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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 강요

피로 사회

by 이주낙

현대 사회는 표면적으로 자유롭다.
우리는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고, 무엇이든 좋아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자유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그것은 의무로 위장된 자율이다. 좋아하라는 압박, 선택하라는 강요, 나답게 살라는 지시 아래에서 개인은 이전보다 더 깊이 피로해진다.

한병철은 '피로사회'에서 오늘날의 사회를 성과사회로 정의한다. 금지와 억압으로 구성된 과거의 규율사회와 달리, 성과사회는 긍정의 형식을 띤다. 이제 사람들은 명령에 복종하지 않고, 스스로를 동기부여하며 자기 자신을 기획한다.

이 사회에서 인간은 더 이상 '복종하는 주체'가 아니라 ‘프로젝트로서의 자기’를 끊임없이 관리하고 가동하는 존재다. 그리고 이 자기 관리의 핵심에는 취향도 예외가 아니다.

개인의 고유성과 차별성을 강조하는 오늘의 문화는 "당신만의 취향을 가져라"는 명령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브랜드는 라이프스타일을 팔고, 알고리즘은 나의 선호를 읽어 취향을 분석한다.
그러나 이 분석은 자발성의 가면을 쓴 강요다. 타인의 취향을 흉내 내지 말고, 남들과 달라야 하며, 차별화된 나만의 감각을 증명해야 한다는 조급함 속에서, 취향은 더 이상 자유가 아니라 책임이 된다.

이때 취향은 자기착취의 수단이 된다.
나는 무엇을 좋아해야 할지 끊임없이 점검하며, 그에 맞는 소비와 행동을 수행한다. ‘나답게’ 보이기 위해,
나는 나를 브랜드화하고 상품화하며 취향 있는 인간으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피로해진다.
이때 취향은, 더 이상 나의 감각을 표현하는 방식이 아니라 타인에게 나를 설득하기 위한 포장이 된다.
무엇을 좋아한다고 말할 때조차, 그 말은 취향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당화하고, 증명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이러한 기능적 취향은 결국, 나를 더 많이 고르고, 더 많이 수행하고, 더 많이 피로하게 만든다.

이러한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좋아하지 않을 권리, 취향 없이 존재할 자유, 취향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가 필요하다. 진정한 취향은 자기 표현이 아니라 자기 해방으로 나아가야 한다.

취향은 강요될 수 없다.
그 강요는 곧 감각에 대한 폭력이 되며, 감각을 잃은 인간은, 아무리 많은 선택지를 쥐고 있어도 더 이상 자유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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