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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부터의 도피

by 이주낙

요즘 갈 수록 좌우를 막론하고 극단적인 정치이념에 과몰입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인터넷에서만 그런 사람들이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면 주변에 가족, 친구, 직장동료 등 평범한 사람들도 특정 정치이념에 과몰입하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 합리적 토론보다는 감정적 대립이 앞서고, 반대 진영을 악마화하는 형태, 혹은 엔터테인먼트로 수단화 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마치 중세시대 종교전쟁을 보는 것 같다.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사랑의 기술로 유명한 에리히 프롬은 그의 대표작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인간이 자유를 감당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심리적 도피 기제를 설명했다. 80여년 전에 발간된 책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분석은 현재까지도 매우 유효하다. 그의 분석을 통해 현재 정치적 양극화를 재조명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근대화는 인간을 종교와 왕정 같은 전통적 권위에서 해방시켰지만, 동시에 커다란 불안을 안겨주었다.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해야 하는 자유는 곧 책임을 의미하며, 이는 결코 호락호락한 선물이 아니다. 자유의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사회적 불안이나 경제적 불확실성, 또는 개인적 삶에서 고립감과 무력감에서 벗어나 이를 해소하기 위해 강력한 이념이나 권위적인 지도자나 집단을 찾고 의존하게 된다. 그들에게 극단적인 정치 신념은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확고한 정체성과 안정감을 제공하는 도피처가 된다.


특히, 프롬은 그들이 자유의 불안을 해소하는 두 가지 방식(SM)으로 권위주의적 복종(피학성애-마조히즘)과 파괴성(가학성애-사디즘)을 제시했다. 마조히즘을 가진 사람들은 스스로 사고하는 대신 특정 이념에 맹목적으로 순응하며, 이를 통해 자신이 옳은 길을 가고 있다는 확신을 얻는다. 반대로, 사디즘을 띠는 사람들은 자신의 불안을 외부로 투사하여 반대 진영을 공격하며, 이를 통해 심리적 해방감을 느낀다. 오늘날 극단적 정치이념에 몰입한 이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보이는 형태는 이와 다르지 않다.

특히 이러한 현상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소는 바로 SNS와 유튜브 알고리즘(AI)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뉴스를 직접 찾아보기보다,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콘텐츠를 소비하며, 정치적 견해를 형성한다. 문제는 이 알고리즘이 사용자의 기존 신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SNS와 유튜브 알고리즘(AI)은 사용자가 선호하고 자주 시청하는 콘텐츠를 분석해, 유사한 내용을 지속적으로 추천한다.(개미지옥 같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강한 정치적 견해를 가진 콘텐츠에 노출되며, 반대 의견을 접할 기회는 줄어든다. 결국,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소통하며, 확증편향이 강화되고, 정치적 극단화가 가속화 된다.

또한, 극단적인 콘텐츠일 수록 높은 조회수와 댓글 반응을 유발하기 때문에, 일부 유튜버나 인플루언서들은 계속해서 자극적인 정치적 메세지를 내세운다. 그 결과 정치 담론은 점점 더 감정적이고, 공격적인 방향을 흐르며, 대중의 냉철한 사고를 방해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우리는 어쩌면 AI에 의해 이런 악순환에 빠져든 것일도 모른다.)


또 이러한 과몰입은 사회 전체의 분열을 심화시킨다. 상대를 타협할 수 없는 적으로 규정하는 태도는 건강한 민주주의 근간을 훼손하고, 이념적 대립을 격화시킨다. 더욱이, SNS와 유튜브 알고리즘의 영향으로 확증편향적 정보 소비가 가속화되면서, 사람들은 더욱 강한 신념 속에 갇히게 된다. 현대인은 엄청난 양의 정보에 노출되지만, 정작 자신만의 사유를 통해 그 정보를 걸러내고 판단하는 능력은 점점 약화되고 있다. 프롬은 사람들이 자유를 감당하지 못하고 권위에 의존하는 이유가 바로 자신의 생각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오는 불안감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다시 말해, 스스로 사고하고 결정을 내리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사람들이 강력한 이념이나 집단에 기대어 자동인형(프롬식 표현)이 되는 것을 자초한다. 한나 아렌트도 그녀의 저서 악의 평범성을 통해서 비판적 사고 없이 시스템에 순응하는 인간의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더욱 깊이 사고하고, 자신의 입장을 성찰하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단순히 이쪽이 선이고, 저쪽이 악이다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어떤 근거로 신념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해야 한다.


자유는 축복이지만, 동시에 감당해야 할 책임이기도 하다.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과연 자신의 신념이 자유로운 사고에서 비롯된 것인지, 혹은 불안을 피하기 위한 도피처인지 성찰해야 한다. 진정한 자유란 극단적 이념에 기대어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감내하며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데서 비롯됨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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