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보면 주변에 모든 걸 제쳐두고, 정치 뉴스를 너무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놀랍게도 이들은 술자리, sns, 켜뮤니티, 아침, 저녁, 평일, 주말 항상 정치 얘기를 한다. 그렇다고 근본적이거나 학문적인 접근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각적인 접근은 제쳐두고, 오로지 본인의 유튜브 알고리즘과 뉴스에만 반응한다. 진심으로 존중한다. 하지만, 한 두 걸음쯤 떨어져서 말이다...
삶이 팍팍하니까, 잘 못된게 많은, 항상 엇갈림과 고통으로 가득한 속세에서 뭔가에 분노하고, 위로받고, 이런 마음을 공감받고 싶은 건 이해한다. 뉴스를 보면 세상은 넓고 화날 거리는 넘친다.(미디어의 숙명인가) 대출 이자는 오르기만 하고, 월급은 안오르고 물가는 왜 계속 오르는지도 모르겠고, 누구는 이만큼해서 이만큼 가져가고 누구는 저만큼해서 저만큼 가져가고, 누구는 이렇고, 누구는 저렇고, 기회와 결과는 항상 랜덤하다. 이런 답답한 현실에서, 정치가 그 분노의 종착지가 되는 것도 어찌보면 이해가 된다. 문제는 그 분노가 엄한 주변 사람한테까지 불똥 튀길 때다. 그것도 매번 같은 주제, 같은 말, 같은 톤으로 부정적인 에너지를 내뿜는다. 마치 맨정신으로 만취한 취객의 신세한탄과 되새김질을 한시간 넘게 들어주는 기분이랄까..
정치 뉴스광들과의 대화는 대화라기보다 시험을 보는 느낌이다. 같이 한 주제에 대해 본인과 다른 반응이나 답이 나오면 항상 아니라고 하거나 욕을 한다. 내가 뭔가를 말했다기보단 시험을 본 느낌이다. 답은 무조건 본인으로 부터 정해져 있고, 오답 시 비난과 무시, 강의?, 유튜브 링크가 따라온다. 어떤 그들만의 통제 욕구가 있어보인다. 굉장히 강한 것 같다. 100년 전 에리히 프롬의 분석은 분명히 현재까지 유효하다.
공감해줘도 소용이 없다. "아 그런 면도 있네" 해줘도, "자 그 다음 것도 봐바라" 로 이어진다. 반론을 하긴 더 어렵다. 아니, 왜 나는 왜 난대없이 관심도 없는 팩트체크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가장 답답한 건 그들은 대부분 사실과 가치 판단을 구분 못한다. '그렇다' 또는 '그렇지 않다'로 검증 가능한 진술과 '옳다'거나 '옳지 않다' 는 식의 평가를 혼동한다. 정해져 있는 사실은 입맛대로 편식하고, 움직일 수 있는 맥락과 가치는 자기에게 고정되어있다. 상대의 맥락이나 진의 여부 상관 없이 좋아? 싫어? 둘중 하나를 입맛대로 선택하여 사실과 가치를 묶어버린다. 이런 유형은 대부분 중간지대가 없다. "이 정책은 실효성이 없어 보여"라는 말이 "그래서 그 정당은 악의 축이다"로 왜곡되고, "누굴 별로라고 하거나 괜찮다라고 하면" 라고 하면 "너도 결국 그 편"으로 연결된다. 왼쪽으로 1cm만 움직이면 좌 오른쪽으로 1cm만 움직이면 우로 정해놓는다. 중간지대가 없는 2차원 세상이다. 유보 할 수 없고, 즉시 판단을 안하면 안된다. 이는 대화가 아니라 유튜브 댓글창을 닫지 못하고 읽는 기분이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손절이 답이라고 한다.
하지만 꼭 그럴 필요까진 없을 것 같다. 대화가 불가능한 건 맞지만, 관계 자체가 불가능한 건 아니다. 그냥 그 순간만 피하면 된다. 정치 얘기가 나오면 잠깐 나갔다 온다던지 운동이나 다이어트, 아이돌, 넷플릭스 같은 무해한 화제 전환으로 탈출하면 된다.
그리고 때때로, 그 사람의 정치 얘기를 BGM 정도로 흘려듣고, “오오~” 한두 번 감탄사만 넣어줘도 대화는 무사히 끝난다. 공감 능력이라기보단 생존 기술에 가깝다.(물론 소음을 묵음으로 대하는건 쉽지 않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그 답답한 마음을 풀기위해 배설을 한다.)
그들도 누군가에겐 귀한 자식, 소중한 사람이니까
정치에 무관심함을 옹호하거나 어느 놈이나 다 똑같다는 무책임하고, 냉소적인 태도가 옳다는게 아니다. 다른 생각, 다른 주제도 같이 좀 들어올 수 있도록 열어두자는 말이다. 중요한 건, 정치를 좋아하느냐가 아니라, 그걸로 사람을 판단하고 가르치려 드느냐는 거다. 정치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아는 순간부터 덜 피곤해진다. 나도 그렇고, 상대도 그렇고.
손절은 마지막 수단으로 남겨둬도 될 듯 하다. 때로는 잘 모르겠는 척, 관심 없는 척,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게 이롭다. 소모적이고 부정적이기만한 정치 담론을 나누기엔 인생은 짧다. 이따가 가족들과 먹을 음식이 얼마나 맛있을지, 당장 하늘위에 떠있는 구름이 얼마나 멋있는지 감상할 시간도 부족할 정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