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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알바와 실수

관용이 돌고 돌았으면

by 이주낙

더 이상 용돈을 구걸하기 싫었던 19살, 합법적으로 자급자족 해보겠다는 부푼 기대를 안고 시작한 첫 알바는 횟집 서빙이었다. 그 횟집은 스끼다시가 10가지가 넘었다. 지금이라고 뭐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때 나는 정말 심각한 고문관이었다. 테이블 번호를 혼동하는 건 기본이고, 부끄럼이 많아 서비스업의 기본인 "어서 오세요"도 못했다. 그래서 손님이 많은 시간대에는 설거지행으로 쫓겨나기 일쑤였다. 그러던 중 스끼다시의 마무리인 매운탕이 나가고 있었다. 매운탕이 올려진 버너를 수많은 반찬그릇 사이에 쑤셔 넣으려 했다. 문제는 버너 밑에 비스듬히 깔린 와사비 간장을 미쳐 보지 못한 것이다. 버너를 '턱'하고 내려놓는 순가 와사비 간장종지는 순간 물리 법칙에 의해 공중으로 점프를 하고, 2바퀴 공중회전 후 손님의 정장 바지로 떨어졌다. 카운터에서 나를 주시하던 횟집 사장님도 달려왔다. 인생 최대 위기였다. 난 망했다고 생각했다. 머릿속은 하얘졌다. 그런데 그 정장차림 손님은 허허허 웃으면서 괜찮다고 했다. 심지어 내가 세탁비를 물어줘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팁까지 줬다. 그리고 끝까지 나한테 말도 놓지 않았다. 그는 신이었다. 그 손님이 나를 구원해 주셨기 때문이다. 이런 구원자에게 사장님은 고작 꽁치 서비스로 보답하고, 나에게 준 팁을 뺏어 자기 주머니에 넣었다.


그때의 계기로 나도 그 손님처럼 누군가의 실수에 대해 관용을 베풀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 살아왔다. 물론 친절을 호구로 보는 사람한테까지 그럴 만한 그릇은 못되지만, 순수한 실수는 기꺼이 품어줄 수 있는 마음! 관용, 친절함 이런 것들을 순환시키는 사람 중 한 사람이 되고 싶다. 각박한 세상이지만, 이런 마음들이 계속 돌고 돌았으면 좋겠고, 이미 어디선가 그러고 있다고 믿고 싶다. 냉소보다 이상이 낫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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