도 1월 첫 모임이 시작하기도 전에 다시 직장인이 되었다. 계획된 일이 아니었다. 나는 '자유를 향한 작지만 의미 있는 한 걸음!'을 도로 미뤄두었다. 내가 속한 곳에 적응하면서 내 가치와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회사 외의 활동에 도통 집중할 수가 없었다. 캐리커쳐도 글쓰기도 중단되었다. 퇴사 전에 1코노미를 성공하지 못했을 때와 같은 이유려나?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거리며 이해해줄 법한 바쁜 일과 급한 일이 있었다. 일을 하고, 운동을 하고(오랜 시간 동안의 좌식 업무로 인해 내 허리와 어깨, 목은 만성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 규칙적인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아프다. 부디 이 부분을 읽으신 좌식 업무 동지 여러분들은 꾸준한 스트레칭과 휴식을 통해 건강을 유지하시길 바랍니다), 1코노미 클럽 파트너 업무를 하고 나면 한 달이 지나가 있었다. 클럽 2개 운영하시는 분들은 정체가 뭡니까? 나는 나 스스로도 지킬 수 없는 1코노미하기를 과연 타인과 논할 수 있는지 의심하게 되었다. 멤버들에게 지난 한 달 동안 얼마나 1코노미였는지 물어봤지만, 막상 나는 전혀 1코노미가 아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 역할은 멤버가 아니라 파트너였다. 나는 적극적인 1코노미인이 되기를 포기하고 시스템만 남기기로 했다. 나는 일종의 ‘다음’ 버튼이었고, ‘메일을 성공적으로 전송했습니다.’였으며 다음 방향을 알려주는 ‘튜토리얼’이 되었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해야 했다.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안 하느니만 못했다. 조금 더 1코노미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기로 했다. '한 달에 초상화를 2개는 그려볼게요.', '책의 목차를 써볼게요.'가 통하지 않는 건 잘 알았다. 언제나 핑계는 훌륭했고, 나는 그것에 거스를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마주하고 있는 바로 이 일을 파고들기로 했다. 19년 9-12 시즌 설명글에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정리해서 어딘가에 업로드하겠다는 글을 작성했다. 그리고 내가 그런 약속을 했음을 주기적으로 떠올렸다.


 독서모임에서 나눈 이야기를 정리하여 올리겠다고 결심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내가 번개나 뒤풀이에 거의 참가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멤버였을 때는 꼬박꼬박 나갔었건만, 점점 더 어려워졌다. 언제나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여러 번 시도했지만, 계속 실패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고 싶지 않아 졌다. 그런데 1코노미는 혼자 무언가를 하려는 사람들이 서로 경험과 에너지를 나누기 위해서 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만큼 유대감이나 서로 자유롭게 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중요한 듯했다. 지금의 나는 사람을 이어줄 끈끈한 역할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형태로 모임 자체의 가치를 올리고 싶었다. 그래서 ‘나눈 이야기를 글로 쓰기’였다. 마지막 모임 전에 받아쓰기를 다시 읽어보곤 했는데, 우리가 이런 이야기도 했구나 싶었다. 새롭거나 심도 깊은 이야기들도 있었다. 내용을 남기는 것이 의미 있어 보였다.


 또, 1코노미 모임을 반복하면서 우리 1코노미인들이 독특하면서 동시에 보편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회사의 일 외의 내 일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시스템이 마련되어있지 않은 상황에서 혼자 일을 시작하거나, 혹은 타인의 도움 없이 혼자 일을 진행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1코노미인들은 일 초기에 진행의 어려움과 불안함을 느낄 것이다. 이 길을 이미 걸어온 사람들의 생각을 남긴다면 1코노미 개개인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는, 내가 했던 1년 동안의 1코노미 모임을 잘 정리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겨졌다. 한 번 이렇게 글을 쓰기 시작하면 이후에도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는 어려움만큼이나 글을 쓰고 다듬는 작업은 노력이 필요하고, 오래 걸리는 일이었다. 그리고 다 쓴 것이 아니니, 앞으로는 더 할 것이다.

 다음 글에서부터 1코노미 때 나눈 이야기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글이 될지는 알 수 없고, 만들어놓은 형식이 적당 한 지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다. 하지만 일단 시작하면 알게 되리라. 요새 시대의 콘텐츠는 그렇게 구성되는 것이라고 하니 말이다. 그리고 더 이상 걱정만 하다가는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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