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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안통하는 이유

사라진 맥락

by 이주낙


TV에서 대선 토론을 보다 보면 금세 피곤해진다. (10분쯤 보다가 넷플릭스를 틀었다.)

정책은 사라지고, 맥락을 지운 말장난과 말싸움만 남았다. 댓글싸움과 다른 점을 찾을 수 없었다.


안이... 그게 아니라... 안이... 그게 아니고!!! 아니지!!!

갈등에서 가장 흔하게 나오는 말이다. 일단 부정하고 시작한다. 같은 말을 해도, 듣는 사람은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다. 왜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맥락을 임의로 바꾸거나 무시했기 때문이다.


언어는 의미가 아니라 맥락을 통해 살아 움직인다. ‘당신 덕분이에요’라는 말이 감사의 의미가 될 수도 있고, 비꼬는 말이 될 수도 있다. 그 판단은 언제나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 받아들이는 사람의 프레임 사이에서 갈린다.


문제는 그 프레임이 점점 더 자의적이고 공격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SNS나 미디어에서는 더 심하다. 누군가 말한 한 문장을 끄집어내 특정한 프레임에 끼워 맞추고, 원래의 의도를 거꾸로 돌려 상대를 몰아붙인다. 심지어는 맥락을 고의로 잘라내 악마화하는 전략이 비일비제하다. 한 개인의 말을 의도와 상관없이 재편집하고, 낙인을 찍어 극단에 몰아넣는다. 그리고 그 장면은 끊임없이 회전되며 소비된다.


여기서 우리가 직면해야 할 또 하나의 문제는 문해력이다. 소통은 단순히 말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말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를 이해하는 능력이다. 문해력은 바로 그 맥락을 읽어내는 감각이다.

그런데 요즘 이 능력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사람들이 자기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이다. Sns의 알고리즘처럼 자기 입맛에 맞는 정보만 취하고, 해석도 자기중심적으로 한다. 불편한 사실, 복잡한 현실, 다각적 진실은 외면하고, 듣고 싶은 말만 확대하고, 대세에 따르거나 일원론적으로 해석한다. 그 결과, 같은 문장도 제각기 다른 의미로 왜곡된다. 말은 있는데, 의미는 증발한다.


정치 담론은 이 문제를 더욱 뚜렷하게 보여준다. 예를 들어 자유라는 단어 하나에도 수많은 층위와 맥락이 있다. 표현의 자유, 경제적 자유, 신념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 등 각기 다른 차원의 맥락이 존재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때에 따라 달라지는 복합적인 의미를 고려하기보다는, 자신이 말하는 자유가 유일한 정의인 것처럼 퉁쳐버린다. 그리고 상대의 자유는 왜곡하거나 비하하며, 논의는 금세 싸움으로 번진다. 같은 단어를 놓고도 전혀 다른 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평등 역시 마찬가지다. 평등이라고 하면 어떤 이는 기회의 평등을 말하고, 또 어떤 이는 결과의 평등을 상상한다. 경제적 평등이냐, 사회적 평등이냐, 법 앞의 평등이냐 등 어떤 층위에서 말하는지도 모르고 당신은 평등을 부정하냐 며 몰아붙이기 쉽다. 그러다 보면 평등을 말한 사람이 어느새 빨갱이, 공산주의자로 몰리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동일한 결과를 가져야 한다는 식의 평등은 현실적으로도 위험하며, 개인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억압할 가능성이 크다. 평등은 차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존중하면서도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
극단적인 평등 추구가 자유를 해치고, 극단적인 자유 추구가 불평등을 낳는다는 점에서, 두 가치는 균형 속에서만 의미가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세상은 흑백이 아니라 스펙트럼이다. 누군가의 말을 단 하나의 프레임으로 재단하고 단죄하기보다는, 그 말이 어떤 맥락과 배경에서 나왔는지를 살펴야 한다. 비판은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그 전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이해다.


안이...아니가 아니고, 그치, 맞지..그럴 수 있지...

누군가와 진짜로 소통하고 싶다면, 가장 먼저 필요한 건 맥락을 긍정해야 한다. 상대가 말한 것을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이 처한 조건과 배경, 감정까지 포함해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동의하라는 말이 아니라 이해하자는 것이다. 버트런드 러셀은 "자유는 관용없이 존재할 수 없다"고 했다. 한 번이라도 상대 진영의 말에 일단 긍정하고 관용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그 어른의 말에 관심이 더 갈것 같다.

이해 없이 동의는 없고, 이해 없이 반대하는 건 단지 의미없눈 공격일 뿐이다.


나이가 먹을 수록 시대가 갈수록 프레임은 강해지고, 말이 안통한다. 모두가 자기 말만 하고, 누구도 듣지 않는다. 듣는 척하면서, 사실은 자기만의 세계관에 집어 넣어 버린다. 말이 통하지 않는 건 단어나 문장 때문이 아니다. 맥락을 버린 채 해석하기 때문이다. 맥락과 해석이 빠진 펙트논쟁은 무의미하다. 펼쳐진 스펙트럼위에 포착된 색조가 어떤 색인지 파악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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