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오늘날 사람들이 떠올리는 유교적 이미지, 이를테면 위계와 권위만을 강조하는 꼰대 문화는 사실 초기 유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공자가 말한 유교는 도덕적 수양과 공동체적 조화를 중시했지, 단순한 형식적 예절과 권위에 머물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유교의 부정적 이미지는 사실 유교 자체가 아니라, 조선에서 국가 이념으로 채택된 성리학의 결과다.
성리학은 철학이 아니라 국가 운영의 이데올로기였다. 끊임없는 외세의 침입, 제한된 자원과 생산력, 그리고 강한 중앙집권 체제는 한반도 사회가 생존을 위해 무엇보다 안정과 질서를 중시하도록 만들었다. 성리학의 위계적이고 규범 중심적인 체계는 이런 조건 속에서 선택될 수밖에 없는 이념적 장치였다. 성리학은 지정학적·환경적 조건이 낳은 정치적 실용 사상이었다.
그러나 성리학의 문제는 현대사회에 이르러 드러난다.
현대 사회는 외세의 군사적 위협은 줄었고, 국제 질서 속에서 안전망을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이 생겼다. 농업 사회와 달리 현대는 기술과 지식이 핵심 자원이 되었고, 위계적 질서보다 창의성과 자율성이 사회 발전에 더 큰 힘을 발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여전히 과거 성리학적 유산에 깊이 매여 있다. 변화와 진보가 필요한 시점에서 원리와 질서중심의 세계관은 창조와 변화가 목적이 아니였기에 혁신의 걸림돌이 되었고, 새로운 제도와 움직임은 기존 질서를 해친다고 여겨졌으며, 전통성에 대한 집착은 비판적 사고와 다양성을 억제 했다.
지금도 권위주의적 관습과 꼰대 문화, 형식적 규범의 강조는 더 이상 환경적으로 필연이 아님에도 사라지지 않고 지속된다.
여기서 철학적 질문이 제기된다. 인간은 과거의 조건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총균쇠적 관점에서 보면 문화는 환경의 산물이지만, 일단 형성된 문화는 단순히 환경 변화에 따라 자동적으로 바뀌지 않는다. 문화는 습관, 제도, 언어, 사고방식 속에 뿌리내리며, 일정한 자율성을 갖는다. 따라서 과거의 조건이 사라졌음에도 그 유산은 끈질기게 남아 오늘을 지배한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전혀 자유롭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새로운 세대가 다른 환경 속에서 성장하고, 과거의 질서에 저항하거나 변형을 시도할 때 문화는 점진적으로 바뀐다. 이것은 탈피가 아닌 과거 조건의 흔적을 지닌 채로 새로운 단계로 이행하는 타협의 과정일 것이다. 결국 인간은 조건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지만, 조건을 해석하고 변형하는 방식에서 자유를 발휘할 수 있다.
따라서 꼰대들을 마주한 사람들이 직면한 과제는 과거 환경이 남긴 유산을 어떻게 극복하고 변형할 것인가의 문제다. 지정학적 조건이 만든 질서 속에서, 이제는 성리학의 꼰대 문화를 넘어선 스스로의 선택으로 다른 문화를 창조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과 다르지 않다.