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수록 활자보다는 미디어를 보는 시간이 늘어날 수록 멍청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 요즘, 우연히 이 책(어른의 어휘력 -유선경)의 띠지를 봤다. 순간 너무 찔려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책은 아직 안봤지만 제목과 띠지의 카피로 부터 책의 개괄적인 내용을 유추함과 동시에 공감할 수 있었다.
요즘 사람들은 "킹받다", "대박", "헐", "개~" 같은 말로 감정을 표현한다. 짧고 직관적인 이 말들이 가진 직관적이고 심플한 매력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과연 이런 단어들만으로 충분할까? 누구나 다양한 감정을 느끼지만, 과연 저 몇 마디로 그 감정을 모두 담아낼 수 있을까?
영화 <파수꾼>속 이재훈은 친구와의 갈등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점점 고립된다. 결국 그는 비극적인 선택에 이르고 만다. 그의 답답한 감정은 말로 드러나지 못했고, 주변 사람들 역시 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 찾아오는 성장통 같아 보이지만, 그것은 단순히 지나갈 사춘기가 아니라 소통의 미숙함이였다. 말로 표현되지 못한 감정은 오해를 낳고, 그 오해는 또 다른 오해를 불러 결국 되돌릴 수 없는 상황으로 번진다.
이 영화가 공감을 주는 이유는, 영화 속 이야기가 우리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그저 '짜증', '빡침', '에바', '개~' 정도로 뭉뚱그려 표현한다. 표현은 간단해졌지만, 오히려 감정은 더 모호해졌다. 감정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면,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도 명확히 알기 어렵고 타인의 감정에도 점점 둔감해진다. 갈등과 단절은 그렇게 시작된다.
언어학자이자 구조주의 철학자 소쉬르는 "사고는 언어 없이는 암흑 속에서 흔들리는 안개와 같다"고 말했다. 그는 언어를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인간이 세상을 인식하고 사고하는 방식, 즉 인식 체계 자체로 보았다. 언어학 강의에서 그는 언어가 사고의 틀을 형성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우리 감정의 인식과 구분 능력도 달라진다.
감정을 표현할 어휘가 부족한 사람은 감정 자체도 뚜렷하게 인식하지 못한다. 반대로 '빡친다'가 아니라 "나는 어떤 기대가 있었는데, 그게 어긋나서 안타깝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더 정확히 이해하고 정리할 수 있다. 표현은 곧 정리다. 감정을 말로 꺼내는 순간, 우리는 그 감정을 더 명확히 자각하게 되고, 타인과도 공유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단순한 커뮤니케이션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이라는 존재를 분명히 인식하는 과정이다.
<파수꾼> 속 이재훈은 결국 ‘말’을 잃었고, 그와 함께 ‘마음’도 잃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생각하게 된다. 나도 때로는 감정을 말로 꺼내는 걸 주저하거나, 애써 대충 넘긴 적이 있었다. 마음속 무언가가 잘 정리되지 않아 오해로 번졌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말을 한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잘 들여다 보고 제대로 표현해보려는 시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언어는 완벽하지 않지만, 그 한계 안에서도 감정을 어떻게든 말해보고자 하는 노력은 결국 나 자신을 이해하는 일이고, 타인과 연결되는 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